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명을 찾아서 - 산청 세심정
덕천서원 앞으로 덕천강이 흐르고 강가에는 허름한 정자 세심정(洗心亭)이 있다. ‘마음을 씻는 정자’라는 뜻으로 주역에 나오는 ‘성인이 마음을 씻는다(聖人洗心)’라는 말을 따라 그 이름을 붙였다. 세심정이란 이름은 남명의 제자 진주 수곡 선비 각재 하항이 지었다. 남명이 세상을 떠난 4년 후인 1576년 선생의 제자들이 덕천서원(덕산서원)을 건립하여 위패를 봉안하고 나서, 1582년 서원 건립에 앞장섰던 수우당 최영경이 세운 것이다. 따라서 세심정은 남명이 이 정자에서 쉬었거나 공부한 일이 없다.
▲세심정
▲세심정
정자는 인간이 자연 속에 머물며 즐길 수 있는 공간이며, 자연과 일치하여 자연을 느낄 수 있는 공간이다. 서원은 제사와 공부를 위해 지어진 공간이므로 마음을 놓고 쉴 수 있는 장소로 적합지 않다. 그래서 수우당은 덕천서원을 짓고 나서 선비들의 휴식공간으로서 세심정을 지은 것이다. 세심정에 있는 송정(松亭) 하수일(河受一)이 지은 기문에 “군자는 은거해 수양하며 한가히 거닐며 휴식한다. 대개 은거해 수양하는 곳에는 한가히 거닐며 휴식하는 곳이 있는 것이 옛날 도리이다”고 세심정을 지은 이유를 밝혔다.
▲세심정
▲세심정
현재의 정자는 여러 번 개축하여 건립 당시의 모습은 아니다. 기록을 보면 1582년 문밖 시냇가에 2칸으로 세웠다 라고 되어 있다. 이때 세운 것이 임진왜란 때 모두 불타버렸다. 정자는 원래 높은 곳 위에 세워진 집이란 뜻이다. 특히 굽이쳐 흐르는 냇가나 훌륭한 경관에 그 경관을 즐길 수 있도록 지어진 것이다. 그러니 세심정도 현재의 위치는 아닐지라도 덕천강가 경치 좋은 곳에 있었던 것으로 추측해 볼 수 있다. 이는 세심정 기문의 “흐르는 물가에 우뚝한 정자를 세운 것은 은거하면서 수양하는 사람으로 하여금 답답한 마음을 풀고 호연지지를 잘 기르도록 함이다”라고 한데서도 알 수 있다.
▲세심정 편액
▲세심정기
세심정은 임란 후 복원하면서 취성정(醉醒亭)으로 이름을 바꾸게 되는데, 취성이란 말은 굴원의 어부사에 나오는 말로 “세상사람들이 모두 술에 취했어도 나만 홀로 깨어있는다”는 뜻이다. 그리고 1815년 중수후 다시 풍영정(風詠亭)이라고 고쳤는데 이 이름은 논어에서따온 것이다. 그 후 세심정은 1870년 덕천서원이 훼철되자 다른 곳으로 옮겨 지어졌다가, 도로 확장 후 현재의 위치로 다시 옮겨지어진 것으로 그 시기는 대략 1920년대쯤으로 추정하고 있다. 원래 2칸이던 것이 지금은 1칸으로 되어있다.
▲세심정 천정
<2012. 3.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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