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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원 마운령 진흥왕순수비 탁본

蔥叟 2012. 3. 17. 05:10

이원 마운령 진흥왕순수비 탁본

<국립경주박물관특별전>

 

   1929년에 함경남도 이원군 동면의 운시산(雲施山)에서 발견된 신라 진흥왕이 새로 넓힌 영토를 직접 돌아보고 세운 비석이다. 비신의 높이는 165㎝, 너비 65㎝, 두께 약 30㎝. 건립연대는 568년(진흥왕 29)이다. 검은색을 띤 화강암을 다듬어 양면에 글자를 새겼다. 앞면 10행에는 각 행에 26자, 뒷면 8행에는 각 행에 25자를 새겼다. 비문의 구성은 제기·기사·수가인명으로 되어 있다. 제기에는 태창 원년에 진흥태왕이 순수했을 때 세운 것임을 밝혔다. 기사부분은 대체로 황초령비와 같으며, 수가인명도 황초령비와 대략 같으나 결자가 적어 황초령비의 결락부를 보완하는 데 도움이 된다. 그리고 황초령비에 보이는 직명 외에도 '급벌참전'(及伐斬典)·'내부통전'(奈夫通典)·'외객'(外客) 등의 직명이 보이는 것은 당시 국왕의 근시조직을 아는 데 참고가 된다.

 

   마운령비에 대한 최초의 기록은 조선 선조대 한백겸(韓百謙)의 『동국지리지(東國地理志)』에서 함흥의 황초령과 이원의 마운령에 각각 진흥왕 순수비가 있음을 확인하고 이를 신라가 동옥저를 정복하고 현지에 세운 기념비로 추정하였다는 기사이다. 그러나 그 이후에 소재가 묘연해져 『문헌비고(文獻備考)』 輿地考(여지고)의 저자인 신경준(申景濬)이 의문을 남기고 있고, 김정희(金正喜)도 회의적인 견해를 표명하는 등 당대의 석학들도 소문으로만 들을 수 있을 뿐이었다. 그러다 1920년대 최남선(崔南善)이 현지답사를 하는 우연한 계기를 통해서 그 모습을 드러내게 되었다. 그 현지답사는 함경남도의 문헌탐방관련 여행이었는데 이원군 동명에 있는 정조대의 현지 지식이었던 강필동(姜必東)의 유택(遺宅)에서 진흥왕 순수비가 있었음을 증언하는 『이성고기(利城古記)』란 책을 접하게 되었고 실재로 답사를 하여서 그때까지 ‘남이장군비(南怡將軍碑)’로 알려진 것이 진흥왕 순수비임을 확인하고 이를 소개해 세상에 다시 알려지게 되었다고 한다.

 

▲순수비 탁본

 

▲순수비 탁본(부분)

 

▲순수비 탁본(부분)

 

 

 

<2012. 1. 5>

磨雲嶺 眞興王巡守碑.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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