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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 가는 길 - 중국 집안 장수왕릉

蔥叟 2011. 8. 4. 06:40

고구려 가는 길 - 중국 집안 장수왕릉

 

   중국 지린 성[吉林省] 지안 현[集安縣] 용산(龍山:土口子山) 아래에 있는 고구려기단식 돌방돌무지무덤[基壇式石室積石塚]이다. 정식 명칭은 우산하1호분(禹山下一號墳)이다. 무덤 앞으로는 퉁거우 평야[通溝平野]가 펼쳐져 있고 그 너머에 압록강이 흐른다. 무덤은 화강암 장대석을 이용하여 방대형 단을 7층으로 쌓고 제4층 단의 한가운데에 널길과 돌방[石室]을 설치했다. 묘실의 방향은 서남향이며 무덤의 네 모서리는 정확히 동서남북에 맞추어졌다. 무덤 중심부의 높이는 11.28m, 밑변 한 변의 길이는 29.34m, 밑면적 860㎡이다. 1,100여 개의 장대석으로 외형을 축조한 후 내부는 강돌로 채웠다. 무덤축조에 쓰인 석재의 부피는 총 6,000㎥에 이른다.

 

▲장수왕릉

 

▲장수왕릉

 

   무덤의 기초부는 지면을 깊이 5m가량 파내고 자연석을 다져넣은 후, 그 위에 큰돌을 깔았는데 제1층 기단부의 바깥으로 4m가량 나오게 하여 무덤돌이 내리누르는 힘에 견딜 수 있게 했다. 무덤의 제1층은 4단으로, 2~7층은 모두 3단으로 장대석을 쌓았다. 이중 제1단에 쓰인 장대석 중 큰 것은 길이 5.7m, 너비 1.12m, 두께 1.10m에 이른다. 각층의 윗단 장대석 상면과 위층 하단 장대석 하면에는 서로 맞물리도록 7~8㎝ 너비의 요철부를 만들었다. 제1층의 각면에는 일정한 간격으로 높이 5m가량의 대형 석재로 버팀돌을 세워 무덤을 지탱하게 했는데, 북면의 1개는 깨어져 없어지고 현재는 11개만 남아 있다.

 

▲장수왕릉

 

▲장수왕릉

 

   널길은 5층 남면의 하단 중앙에서 안으로 기울어 내려가게 제3층 상면을 바닥으로 하는 널방[玄室]과 이어진다. 널길의 길이는 5.5m이며 널길 입구에는 문지방과 같은 거대한 장대석을 가로놓아 제4층의 벽석 속으로 감추어지게 했다. 널방은 장대석을 6단으로 쌓아올려 정방형의 벽을 이루게 하고 그 위에 역계단식 평행줄임방식으로 들보 역할의 석재를 얹어 마무리한 다음 길이 4.5m, 너비 3.8m 크기의 판석을 덮어 축조했다. 천장돌의 넓이는 약 60㎡, 무게는 50t가량이다. 널방의 길이와 너비는 각각 5.0m, 높이 5.5m이다.

 

▲장수왕릉

 

▲장수왕릉 받침돌

 

   널방 안에는 동서로 나란히 2개의 널받침[棺臺]을 설치했다. 널받침은 길이 3.7m, 너비 1.5m이며 윗면 가장자리를 요철형으로 두드러지게 하여 관이 놓일 위치를 나타냈다. 널방 안에는 본래 석회를 발랐으나 현재는 그 자취만 남아 있다. 무덤정상부에 놓인 돔형의 석재 상면 4변에는 21개의 둥근 구멍이 뚫려 있고 주변에서 상당량의 와당편을 발견했다. 무덤의 남쪽 흙무더기에서 연꽃무늬 등이 장식된 와당편과 녹슨 쇠사슬이 여러 점 발견되었는데, 둥근 구멍은 쇠사슬로 난간을 설치했던 것이고, 와당과 기타 건축자재류로 보아 정상부에 사당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장수왕릉 받침돌

 

▲장수왕릉 받침돌

 

   무덤은 오래 전에 도굴되어 묘실 내에서는 일체 유물이 발견되지 않았고 단지 무덤 남쪽 밑의 흙더미에서 동제장식편이 수습되었을 뿐이다. 무덤둘레에는 잔자갈을 깔고 그 바깥에 돌담을 둘러 묘역을 구분했다. 돌담은 모두 무너져 현재는 그 자취만 남아 있다. 묘역의 북편 50m 지점에는 동서로 나란히 5기의 배총(陪塚)이 마련되었으나 현재는 1기만 그 형태를 유지하고 있다. 배총은 기단부 3층과 묘실일부만 남아 있으며 남향이다. 기단부의 길이는 9.2m, 높이는 1.9m이다. 묘실 네 벽과 천장은 각 1개씩의 대형판석으로 이루어졌다. 타원형에 가까운 천장돌 밑면 둘레에는 요철형의 돌기부를 만들어 빗물이 돌방 안으로 흘러 들어오지 못하게 했다.

 

▲장수왕릉 널방

 

▲장수왕릉 받침돌

 

   장군총에 쓰인 석재는 무덤의 서북 20㎞ 거리에 있는 양펀 현[陽分縣] 가오타이춘[高臺村] 상뤼수이차오[上緣水橋] 근처 채석장에서 가져온 것 같다. 그 이유는 이 채석장의 석재가 결이 고운 화강암으로 장군총에 쓰인 돌과 재질이 같기 때문이다. 무덤의 거대한 규모, 5기에 이르는 배총, 무덤이 돌무지무덤의 최종단계형인 기단식돌방무덤인 점, 무덤 주변에 태왕릉(太王陵)과 광개토왕비(廣開土王碑) 등이 있는 점 등을 근거로 무덤의 피장자를 412년에 죽은 광개토왕으로 보는 견해가 있다. 그러나 태왕릉을 광개토대왕릉으로 보고, 장군총은 장수왕릉이라고 보는 견해도 많다.

 

▲장수왕릉 받침돌

 

▲장수왕릉 기초석

 

 

 

<2011. 7. 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