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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릉 서오릉 - 고양 명릉 숙종대왕릉·인현왕후릉

蔥叟 2014. 3. 24. 05:58

조선왕릉 서오릉 - 고양 명릉 숙종대왕릉·인현왕후릉

 

   명릉은 조선 19대 숙종과 계비 인현왕후 민씨, 그리고 제2계비 인원왕후 김씨의 능이다. 숙종과 인현왕후는 나란히 자리한 쌍분으로 쓰고, 인원왕후의 능은 다른 편 언덕에 단릉 형식으로 모셔져 동원이강의 배치를 보이고 있다. 숙종은 왕비를 세 번 맞아들였는데, 원비인 인정왕후 김시의 능인 익릉은 서오릉 안에 따로 있다. 숙종은 제18대 현종의 아들로 태어나 현종 8(1667)에 세자로 책봉되었으며 1674년에 왕위에 올라 재위 46년 간 많은 업적을 남겼다. 예의에 관한 선비들 간의 논쟁과 장희빈을 중심으로 한 때 인현왕후 민씨를 몰아낸 사건을 겪었으나, 상평통보를 주조하고 백두산에 정계비를 세웠다. 재위 46(1720)60세로 돌아가셨다. 인현왕후 민씨(1667~1701)는 여양부원군 민유중의 딸로 숙종 7(1681)에 숙종의 계비가 되었다. 숙종 15(16879) 왕장 윤(뒤의 경종)의 세자 책봉 문제로 장희빈이 모함하여 폐위 당하였다. 후에 장희빈이 몰락하면서 복위된 뒤 35세로 돌아가셨다.

 

   명릉에 들어서면 정자각 뒤로 쌍릉이 보인다. 숙종대왕의 쌍릉은 능상도 작도 문인석과 무인석, 석마 등 모든 석물이 아주 작다. 장명등도 옥개석이 팔각에서 사각으로 바뀌었다. 숙종은 단종과 단종 비 정순왕후 송씨를 240년 만인 1698년 복위시켰다. 또 단종의 장릉과 정순왕후의 능을 간소하게 조성하면서 자신의 능도 간소하게 할 것과 부장품도 줄이라고 명한다.

 

朝鮮國

肅宗大王 明陵

仁顯王后 祔左

肅宗顯義光倫睿聖英烈章文憲武敬明元孝大王崇禎紀元後三十四年辛丑八月十五日誕生甲寅卽位庚子六月八日昇遐十月二十日葬于高陽東蜂峴甲坐之原在位四十六年壽六十繼妃孝敬仁顯王后閔氏丁未四月二十三日誕生辛酉冊封 王妃辛巳八月十四日昇遐十二月九日葬壽三十五

 

숙종현의광륭예성영렬장문헌무경명원효대왕 숭정 기원 후 34(1661) 신축 815일 탄생. 갑인년(1674) 즉위. 경자년(1720) 68일 승하하였다. 1021일 고양 동봉현 갑좌 언덕에 장사지앴다. 재위기간은 46년이었으며, 수는 60. 계비효경인현왕후민씨 정미년(1667) 423일 탄생. 신유년(1681)에 왕비로 책봉되었다. 신사년(1701) 814일 승하하여 129일 장사지앴다. 수는 35세다.

 

朝鮮國

仁元王后祔右岡 

惠順慈敬獻烈光宣顯翼康聖貞德壽昌永福隆化定懿章穆 仁元王后金氏丁卯九月二十九日 誕生壬午冊封 王妃丁丑三月二十六日 昇遐七月十二日 葬于高陽大王陵右崗乙坐原壽七十一 鳴呼前面篆字及陰記小子泣血拜手敬書少伸微忱焉 崇禎紀元後百三十年立于 大王陵碑左

 

혜순자경헌열광선현익강정성덕수창영복융화정의장목 인원왕후김씨 정묘년(1687) 929일 탄생. 임오년(1702)에 왕비로 책봉되었다. 정축년(1757) 326일 승하하여 712일 고양 대왕릉 우측 을좌 언덕에 장사지냈다. 수는 71세다. 아 슬프다. 소자가 읍혈배수하며 비석의 전면에 전서 및 비음을 새겨 감가 새기어 작은 정성을 올립니다. 숭정 기원후 130(1757) 대왕릉비 좌측에 세움

 

▲명릉전경

 

▲홍살문

 

▲판위

 

▲참도

 

▲정자각

 

▲정자각

 

▲정자각

 

▲정자각

 

▲정자각

 

▲정자각

 

 

▲비각

 

▲숙종대왕비

 

▲인현왕후비

 

▲사초지

 

▲사초지

 

▲소대

 

▲봉분

 

▲봉분

 

▲봉분

 

▲장명등

 

▲무인석

 

▲무인석

 

▲문인석

 

▲문인석

 

▲곡장

 

▲곡장

 

▲곡장

 

▲재실

 

 

 

<2014. 2. 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