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길림성 장춘시(長春, Changchun)
1894~95년 청일전쟁의 결과 창춘 이남의 철도구역은 일본의 지배하로 들어갔다. 1906년 이후로 이 마을은 일본이 지배하는 남만주철도 구간의 북쪽 한계선이 되었다. 이당시에 옛 중국인 도시 북쪽에 일본인 역전마을이 생기면서 점차 커졌다. 일본이 만주를 강점하고 있던 1931년, 일본 광동군 사령부는 일본의 괴뢰정권인 만주국의 행정수도를 무크덴(지금의 선양[沈陽])에서 옮기기로 결정했다. 1932년 새 수도로 창춘이 결정되었으며 신징[新京]이라는 새 이름을 붙였다. 널찍한 도로와 많은 공지를 갖춘 넓은 도시로 건설되었으며 1938년에는 이곳에 국립대학교가 세워졌다. 신징은 행정·문화·정치 중심지로 설계된 반면, 산업의 발전은 주로 하얼빈[哈爾濱]·지린·선양·단둥[丹東]에 집중되었다. 신징에는 단지 경공업만이 어느 정도 발전했을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도시는 비상한 속도로 발전했다.
제2차 세계대전말에 일어난 여러 사건들로 인해 창춘은 크게 파괴되었다. 전쟁이 끝나기 며칠 전에 소련군대가 이 도시를 점령하고 심하게 파괴·약탈했다. 1946년 3월 소련군이 철수하고 난 뒤 몇 주 동안은 중국공산당 군대에 의해 점령되었다. 그러나 5월말에 중국 국부군이 이곳에 진입했다. 그뒤 남은 달 동안에 일본인 주민들은 본국으로 돌아갔다. 국민당이 창춘 시 자체를 통제하기는 했으나 주변 농촌지역에 대한 통제권은 공산당이 쥐고 있었다. 공산당은 농촌지역을 근거지로 삼아 게릴라전을 벌였는데 이로 인해 창춘은 다시 파괴되었다. 1948년 공산당 세력이 다시 창춘을 장악했다.
▲장춘
▲장춘
▲장춘
▲장춘
▲장춘
▲장춘
▲장춘
▲장춘
▲장춘시내 공원
▲장춘시내 공원
▲장춘시내 관공서건물
▲장춘
▲장춘
▲장춘
▲장춘
▲장춘 자연박물관
▲장춘 길림성박물관
▲장춘 길림성박물관
▲장춘 길림성박물관
<2011. 8.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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