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차경주장 - 이스탄불 히포드롬 광장
히포드롬 광장은 서기 196년 로마의 황제 세비루스(Severus)에 의해 지어진 검투 경기장이었는데, 4세기 무렵 비잔틴 황제인 콘스탄티누스에 의해 검투 경기는 금지되고 대신 말이 끄는 마차 경기장으로 바뀌었다. 10만명 정도 수용이 가능했다고 하는 이곳은 경마장으로 이용되었을 뿐만 아니라 왕위 계승을 놓고 벌어진 수많은 전쟁의 무대가 되기도 했다. 13세기 초 십자군의 침입으로 이 광장에서 비잔틴군과 치열한 접전이 벌어졌는데 대부분의 광장 내 유적이 이때 파괴되었다.
4세기 초반에 로마 제국의 국교로 기독교를 공인한 콘스탄티누스 대제는 로마 제국의 수도를 로마에서 비잔티움으로 옮긴다.('비잔티움'은 바로 이스탄불의 옛 명칭) 원래 오래 전부터 비잔티움은 아시아와 유럽을 잇는 지리적 특성상 무역항으로 크게 발전했는데, 콘스탄티누스 대제가 로마 제국의 수도를 아예 비잔티움으로 옮겨 버리면서 더더욱 번성하게 되었고, 후에 꽤 오랫동안 유럽에서 가장 큰 도시였다. 지금은 이슬람 국가인 터키의 최대 도시이지만, 그 당시에는 유럽 최초의 기독교 도시였다. 콘스탄티누스 사후에는 콘스탄티누스의 도시라는 뜻인 '콘스탄티노플'로 도시 이름이 바뀌었고, 그 후에 로마가 동로마와 서로마로 분열된 이후에는 동로마 제국의 수도로서 오랫동안 중심지 역할을 했다.
어쨌든 다시 콘스탄티누스가 살아있을 때로 돌아가면요, 콘스탄티누스는 로마 제국의 수도를 비잔티움(現 이스탄불)으로 옮긴 후에 자신의 세력을 과시하려는 목적으로 여러 대형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그 중의 한 곳이 바로 '히포드롬'이었다. 물론 그 당시에는 광장으로 건설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이 자리에는 그 당시 10만 명을 수용할 수 있는 전차 경기장과 사교 생활을 위한 장소들, 그리고 여러 나라에서 가져온 진귀한 유물들을 전시하는 공간이 있었다고 한다.
▲히포드롬
▲히포드롬
▲히포드롬
▲히포드롬
▲히포드롬
▲히포드롬
<2014. 8.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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