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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 나라 가는 길 - 경주 마동 삼층석탑

蔥叟 2011. 6. 24. 06:30

부처님 나라 가는 길 - 경주 마동 삼층석탑

 

   신라시대의 절터 중에서 삼국사기에 나오는 곳은 많이 비정되고 있지만 삼국유사의 것은 아직 비정되지 못하는 곳이 많다. 이곳 장수사터도 잘 못 비정된 절터 가운데 하나이다. 역사 유적지를 비정할 때는 한가지 속성이 있다. 그것은 유물이 있으면 되도록 그것에 어떤 역사성을 부여하려는 속성이다. 삼국유사 대성효이세부모조에 나오는 장수사 역시 마찬가지다. 김대성이 사냥해서 잡은 곰을 위해 지었다는 장수사(또는 웅수사)에 관하여 삼국유사에는 절의 위치에 대하여 토함산에 있다는 것밖에는 아무런 언급이 없었다. 그러므로 토함산에 있는 수많은 절터 가운데 이곳이 장수사터라는 증거는 아무 것도 없는 실정이다. 다만 역시 김대성과 관련이 깊은 불국사에 가깝고 괜찮은 유물(삼층석탑)이 있기 때문에 이곳이 장수사터로 비정된 것뿐이다.  

 

▲마동 삼층석탑

 

   모량리(牟梁里·浮雲村이라고도 한다-현재의 운대리로 추측하기도 한다)의 가난한 여자 경조(慶祖)에게 아이가 있었는데 머리가 크고 이마가 편편하여 성처럼 생겼으므로 이름을 대성(大城)이라고 하였다. 집안이 궁색하여 길러내기가 어려웠으므로 부자 복안(福安)의 집에 품팔이를 하였는데 그 집에서 밭 몇 묘를 나누어주어 의식(衣食)의 밑천으로 삼았다. 이때에 덕망 있는 중 점개(漸開)가 흥륜사에서 육륜회(六輪會)를 배설코자 복안의 집에 와서 권선을 하였더니 베 50필을 시주하였다. 점개가 주문으로 축원하기를, "신도님네 시주를 좋아하시니 천신이 언제나 보호하시리. 하나를 시주하면 만 갑절을 얻으리. 안락을 누리고 수명을 길게 되리라" 고 하였다. 

 

   대성이 이것을 듣고 뛰어들어와 그의 어머니께 말하기를, "내가 문간에서 중이 외우는 소리를 들으니 하나를 시주하면 만 갑절을 얻는다고 하더이다. 생각건대 우리가 전생에 일정한 적선이 없었기 때문에 지금 이렇게 가난한 것입니다. 이생에서 또 시주를 않다가는 오는 세상에서 더욱 가난할 것이니 내가 품팔이로 얻은 밭을 법회에 시주하여 후생의 과보를 도모함이 어떠리까?" 라고 하매 어머니가 "좋다!" 고 하여 점개에게 밭을 시주하였다. 얼마 못 되어 대성이 죽었는데 이날 밤 재상 김문량(金文亮)의 집에서는 하늘로부터 외치는 소리가 있어 이르기를, "모량리의 대성이라는 아이가 이제 너의 집에 태어날 것이다!" 고 하였다.

 

   집안 사람들이 모두 놀라 사람을 시켜서 모량리를 뒤졌더니 과연 대성이 죽었다. 하늘에서 외치는 소리가 있던 한날 한시에 그 집에서는 아기를 배어 낳으니 아기가 왼손을 쥐고 있으므로 이것으로 이름을 짓고 그의 예전 어머니를 이 집으로 맞아 함께 봉양하였다. 아이가 장성하매 사냥을 좋아하였다. 하루는 토함산에 올라가 곰 한 마리를 잡고 산 밑 마을에서 묵더니 꿈에 그 곰이 귀신으로 화하여 시비를 걸어 말하기를, "네가 무엇 때문에 나를 죽였느냐. 내가 환생하여 너를 잡아먹으리라!"고 하니 대성이 무서워 떨면서 용서를 빌었다. 귀신이 말하기를, "나를 위하여 절을 세울 수 있겠느냐?"고 하여 대성이 그러겠다고 맹세하고 깨어보니 땀이 흘러 요를 적셨다. 

 

   이로부터 그는 사냥을 금하고 곰을 위하여 장수사(長壽寺)를 곰을 잡았던 자리에 세웠다. 이로 하여 마음에 감동되는 바 있어 자비로운 결심(悲願)이 한결 더하여 곧 이생의 양친을 위하여 불국사를 세우고, 전생의 부모를 위하여서는 석불사(石佛寺)를 세워서 신림(神琳), 표훈(表訓) 두 스님을 청하여 각각 살게 하였으며, 부모의 소상들을 성대히 세워 양육한 은혜를 갚았다. 한 몸으로 두 세상의 부모에게 효도를 한 것은 또한 드문 일일 것이니 어찌 착한 시주의 영험을 믿지 않겠는가! 대성이 장차 석불을 조각코자 큰 돌 한 개를 다듬어 석불을 안치할 탑 뚜껑을 만드는데 갑자기 돌이 세 토막으로 갈라졌다. 대성이 통분하면서 잠도 들지 않고 있던 차에 천신이 밤중에 강림하여 다 만들어놓고 돌아갔다. 대성은 막 자리에서 일어나자 남쪽 고개로 내달려가 향나무 불을 피워서 천신을 공양하였다. 이 때문에 이곳을 향 고개(香嶺)라고 하였다. 저 불국사의 구름다리나 돌탑이나 돌과 나무를 새기고 물리고 한 기교는 동방의 여러 절들로서는 이보다 나은 데가 없다.

 

<삼국유사 대성효 이세부모(大成孝二世父母)조>

 

▲마동 삼층석탑

 

   이곳에 있는 삼층석탑은 우동의 반전이 날렵하고 상층기단에 탱주가 두 개씩 새겨져 있어 8세기 후반기의 탑임을 알 수 있다. 그러나 높이도 석가탑보다는 작기 때문에 불국사보다는 더 늦은 시기의 탑임을 알 수 있다. 만약 이곳이 김대성의 청년시절과 관련이 있는 절이라면 불국사보다도 더 이른 시기에 창건된 절이어야 한다. 이 탑에는 각층 지붕돌 끝 부분에 풍탁을 매달았던 구멍이 남아있는데 특히 1층 지붕돌의 풍탁 구멍은 7개가 있어서 특이하다. 토함산 서쪽에는 750년∼800년 사이에 많은 절과 왕릉이 들어섰다. 그러므로 이 지역은 왕실과 관련된 어떤 장소임에는 틀림이 없다.

 

 

 

<2011. 4. 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