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천마총 출토 천마도 장니
天馬圖障泥
경주 대릉원에 위치한 천마총은 봉분 지름 약 47m에 높이 12.7m이며 조사 결과 무덤 축조 연대는 5세기 후반 이래 6세기 초로 추정된다. 출토품 양상이나 무덤 규모로 보아 왕릉 혹은 그에 준하는 무덤이다. 따라서 이를 왕릉으로 본다면 이에 묻힌 주인공은 소지왕(재위 479~499) 또는 지증왕(재위 500~513)일 가능성이 있다. 발굴 전 155호분이라는 숫자로만 일컫던 이 무덤은 천마도(天馬圖)라는 회화 작품이 출토되어 공식으로 천마총이라 일컫게 된다.
▲천마도
▲천마도
천마도는 말다래에 그려진 그림이다. 말다래란 한자어로는 장니(障泥)라고 하는 데 말이 달릴 때 발굽에서 진흙(泥)이 사람에게 튀어오르는 것을 방지(障)하고자 안장 아래로 늘어뜨려 진흙 튀김을 막아주는 역할을 한다. 말다래는 이뿐만 아니라 말에 탄 사람의 안전사고를 예방하는가 하면 발걸이인 등자로부터 말을 보호하는 역할도 한다. 또한 말다래는 장식성, 혹은 선전성이 있어 중요한 행사나 행렬 같은 데서는 장엄함을 높여주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4~6세기 무렵 신라인, 특히 왕을 비롯한 특권층에서는 죽은 사람을 매장할 적에 말다래를 포함하는 마구류를 껴묻거리로 함께 묻어주기도 했다. 천마총에서는 말 안장 3점이 나왔다. 안장이 3점이라는 뜻은 관련 마구류를 온전하게 갖춘다고 가정할 때 말다래는 총 6점이어야 한다. 왜냐하면 말다래는 말의 배 양쪽에 한 쌍을 달기 때문이다. 실제 천마총을 발굴한 조사단에서는 이곳에서 총 3세트 6점의 말다래가 출토됐다고 보고했다.
말다래는 주된 재료가 모두 백화수피(白樺樹皮)다. 백화수피는 특정한 나무를 지칭하지는 않는다. 글자 그대로는 껍질이 흰색 계통으로 화(樺) 계통에 속하는 나무껍질을 의미한다. 한데 백화를 흔히 자작나무로 이해하곤 한다. 실제로 발굴단에서는 이 백화수피를 자작나무 껍질로 보았으며 이런 이해가 최근까지도 광범위하게 상식으로 유통됐다. 90년대 이후 백화가 곧 자작나무라는 통설은 심대한 도전에 직면한다. 껍질이 흰 나무로는 자작나무가 유일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실제 왕벚나무나 거제수나무 같은 활엽수 껍질도 백화라 한 기록이 옛날 문헌에서는 더러 발견된다.
이에 더해 자작나무 자생지가 문제가 대두했다. 자작나무는 한반도에서는 중부 혹은 남쪽 지방에서는 자생하지 않기 때문이다. 대신 한반도에서는 북부지방 고산지대에서 자란다. 물론 요즘은 곳곳에 자작나무가 조경수 등으로 심는 일이 많으므로 남부지방에서도 자란다는 속설이 있지만, 이는 근래에 와서 일어난 현상일 뿐이다. 실제로 중남부 지방에 인위적으로 심은 자작나무는 생장에 커다란 한계를 보인다.
▲천마도 머리부분
▲천마도 꼬리부분
그렇다면 자작나무 껍질은 왜 그림을 그리는 '종이'로 사용됐을까? 이는 자작나무가 갖는 특징에서 비롯된다. 자작나무 껍질은 벗겨내면 마치 종이와 같다. 더구나 질겨서 잘 떨어지지도 않는다. 이런 특성을 간파한 신라사람들이 자작나무 껍질을 종이처럼 사용했을 것이다. 말다래 제작에 사용한 백화수피는 총 3장의 자작나무 껍질이 사용되었다. 천마를 그린 앞면에는 자작나무 줄기에서 껍질눈과 직교하는 방향으로 벗겨낸 껍질 1장을 사용하고, 뒷면에는 반대 방향으로 잘라낸 껍질 두 장을 이어붙였다. 백화수피 말다래 두 점은 모두 앞판보다 뒤판이 두꺼웠다.
자작나무 수령은 분석 결과 앞판은 40년 전후였고 뒤판은 52년임이 밝혀졌다. 자작나무 껍질은 수액이 오르는 3~4월에 채취한 껍질이 그렇지 않은 시기에 채취한 껍질에 비해 월등히 종이 재료로 우수성을 나타낸다. 실제로 물이 오른 시기의 껍질이 훨씬 잘 벗겨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나아가 이렇게 채취한 껍질은 자연 건조한 상태보다는 물에 한동안 담근 뒤 건조한 다음에 간단한 공정, 예컨대 다리미질을 하고서 사용해야 훨씬 상태가 좋다. 이런 자작나무 껍질에 그린 천마도 제작을 위해 연백(鉛白.백색)과 진사(辰砂.적색), 먹(墨.흑색), 석록(石綠.녹색)을 안료로 사용했다.
적외선 사진에 나타난 천마도는 더욱 생동감 있다. 적외선 사진을 보면 '천마'의 정수리에 외뿔 모습이 완연히 보인다. 이는 천마도의 '천마'가 말이 아니라, 실은 정수리에 뿔이 하나 난 상상의 동물인 기린(麒麟.아프리카 기린과는 관계없음)이라는 주장과 관련해 주목되고 있다. 다만, 이 '정수리 뿔'이 목덜미를 따라가면서 그려져 있는 갈기들의 일부분인지는 논란이 일 전망이다. 그럼에도 이 '정수리 뿔'은 그 위치가 정확히 정수리 위이며, 나아가 목덜미를 따라가며 그린 다른 갈기 그림들에 비해서는 훨씬 더 굵을뿐더러, 표현 양식에서 다른 양상을 보인다는 점에서 천마도는 천마를 그린 것이 아니라 기린을 형상화했다는 주장이 학계 일각에서 대두되었다.
▲천마도 전괴선 사진
▲천마도
하지만 2013년 연말. 보존과학 전문가들은 첨단 감식기법을 동원해 말다래판들의 실체를 밝히는 작업에 몰두하였다. 증기와 약품으로 얼룩을 녹이고 현미경으로 관찰하며 메스로 표면을 긁어냈다. 칠흑 같은 대나무 말다래판 위에 그림이 나타났다. 옛 보고서에 일광문으로 썼던 문양은 천마의 갈기였고, 빛나는 말 머리가 뒤이어 드러났다. 대나무판 위에 마직물, 금동뚫음무늬판을 겹쳐 올린 뒤 점열·마름모·비늘 무늬의 천마상 금동판을 못박은 정교한 걸작이었다. 국보 천마도가 그려진 말다래와 한짝을 이룬 다른 쪽 백화수피 말다래판에서도 비슷한 천마도가 드러났다. 어둠의 세월을 딛고 과학의 힘으로 깨어난 천마도 덕분에 신라미술사는 새 약동을 시작했다.
새 천마도 발견은 유령처럼 학계를 떠돌던 그림 주인공 논란, 곧 천마냐 기린이냐를 둘러싼 입씨름에 사실상 마침표를 찍었다. 금동판 천마도와 국보 천마도를 비교 분석한 결과 천마라고 결론지었다. 금동판을 오리고 두들겨 만든 동물상은 분명한 말 형상이고, 말등에 기 꽂이인 듯한 말갖춤 장식 흔적이 보이는 게 근거다. 금동판 천마도는 붓질과 달리 조형적 표현에 제약이 있어 이미지를 단순명확하게 뽑아낼 수밖에 없다. 국보 천마도의 동물종도 발굽이 하나인 기제류로 말에 가깝다는 분석이 나왔다. 금동판 천마도는 국보 천마도와 모양은 물론, 마름모꼴 누빔 흔적까지 본떠 만든 게 보인다. 천마임이 틀림없었다.
지금까지 다른 유적의 기린, 천마상과 비교해왔으나, 같은 천마총 유적 안에서 말이 분명한 천마도상이 다시 나온 만큼 논란은 끝났다. 기린의 특징이라는 머리 위 뿔이나 영기로 비친 부분은 갈기를 묶은 매듭으로, 북방 민족의 말 그림에서도 보인다. 입속 영기 등 기린상으로 추정할 만한 부분도 있지만, 상서로운 동물의 특징을 반영한 천마 그림의 한 요소로 봐야 한다.
▲천마도 머리부분
▲천마도 꼬리부분
천마도의 화폭인 말다래판 재질도 처음 분석해 자작나무 껍질임이 확인됐다. 원래 자작나무는 한반도 북부에서만 서식한다. 그림 재료를 북방의 고구려 등에서 들여왔다는 말이다. 더욱이 국보 천마도의 말 모양과 배경 무늬 등은 고구려 미술의 역동적 특징이 역력하다. 말의 앞뒷발이 전면 후면으로 뻗어 날아가는 듯 묘사되고, 배경인 덩굴·연봉 무늬들과 그 안에서 Y자형으로 틀어지는 곡선 등이 고구려 벽화와 상당 부분 일치한다. 천마총보다 앞선 5세기 초 고구려 덕흥리 벽화에 ‘천마지상’(天馬之像) 명문 붙은 말이 그려져, 이 상을 신라 천마도 원형으로 짐작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2014. 3.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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