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해 가는 길 - 중국 화룡시 발해 정효공주묘
정효공주는 발해 제3대 문왕(文王)의 넷째 딸로서 757년(문왕(文王) 22)에 태어나 792년(문왕 56) 6월에 36세의 나이로 사망하였다. 무덤은 중국 길림성(吉林省) 화룡현(和龍縣) 용수향(龍水鄕) 용해촌(龍海村)의 서쪽에 있는 용두산(龍頭山)에 있다. 무덤은 1980년 10월에서 12월 사이와 1981년 5월에서 6월 사이 두 차례 발굴되었다. 무덤은 벽돌로 쌓았으며, 무덤 칸의 벽면에 벽화를 그렸다. 묘지석은 1980년 발굴 시에 널길 뒤쪽에서 완전한 채로 발견되었다. 모양은 위가 뾰족하고 아래는 네모진 규형(圭形:옥으로 만든 홀)이다. 크기는 높이 105cm, 너비 58cm, 두께 26cm이며, 정면에 18행, 728자를 해서체(楷書體)로 음각으로 새겼다. 현재 묘지석은 연변조선족자치주박물관(延邊朝鮮族自治州博物館)에서 보관하고 있다. 글자는 모두 판독이 가능하며, 그 내용은 정효공주의 출신, 공주의 지혜로움과 아름다움을 칭송한 것, 출가, 남편과 딸을 일찍 잃고 수절한 사실, 장례, 애도문의 순으로 구성되었다.
▲정효공주묘 원경
▲정효공주묘 원경
묘지석은 정혜공주묘지와 더불어 발해인이 남긴 귀한 자료이다. 특히 발해의 국가 기틀이 확립되던 문왕대의 정치상황을 이해하는 데에 귀중한 정보를 제공해주고 있다. 예를 들어 문왕의 존호(尊號)가 ‘대흥보력효감금륜성법대왕(大興寶曆孝感金輪聖法大王)’이었으며, 그가 대흥(大興)이란 연호를 사용하다가 도중에 보력으로 바꾸었고, 다시 말년에 대흥으로 복귀한 사실을 전해주고 있다. 아울러 존호의 내용을 통하여 문왕이 불교에서 이상적 제왕을 일컫는 전륜성왕(轉輪聖王)을 자처하였음을 살필 수 있다. 그리고 당시에 문왕을 ‘황상(皇上)’이라고 불러 발해에서 그가 황제적인 지위를 누렸던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밖에도 무덤의 벽화는 발해인의 모습과 생활상을 생생하게 전달해주고 있어 주목을 받았다.
▲정효공주묘 벽화
▲정효공주묘 벽화
정효공주의 무덤에서 글자가 새겨진 벽돌 3장이 발견되었다. 하나의 벽돌에는 ‘회방우엄(會邦于广)’이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었다. 마지막 글자는 ‘광(廣)’의 약자(广)인지, ‘이(二)’자인지 명확하지 않다. 벽돌의 크기는 길이 33cm, 너비 16.5cm, 두께 5.8cm로 현재 연변박물관에서 보관하고 있다. 회방은 글자를 새긴 사람의 성, 우엄은 이름으로 추정하기도 한다. 또 하나의 벽돌은 장방형(긴네모꼴)으로 길이 30cm, 두께 5.5cm이며, ‘난서(蘭書)’란 글자가 초서체(草書體)로 새겨져 있다. 난서는 훌륭한 문장, 또는 문장이 아름답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세 번째의 벽돌은 길이 15.5cm, 두께 6cm로 ‘시요산효(屎尿产孝)’란 글자가 새겨져 있다. 다른 것들과 달이 글씨체와 필순이 격에 맞지 않아 무덤을 쌓던 사람들이 불만을 표출한 것이라고 보기도 한다.
▲정효공주묘지석
<2011. 8. 4>
貞孝公主墓誌幷序.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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