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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골군과의 전쟁터 - 일본 대마도 사스우라

蔥叟 2016. 2. 7. 08:07

몽골군과의 전쟁터 - 일본 대마도 사스우라

 

佐須浦, Sasuura

 

서기 1274년과 1281년 두 번에 걸친 몽골군의 침략으로 인해 쓰시마와 이키에서는 매우 처참한 참상이 빚어졌다고 전해진다. 1274년 10월 5일 몽골군 대장이었던 고쓰톤(忽敦)은 9백척의 군선과 3만명의 군사를 이끌고 쓰시마의 서해안 일대를 침략하였다. 각지에서 격렬한 전투가 벌어졌고, 소(種)가 일족은 각각의 부임지에서 전사하였다. 쓰시마의 영주 소 스케쿠니(宗助囯)는 친병 80여기를 직접 거느리고, 후추(府中, 지금의 이즈하라)에서 사스(佐須)로 진격하기 위해 코모다(小茂田) 해안에서 가까운 하지키탄에 진지를 구축하였다고 한다. 700년 전 사스우라의 지형은 현재와 달리 강줄기를 따라 내륙으로 깊이 들어간 만이었다. 따라서 싸움터는 지금의 간다(金田)초등학교 근처라고 추정되지만 다른 설도 있다. 전투는 10월 6일 인시(오전 4시경)에 시작되었으며 소 스케쿠니의 친병들은 고군분투했지만 진시(오전 9시경) 격렬한 전투 속에서 무장들은 전멸하였다. 소 스케쿠니의 묘라고 전해지는 곳이 시모바루(下原)의 오쿠비카즈(머리무덤)와 가시네(樫根)의 오도즈카(몸무덤)이다. 군 최고 수장의 묘가 여기저기 분산되어 있다는 것도 최후의 장렬함을 말해주고 있다. 소 스케쿠니는 이때 나이 86세의 노장이었다.

 

▲사스우라

 

▲사스우라

 

▲사스우라

 

▲사스우라

 

▲사스우라

 

▲사스우라

 

▲사스우라

 

▲사스우라

 

▲사스우라

 

▲사스우라

 

▲사스우라

 

▲사스우라

 

 

 

<2016. 1. 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