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해 가는 길 - 중국 장백현 발해 영광탑
중국 길림성 장백조선족자치현(長白朝鮮族自治縣)에는 발해시대의 5층 벽돌탑이 현재에도 완전하게 남아 있다. 이 탑은 누각식(樓閣式)으로 평면이 방형이고 안에는 비어 있다. 탑의 평면은 4각형이고 전체 높이는 약 13m이다. 맨 아래층의 각변의 길이는 3.3m이며 탑신은 아래가 넓고 위로 올라갈수록 좁아진다. 9~10세기에 건립된 발해시대의 누각식 전탑으로 영광탑 또는 발해전탑이라고도 한다. 1908년 장봉대라는 청나라 관리가 이 탑에 대하여 공자를 모신 노나라 사당인 영광전처럼 오랜 세월 속에서도 의연하게 남아있다고 평한 뒤로 영광탑이라고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영광탑
▲영광탑
▲영광탑
이 탑은 중국 동북지역에서 현존하는 고탑 가운데 연대가 가장 오래되었고, 동북 지역에서 보기 드문 누각식 탑이라는 점이 특징이다. 또 당나라의 건축기법과 유사한 면을 보여 당나라 시기에 발해와 중국의 관계가 밀접하였음을 보여준다. 또 이 탑의 안내문에는 "당나라 때 서안 흥교사의 현장탑과 비슷한 당나라 풍격의 탑"(其形制與西安興敎寺 唐代玄奬塔相以 具有唐代風格)이라고 적어, 발해문화의 당나라 종속성을 강조하고 있다.
▲영광탑
▲영광탑
▲영광탑
▲영광탑
하지만 이 탑이 축조할 당시 발해는 당나라 스스로가 해동성국이라고 부를 만큼 융성했으며 탑은 결코 당나라 풍이 아니다. 오히려 안동이나 의성에 있는 우리 고유의 전탑과 비슷하며 발해와 통일신라의 활발한 교류를 증명하는 사료적 가치를 지닌 것으로 보인다. 각 층에는 창문을 나타내어 전탑의 답답한 구조에서 벗어나는 슬기로운 디자인 감각도 보여준다. 특히 영광탑은 자리앉음새가 뛰어나 언덕바지에 오롯하게 솟아 있어 멀리 압록강 너머 혜산이 내려다 보아는 전망이 매우 아름답고 아련하다.
▲영광탑
▲영광탑
▲영광탑
그런데 1984년 탑을 보수할 때에 탑 안에 사리 장치가 있었던 것이 아니고 지하에 지궁(地宮)이라는 무덤 칸이 확인되었다. 이미 도굴된 상태였지만 무덤 속에서 간단한 벽화와 인골이 든 사리함이 안치되어 있어, 정효공주(貞孝公主) 무덤과 같은 무덤탑의 성격을 띠고 있다. 발해의 정효공주 무덤탑이나 마적달탑 등과 비교된 뒤 1980년대에 와서야 발해시대의 탑이라는 것이 확인되었다.
▲영광탑
▲영광탑
▲영광탑
이 탑의 탑신(塔身) 1층 4면에 각기 글자를 도인화한 것으로 보이는 화문전(花文塼)이 박혀 있으니, 동쪽면에는 ‘國’자, 남쪽면은 ‘立’자, 서쪽면은 ‘王’자, 북쪽면은 ‘土’자처럼 보인다. 따라서 이를 이어서 읽게 되면 “국립왕토(國立王土)” 또는 “왕립국토(王立國土)”가 된다. 정확한 의미는 알 수 없지만, 불교식 탑에 왕토(王土)사상과 관련된 문구가 새겨진 것으로 보아 발해 왕실이 불교와 밀접한 관련을 가지고 있었던 사실을 반영하는 것으로 여겨진다. 그러나 동쪽면의 ‘國’자는 ‘□’, 남쪽면의 ‘立’자는 ‘竝’으로 읽기도 한다. 이로 보아 당시의 불교는 발해 왕실과 상당히 밀착되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영광탑
▲감실
▲탑신부
그런데 이 발해의 영광탑이발해사 침탈에 급급한 중국의 허술한 유적관리로 인하여 기울어지고 있다. 현재 영광탑은 동남족으로 15도 가량 기울어져 있다. 보강이 시급한 실정이지만 중국 정부는 이를 그대로 방치하고 있어 보강조차 불가능한 상태로 악화될 우려가 높다. 1984년 탑을 보수할 때에 부실한 복원이 그 원인으로 보인다.
▲상륜부
▲풍탁
▲영광탑 표석
<2011. 8. 3>
'◈한국문화순례◈ > 북방문화권' 카테고리의 다른 글
발해 가는 길 - 중국 돈화 육정산고분군 (0) | 2011.10.07 |
---|---|
발해 가는 길 - 중국 화룡시 발해 정효공주묘 (0) | 2011.10.06 |
민족의 영산 백두산 - 중국 백두산 비룡폭포 (0) | 2011.10.03 |
민족의 영산 백두산 - 중국 백두산 들꽃 (0) | 2011.10.02 |
민족의 영산 백두산 - 중국 백두산 가는 길 (0) | 2011.10.0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