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크로드의 갈래길 - 중국 신강 서역남로(西域南路, Xīyù nánlù)
서역남로는 둔황의 양관을 나와 타클라마칸 사막 남쪽과 곤륜산맥(崑崙) 사이의 오아시스 도시들을 연결하는 길을 따라 현 신장위구르의 끝 지점이며 서역남북로의 합류점인 카슈가르(Kashgar) 또는 카스[喀什]으로 가는 남쪽 루트를 말한다. 그러나 5세기 법현과 6세기 송운, 혜생과 7세기 현장 등의 구법승등이 지나간 후 점차로 그 기능을 상실하였다. 그 이유로는 기원전부터 둔황에서 호탄까지의 길을 연결해주었던 중요한 요지였던, 고대의 전설적인 왕국인 누란(樓蘭)이 5세기 청해지방에서 강대해진 티베트계 토욕혼(吐谷渾)에게 멸망당하면서 그 중간 거점을 잃은 남로도 따라서 쇠락의 길을 걷게 되어, 그 역할을 불로에게 내어주고 역사 속으로 사라져 버렸다.
▲서역남로
그래서 현재는 서역남로의 최대도시인 호탄으로 가는 방법은 먼 길을 우회하여 서역북로의 쿠얼러(庫而勒) 또는 룬타이(輪台)에서 새로 만들어진 횡단로를 이용해야 하는 실정이 되었다. 서역남로는 다음과 같이 연결된다. 둔황 → 샨샨(鄯善, 樓蘭) → 체모(Cherchen, 且末) → 니야(Niya, 尼壤) → 호탄(khotan, 和田, 于闐, 瞿薩旦那)→ 카르갈리크(哈爾碣里克, Karghalik, 葉城, 斫句迦國 →사쳐(Yaekand, 沙車) → 타쉬쿠르간(Tashkurghan, 塔什庫爾干, 漢盤陀國) → 카슈가르(Kashgar, 喀什, 疎勒, 佉沙).
서역남로의 시작은 양관으로부터 시작된다. 양관은 둔황시를 나와 서쪽으로 난 길을 따라 칠리진(七里鎭)마을을 지나 서남쪽으로 76km 떨어진 곳에 위치하고 있는 국경관문을 말한다. 기원전의 한나라 때에 만들어진 이후 실크로드 요충지로, 서역북로의 옥문관(玉門關)과 나란히 이름이 드높았던 곳이었다. 특히 실크로드 마니아들에게는 서역, 타클라마칸 사막 등과 같은, 말과 함께 ‘역마살(驛馬煞)’을 자극하는 매력이 있는 곳이다.
기원전부터 실크로드의 요충지로서 번영하던 누란은 기원 전후를 전후하여 한나라의 영향력 아래로 들어왔는데, 당시의 상황은 『한서 서역전(漢書西域傳)』에 자세히 나타난다. “선선국은 원래 누란이라 불렀다. 그 곳은 장안에서 6천 리 양관에서 1천6백 리 지점에 있다. 가구 수는 1,570호, 인구는 14,100명, 군인은 2,912명이다. 관리로는 선선도위(露善都尉)를 비롯하여 역장(驛長) 2명이 있다. 토지는 사막이어서 농사지을 땅이 없어서 딴 나라의 경작지를 빌리고 있으며 곡식은 근방의 나라에서 수입하고 있다.”
▲실크로드 전도
4세기의 법현(法顯)의 『불국기』에도 누란의 모습은 여전히 생생하다. “대사하(大沙河)를 17일간, 1천5백 리를 걸어 선선국에 도착하였다. 지형이 기묘하게 생겼으나 땅은 메마르다. 속인의 의복은 중원과 크게 다르지 않고 다만 모포는 조금 다르다. 국왕은 불법을 모시지만 4천여 승려들은 모두 소승을 공부하고 있다. 이곳에서 서쪽의 나라들은 승려와 속인들이 모두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모두 천축의 법을 따르고 있다. 나라마다 호국말이 다르다. 출가 사문들은 모두 천축의 글과 말을 배우고 있다.” 이를 보면 5세기 초까지도 누란은 아직 번창했던 것으로 보인다.
<2012. 8. 8>
'◈실크로드문화순례◈ > 서역남로문화권' 카테고리의 다른 글
중국 슐러 장건기념관 섬서성고현장건묘릉원 (0) | 2013.09.09 |
---|---|
중국 슐러 장건기념관 장건상 (0) | 2013.09.09 |
중국 슐러 장건기념관(张骞, Zhangqian) (0) | 2013.09.09 |
서역남로에 들어서다 - 중국 슐러(疎勒, Shule) 가는 길 (0) | 2013.09.09 |
중국 돈황 양관교역도 벽화 (0) | 2012.11.0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