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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의 기념비 - 서울 종묘 영녕전

蔥叟 2013. 6. 7. 02:36

침묵의 기념비 - 서울 종묘 영녕전

 

   영녕전永寧殿은 1421년(세종 3)에 정종의 신주를 정전에 모시며 정전의 신실이 부족하자 정전에 모시고 있던 신주를 다른 곳에 옮겨 모시기 위해 새로 지은 별묘다. 그 이름은 '왕실의 조상과 자손이 함께 길이 평안하라'는 뜻을 담고 있다. 영녕전은 신주를 정전에서 옮겨왔다는 뜻에서 조묘조廟라고도 한다. 시설과 공간 형식은정전과 마찬가지로 이중으로 된 월대 주위에 담장을 두르고 동남서 세 곳에 문을 두었다. 가운데 4칸은 태조의 4대 조상인 목조, 익조, 도조, 환조와 비를 모신 곳으로 다른 협실보다 지붕이 높다. 좌우의 협실 각각 6칸에는 정전에서 옮겨온 왕과 왕비 및 추존한 왕과 왕비의 신주를 모시고 있다. 영녕전은 정전과 같이 세면을 벽으로 감쌌으며, 내부 공간은 트여 있으나 가운데 4칸과 좌우 협실 사이에는 벽을 두어 구분하였다.

 

▲영녕전 외경

 

▲영녕전 남문

 

▲영녕전

 

    조선 초기 종묘에는 정전 한 채만 있었는데 시간이 흐르면서 신실이 모자라게 되었다. 천자의 나라인 중국의 종묘에는 7신실에 신주를 모시고 제후의 나라인 조선은 5신실에 신주를 모시게 되어 있었던 당시의 원칙 때문에 함부로 증축할 수도 없었다. 신주를 5신실에 모시는 오묘제오廟制는 왕조를 일으킨 태조와 현재 왕의 4대조상을 모시는 제도가. 논쟁끝에 중국 송나라의 제도를 참고하여 사당을 하나 더 짓기로 하고 정전 옆에 영녕전을 세웠다.  

 

▲영녕전

 

▲영녕전

 

▲영녕전 동월랑

 

   영녕전은 6칸에서 시작하여 6칸과 4칸의 증축을 거쳐 16칸이 되었다. 영녕전은 정전과는 봉안형식이 다르다. 영녕전에는 중앙의 각 신실에 태조의 4대 조상인 목조, 익조, 도조, 환조와 왕비들의 신주를 모셨으며, 양옆 협실에 후대의 신위를 모셨다. 이 경우에도 서상이 원칙은 지켜져서 서협실에는 정종, 문종, 단종, 덕종, 예종, 인종 등 선대 임금을 , 동협실에는 후대임금인 명종, 원종, 경종, 진종, 장조, 영왕과 각 왕의 비를 합쳐 모두 34위의 신주가 16감실에 모셔져 있다. 영녕전은 당연히 중앙 4칸을 중심으로 좌우로 증축하게 되었다.

 

▲영녕전 서월랑

 

▲영녕전 하월대

 

▲영녕전 상월대

 

   정전이 무한한 연속을 반복하는데 반하여 영녕전은 6-4-6칸으로 분절되어 크기와 규모를 짐작할 수 있다. 영녕전 남문 앞에 서면 3칸의 문틀 사이로 건물은 세부분으로 나뉘어진다. 중앙 4칸 태실의 지붕이 좌우협실보다 한단 높게 솟아있어 흔히 객사 건축과 문묘건축에소 흔히 볼 수 있는 모습이다. 이는 지나친 수평적 방향성으로 인한 지루하고 위압적인 느낌을 감소시킨다.

 

▲영녕전 상월대

 

 

 

<2013. 4. 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