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원 도피안사 철조비로자나불좌상
신라말에서 고려초에는 철로 만든 불상이 크게 유행했는데, 도피안사 철조비로자나불좌상은 그 대표적인 예로, 불상을 받치고 있는 대좌(臺座)까지도 철로 만든 보기 드문 작품이다. 머리에는 작은 소라 모양의 머리칼을 붙여 놓았으며, 갸름한 얼굴은 인자하고 온화한 인상이다. 평판적인 신체에는 굴곡의 표현이 없고, 양 어깨를 감싼 옷에는 평행한 옷주름이 형식적으로 표현되었다. 몸에 비해 가냘픈 손은 가슴 앞에서 왼손 검지를 오른손으로 감싸고 있는 모양으로 비로자나불이 취하는 일반적인 손모양이다. 불상이 앉아 있는 대좌는 이 시기에 가장 유행한 형태로, 상대와 하대에는 연꽃무늬를 새겼으며 중대는 8각을 이루고 있다. 통일신라 후기에 유행하던 철조비로자나불상의 새로운 양식을 대표하는 작품으로, 능숙한 조형수법과 알맞은 신체 비례를 보여주는 뛰어난 작품이다.
특히 불상 뒷면에 신라 경문왕 5년(865)에 만들었다는 내용의 글이 남아 있어서 만든 연대를 확실하게 알 수 있다. 이 조상기(造像記)는 경문왕(景文王)5년(865)에조성된 것이다. 철조 비로자나불을 만들고 불상의 등에 새긴명문으로, 불상의 크기는91cm이며 명문은 글자 크기2cm의 해서체로 쓰여졌다. 현재 철원군(鐵原郡)동송면(東松面)관우리(觀雨里)도피안사(到彼岸寺)에현존한다. 자료의 찬자와 서자는 미상이다. 본 자료는 먼저 불상조성의 발원문(發願文)을 쓰고 이어 불상조성의 내역을 기록하였다. 본조상기는 9세기 중반의 향도(香徒)조직과 신앙(信仰) 사례를 확인해주는중요한 자료이다.
香徒佛銘文幷序
夫釋迦佛晦影歸眞遷儀越世紀世掩色不鏡三
千光敀一千八百六載耳恠斯彫此金容⼊
⼊來哲因立願之唯願卑姓室遂棨椎自擊⼊
⼊覺長昏換庸鄙志契眞源恕以色莫朴⼊見
唐天子咸通六年正月日新羅國漢州北界
鐵員郡到彼岸寺成佛之⼊士⼊龍岳堅清于時⼊
覓居士結緣一千五百餘人堅金石志勤不覺勞因
향도불(香徒佛)의 서문(銘文)과 서(序)
석가불이 그림자를 흐려 진원(眞源)에 돌아가고 의례(儀禮)를 옮겨 세간을 넘으며 세상에 기록하여
형상을 가려 삼천대천세계에 빛을 비추지 않고 돌아가신 지 1806년이 되었다. 이를 슬퍼하여 이 금상을 만들고자…… 인하여 서원(誓願)을
세웠다. 오직 바라건대 비천한 사람들이 마침내 창과 방망이를 스스로 쳐 긴 어둠에서 깨쳐날 것이며 게으르고 추한 뜻을 바꾸어 진리의 근원에
부합하며 바라건대…….
당(唐)나라 함통(咸通) 6년(865) 을유년 정월 일에 신라국 한주(漢州) 북쪽 지방 철원군(鐵員郡)의
도피안사(到彼岸寺)에서 불상을 이룰 때에…… 이때에 거사(居士)를 찾아 1500여 명이 인연을 맺으니 금석(金石)과 같은 굳은 마음으로 부지런히
힘써 힘드는 줄을 몰랐다.
▲비로자나불좌상
▲비로자나불좌상
▲비로자나불좌상
▲비로자나불좌상
▲비로자나불좌상
▲상호
▲상호
▲상호
▲상호
▲지권인
▲발
▲발
▲상대
▲하대
▲명문
<2013. 1. 19>
'◈한국문화순례◈ > 한북문화권' 카테고리의 다른 글
철원 한탄강 승일교 (0) | 2013.02.03 |
---|---|
철원 노동당사 (0) | 2013.02.02 |
철원 도피안사 삼층석탑 (0) | 2013.01.31 |
광릉을 찾아서 - 남양주 광릉 정희왕후릉 (0) | 2013.01.30 |
광릉을 찾아서 - 남양주 광릉 세조대왕릉 (0) | 2013.01.2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