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크로드문화순례◈/서역남로문화권

중국 돈황 양관교역도 벽화

蔥叟 2012. 11. 7. 00:26

중국 돈황 양관교역도 벽화

 

   선선으로 가는 밤열차를 타기 위하여 유원역에 도착하였다. 유원역에서 자정에 출발하는 기차를 타야한다. 역 대합실은 사람들로 만원이었다. 대합실 벽에 걸려있는 벽화가 눈에 들어왔다. 가운데 부분에 양관 성문이 그려져 있고 성문 가운데에는 '陽關'이라는 글자가 있어 이곳이 양관임을 알 수 있다. 양관에서는 여러 지역의 사람들이 붐비고 있다. 그 중에는 비단이로 보이는 물건을 교환하고 있는 사람들, 낙타를 타고 양관으로 오는 사람, 코끼리를 타고 오는 사람, 말을 타고 등장하는 사람, 그리고 걸어서 오는 승려 등 인근 각지의 다양한 문화를 지닌 사람들로 붐비는 모습이다.

 

   서역남로의 시작은 양관으로부터 시작된다. 양관은 둔황시를 나와 서쪽으로 난 길을 따라 칠리진(七里鎭)마을을 지나 서남쪽으로 76km 떨어진 곳에 위치하고 있는 국경관문을 말한다. 기원전의 한나라 때에 만들어진 이후 실크로드 요충지로, 서역북로의 옥문관(玉門關)과 나란히 이름이 드높았던 곳이었다. 특히 실크로드 마니아들에게는 서역, 타클라마칸 사막 등과 같은, 말과 함께 ‘역마살(驛馬煞)’을 자극하는 매력이 있는 곳이다. 

 

   많은 중국인들은 양관하면, 이백(李白), 두보(杜甫)와 함께 당나라 전성기의 대시인으로 유명한 시불(詩佛) 왕유(王維)가 남긴 칠언절구(七言絶句) 원이사를 안서로 보내며(送元二使安西)>이라는 제목의 시를 떠올린다. 원이사란 성은 원씨이고 벼슬이 이사인 친구를 말하고 위성은 위수(渭水)를 사이에 두고 창안(長安)과 마주보고 있는 도시인 현재의 함양(咸陽)을 말하는데, 이 시의 주제는 양관을 나가는 이를 위해 석별의 정을 노래한 것으로 보면 된다.

 

위성에 내린 새벽비가 흙먼지를 적시니(渭城朝雨浥輕塵)  

객사에 푸른 버들 색깔이 더욱 더 푸르구나.(客舍靑靑柳色新)  

그대에게 다시 술 한 잔 권하노니(勸君更進一杯酒)

서쪽 양관을 나가 서쪽으로 가면 돌아오는 이 없을 지니(西出陽關無故人) 

 

   양관은 이미 오래 전에 파괴되어 지금은 단지 붉은색 모래산 위에 양관의 눈과 귀의 역할을 했던 봉화대만 남아 있다. 봉화대의 높이는 4.7미터, 길이는 8미터이다. 양관 근처에는 남호(南湖)와 포도길이 있어 독특하면서도 이국적인 풍경을 즐길 수 있으며 이곳 민속문화를 탐방할 수도 있다.

 

▲양관 교역도 벽화

 

▲양관 교역도 벽화(부분)

 

▲양관 교역도 벽화(부분)

 

▲양관 교역도 벽화(부분)

 

 

 

<2012. 8. 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