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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의 부여 - 부여 홍산관아 객사

蔥叟 2014. 8. 25. 07:17

조선시대의 부여 - 부여 홍산관아 객사

 

객사건물은 관아에서 한 블록 아래 내려와 왼쪽으로 방향을 틀면 자리하고 있다. 객사정문을 통과해서 안으로 들어가면 홍산객사 건물이 나타난다. 객사는 고을의 큰 행사를 베풀었던 곳이기도 하고 사신이나 중앙에서 파견된 관리가 머물던 건물이다. 세도정치가 전개되던 조선 말기 헌종 연간에 군수 김용근이 건립했다고 한다. 일제 강점기 이후 면사무소로 사용되다가 최근에 크게 중수되어 지금에 이르고 있다. 객사 건물은 세 동의 건물이 붙어져 구성된다. 중앙에는 궐패를 안치하고, 초하루와 보름에 임금이 있는 궁을 향해 망궐례를 올린다. 좌우 양편에는 공무를 보는 관원들이 묵을 수 있는 숙소가 마련된다.

 

중앙에 궐패를 모셔 놓은 곳을 '정당'이라 부르고, 좌우에 묵을 수 있는 공간을 '익실'이라고 부른다. 좌우의 익실은 대칭의 균형을 이루고 있지 않은데 그것은 건축적 오류라기보다는 오른쪽보다 왼쪽을 더 많은 권위를 부여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나주의 객사에서도 이와 같은 양상을 읽어낼 수 있다. 홍산객사 역시 조선후기 관아 건물 중에서는 잘 남아있는 몇 안 되는 사례이다. 건물 곳곳에서 낡고 오래된 옛 멋이 고스란히 느껴진다. 객사안에는 보호수로 지정되어있는 높이가 15m에 달하고 둘레가 7.7m나 되는 수령 700년의 은행나무가 있다. 마을을 지키는 영험 있는 나무로 큰 재난이나 경사스러운 일이 생길 때에는 울기도 하고 불빛이 나기도 한다고 전해지며 마을 주민들이 위급한 일이 생길 때 기원을 드리면 소원이 성취된다고 하여 마을에서는 정월 초하룻날에 제를 올리는 풍습이 있었다고 한다.

 

▲홍산객사문

 

▲홍산객사

 

▲홍산객사

 

▲홍산객사

 

▲홍산객사

 

▲홍산객사

 

▲홍산객사

 

▲홍산객사

 

▲홍산객사 흔행나무

 

▲홍산객사 흔행나무

 

 

 

<2014. 7. 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