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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길림성 길림시(吉林, Jilin)

蔥叟 2011. 10. 16. 05:04

중국 길림성 길림시(吉林, Jilin)

 

   중국 지린 성[吉林省]에 있는 도시이다. 성의 명칭과 도시의 이름이 같다. 지구급(地區級) 시로, 1970년대초 이전의 융지[永吉] 지구를 망라하면서 영역이 더 넓어졌다. 쑹화 강[松花江] 상류의 왼쪽 기슭에 있으며 주변은 구릉지대로 둘러싸여 있다. 지린 성의 성도인 창춘[長春]에서는 동쪽으로 100㎞ 떨어져 있다. 지린은 둥베이[東北:옛 이름은 만주]에서 가장 오래된 도시 가운데 하나이다.

 

   본래는 만주의 여진족인 울라부(部)의 영역에 속한 작은 마을이었다. 1651년 청(淸)나라는 러시아가 헤이룽 강[黑龍江] 지역으로 쳐들어올 것을 염려하여 이곳에 조선소를 세우고 헤이룽 강의 지류인 쑹화 강의 방어와 운송을 위해 쓸 배를 만들었다. 1973년 지린은 요새화되었으며, 1676년에는 영고탑(寧古塔:지금의 헤이룽장 성[黑龍江省]의 닝안[寧安])에 있던 청군 사령부가 옮겨왔다. 시가지는 1723~34년에 일시적으로 일반행정구역인 주(州)로 되었으나, 성벽이 둘러지고 부(府)로 승격한 1882년까지는 군사지역이었다. 17세기말 이 지역에 역참(驛站)제도가 세워졌으나, 1913년 창춘으로 가는 철도가 놓이기 전까지는 육지 교통이 불편했다. 이 철로는 나중에 한반도와의 국경에 있는 투먼[圖們]까지 연장되었고, 지린과 선양[瀋陽]을 연결하는 또다른 주요노선도 가설되었다.

 

   지린 주변지역은 빠르게 개척되어 농산물과 목재의 집산지이자 상업 중심지가 되었다. 착유·제분·양조·목재·성냥 제조와 같은 다양한 경공업도 발전했다. 일본이 만주를 점령한 1931년 지린의 인구는 10만 명가량이었으나, 창춘이 일본이 세운 괴뢰정권인 만주국의 새 수도가 되면서 빠르게 성장하자 그 그늘에 가려졌다. 1937년 중일전쟁 이후에 산업성장이 대규모로 이루어지기 시작했다. 일본은 지린 근처 쑹화 강변의 펑만[豊滿]에 거대한 수력발전소를 세웠으며, 지린에는 각종 공장을 세웠다. 주요생산품은 합성고무·석유·화학제품·종이 등이다.

 

   지린 시는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날 무렵, 소련이 점령하고 있던 시기와 중국 내전기간에 크게 파괴되었다. 1949년 이래로 산업 중심지로 계속 발전하고 있다. 펑만 댐은 복구되었으며, 배전망을 연결하여 하얼빈[哈爾濱]과 선양에도 전력을 공급한다. 1953~57년 제1차 5개년계획 아래 대규모 화학공장 3개와 제지공장이 세워졌다. 목재·성냥 산업도 확장되었고, 시멘트, 유리, 벽돌 및 타일과 같은 건축 자재들도 대규모로 생산하기 시작했다. 이 지역에서 나는 사탕무를 원료로 하는 제당업 및 착유산업도 중요한 역활을 한다. 1950년대에는 동쪽의 자오허[蛟河] 지방에서 나는 석탄을 이용하여 열 발전소도 가동하기 시작했다.

 

▲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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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 8. 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