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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불천탑의 염원 - 화순 운주사 와불

蔥叟 2014. 12. 31. 05:55

천불천탑의 염원 - 화순 운주사 와불

 

와불로 가려면 다시 대웅전으로 내려와 왼쪽 능선으로 올라가야 한다. 와불은 낮은 산등성이에 길게 누워 있는 두 기의 불상이다. 누워 있는 형태로 보아 본래 누운 형태의 와불로 만든 것은 아니다. 세워 놓을 요량으로 만들었는데 세우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흔히 이 두 기의 와불을 부부 부처라 부르기도 하는데, 살펴보면 두 불상은 특정한 관계는 없는 것으로 보인다. 이 와불을 뜯어내서 세우지 못한 것을 보면 운주사 천불천탑의 대공사가 미완의 공사였음을 알 수 있다. 운주사 계곡의 서편 산 정상에 머리를 남쪽으로 향하고 있는 석불 2구로 일명 와불이라 불리고 있다. 세계에서 하나뿐인 유일한 와불이라고 하는데 이는 열반상과는 다르게 좌불과 입상으로 자연석 위에 조각되어 누워있다. 이렇게 좌불과 입상의 형태로 누워있는 부처님은 세계에서 하나뿐이라는 것이다

 

▲와불

 

▲와불

 

▲와불

 

▲와불

 

전설에 의하면 도선국사가 하룻밤 사이에 천불 천탑을 다 세우고 이 와불을 마지막으로 일으켜 세우려 했으나 새벽닭이 울어 중단했다고 한다. 나침반을 갖다 대면 거의 정확히 남북으로 향하고 있어 이 부처님을 일어나면 히말라야산(곤륜산)의 정기를 이 민족이 받아 새로운 세상이 열리고 지상 최대의 나라가 된다는 전설이 전해져 온다. 전설에서 999번째, 1000번째로 불리는 두부처님은 좌불 12.7미터, 입상 10.26미터의 대단히 큰 불상이다. 좌상의 대불은 어깨의 폭에 비해 무릎의 폭이 너무 넓어 인체의 균형을 잃고 있으나 국내에서는 거불에 속한다 하겠다. 소불인 입상의 수인(손 모양)이 시무외인 여원인을 취한 것 같으나 어색하고 사실성을 잃었다. 또한 옷 주름은 수직선과 사선으로만 처리하는 단순성을 보여주고 있다. 이렇듯 운주사의 많은 석불들 중에서 가장 중요한 의미를 지닌 석불이라 할 수 있다.

 

이 불상을 일으켜 세우려 했던 흔적이 곳곳에서 발견된다. 운주사 탑과 불상을 제작했던 석질이 시루떡처럼 잘 떼진다는 특질을 이용해 제작한 듯 뒤에는 떼어내려는 듯 파들어간 흔적이 보인다. 그리고 와불의 머리가 아래로 제작된 까닭은 부처님의 제자인 마이예트라께서 일찍 요절하여 도솔천에서 수도하고 계시다가 미래불로서 이 땅을 구원할 미륵님으로 오시게 되는데, 그 미륵님이 오시면 왕이나 귀족처럼 하늘에서 내린 사람들이 지배자로 나서는 세상이 아니라 생산을 담당하는 무리들이 이 땅의 주인으로 나선다는 사상에 기초하여 미륵세상을 염원하는 차원에서 지하의 영혼을 받은 생산을 담당한 민중들이 발부터 지하에서 나온다는 것을 표현했다고 해설하기도 한다. 대개 미륵님은 반신매몰불 형태로 지하에서 융기하는 모습으로 표현되어있다.

 

▲와불

 

▲와불

 

▲와불

 

운주사의 좌불은 비로자나불로서 태양과 부처님의 진리를 인격화하여 표현한 부처님의 모습이고 옆에 입상은 석가모니불이다. 그리고 이 두 분을 지키듯 서있는 시위불도 옆에서 떼어내 세운 것이 분명하다. 그러기에 비로자나불을 중심으로 한 삼불 신앙의 형태로서 떼어서 어딘가에 세우려 했던 것인데 과연 어디다 세우려 했을까에 대한 의문과 더불어서 역사의 기록에 이런 대단위 불사가 사라진 까닭을 생각해 보면 매우 흥미로운 일이다다만 이 와불을 석공의 기술부족과 암석의 질 때문에 못 세웠다고 보는 얄팍한 견해는 종교의 본질을 모르는 유치한 상상이라 아니할 수 없다. 적어도 절대의 신으로 모시었을 부처님을 좌불과 입상 형태로 저렇게 불편하게 버려두어 스스로 신성모독의 죄업에 빠지는 과오를 저지를 리 만무하였기 때문이다. 지금도 탱화를 그리다가 실패하면 격식에 따라 의식을 치루고 정결히 소각하는 절차를 거친다는 것을 상기해 보아야 할 것이다

  

이 와불에도 전설이 실려오고 있다. 이 와불이 일어서는 날 새 세상이 열린다는 이야기가 전해오는 것이다. 이 전설로 와불은 억눌리며 힘겹게 살아야 했던 많은 사람들의 희망이 되었다. 이 와불에 미륵의 희망이 더해지기도 하고, 수많은 민초들의 설움과 애환이 덧씌워지기도 했다. 황석영은 자신의 소설 장길산에서, 봉기를 일으켰던 노비들이 이곳에 천불천탑을 세운 것으로 묘사하고 있다. 새 세상이 열린다는 전설을 바탕으로, 운주사의 못생긴 불탑과 불상을, 새 세상을 향한 소외된 민초들의 염원으로 묘사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소설은 그저 소설일 뿐이다. 억눌리고 소외된 사람들이 모여 이 정도 규모의 큰 불사를 이뤄낼 수는 없는 것이다

 

▲와불

 

▲와불

 

▲와불

 

▲와불

 

지금까지 살펴본 바와 같이 운주사는 그 창건부터 지금까지 전해 내려오는 석탑 조각하나 불두 하나에도 무언가 신비스러움이 담겨 있는 신비의 사찰이라 아니 할 수 없다. 모든 것이 명약관화하고 쉽게 이해되어버리는 시대에 이렇게 알 수 없고 직관할 수 없는 그 무엇은 사람들에게 묘한 동경감을 부여한다는 것을 이 곳 운주사에 가면 여러분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운주사는 그 의미를 쉽게 헤아릴 수 없는 미지가 있기에 약간은 두려우면서도 약간은 경외감을 일으킬 수 있는 바로 그러한 공간이다

천불천탑의 신비가 언젠가 밝혀진다고 하면 운주사는 가장 큰 매력인 신비와 미지라는 가치를 잃어버리게 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만일 그렇게 된다면 운주사는 더 이상 운주사가 아니리라운주사에 가면 상상해 보라. 왜 이렇게 꾸밈없고 존엄성이 없고 신성시 되지도 않는 깎다만 돌, 다듬다 만 돌, 만들다 실패한 돌덩이들 같은 것으로 이 사찰을 건립하게 되었는지 이 사찰을 건립하고 와불을 일으켜 세우면 무엇이 일어날 것이라 그들은 상상했던 것인지 그런 무한한 상상력의 연속 속에서 당신은 어느새 현실의 상처를 치유 받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와불

 

 

 

<2014. 11. 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