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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보종찰 순례 - 순천 송광사 수선영역

蔥叟 2011. 3. 12. 06:15

승보종찰 순례 - 순천 송광사 수선영역

 

   대웅전 뒤편 석축 위에 자리한 건물은 대개 선(禪)을 행하는 수선도량(修禪道場)으로, 설법전 오른쪽에 자리잡은 수선사는 설법전 등과 함께 이러한 목적에 의해 조성된 송광사의 대표적 건물이다. 수선사(修禪社)라는 이름은 보조국사가 길상사를 중창하면서 새롭게 바꾼 사찰명으로, 당시에는 방장(方丈)이라 하여 보조스님의 처소로 사용하였다. 이후 조선 말기에 해은대사(海隱大師)가 33조사의 영정을 도서실로 쓰던 대장전으로 이안하고, 부휴스님의 영정을 수선사에 봉안한 후 조사전(祖師殿)으로 사용하였으나, 1951년의 화재로 모두 소실되고 말았다.

 

▲수선영역

 

   현재의 건물은 1969년에 세워진 것으로, 정면 6칸 측면 4칸의 단층 맞배건물이다. 외부는 매 칸마다 세살의 2분합 창호와 측면 전후에 툇마루를 각각 1칸씩 가설하고, 어칸 상부에는 경봉(鏡峰) 스님이 쓴 '修禪社' 편액과 주련 4기가 걸려 있다. 내부는 선방(禪房)으로서 커다란 둥근 거울을 봉안하여 ‘자신을 비춰보라’는 의미를 무언으로 전하고 있다. 송광사 내의 명실상부한 수도처로서 이곳에는 약 25명의 선객이 상주하고 있다. 국사전ㆍ설법전을 비롯한 이곳 선원구역은 외인의 출입을 일체 금하고 있으며, 차분한 선실의 모습을 갖추고 있다.

 

   설법전은 대중을 모아 놓고 법회를 하기 위한 대강당이였다. 정면 5칸, 측면 3칸의 꽤 규모 있는 건물이다. 또 해인사본장경 (海印寺本藏經)을 봉안하였던 전각이기도 하였다. 설법전의 연혁(沿革)은 송광사고(松廣寺庫)와 송광사지(松廣寺誌)에 자세히 기록되어 있다. 설법전은 1210년 이전부터 존재한 건물로 보조국사(普照國師)의 설법처(說法處)였다. 그리고 1210년 3월 27일에는 보조국사께서 최후 법문 후에 좌탈입멸(坐脫入滅)한 곳이기도 하다. 스님께서 입적 하신 3년 후인 1213년에는 전계상(前階上)에 보조국사비(普照國師碑)가 건립되었다. 또한 1458년 4월에는 해인사본장경이 봉안되었다. 이 후 설법전은 시간의 흐름과 함께 여러 차례 중수(重修)를 거치게 된다.

 

▲수선영역

 

   1765년 12월에는 지장탱(地藏幀)이 조성되어 설법전에 봉안된다. 1854년 태풍으로 인한 약간의 파손이 있는 부분을 이듬해 5월에 중수를 하게 된다. 또 1899년는 해인사본장경 1부를 다시 봉안하게 되고, 1902년 5월에는 단청불사를 하게 된다. 또한 1907년 4월에는 독성탱(獨聖幀)을 조성하여 봉안하게 된다. 설법전은 수차례의 중수와 단청 등의 불사로 인하여 본래의 모습은 아니더라도 1210년 이전부터 전해져 오는 송광사의 고(古)전각 중에 하나였다. 그러나 1951년 5월 6·25전쟁 중에 일어난 방화로 인하여 소실(燒失)되고 만다. 이때에 해인사본 장경과 지장탱 등이 함께 소실되게 된다.

 

 

   전쟁의 어수선함과 사회 혼란, 전쟁이 끝난 후에 따르는 궁핍으로 설법전은 바로 중건되지 못하다가 1968년 4월에 비로소 중건된다. 그리고 1975년에 단청 불사가 이루어졌다. 한편 2005년 3월 3일 설법전 기와를 번와하던 중에 명문(銘文)이 존재하는 기와들이 4점 발견되었다. 그 중 3점은 같은 내용의 명문이고, 나머지 한 점은 다른 내용이다. 명문을 살펴보면 아래와 같다.

 

▲설법전

 

庚午年四月

甘露寺瓦□

盖瓦大施主蔡存後

供養大施主李貴万

布施大施主崔從浩

施主崔永浩施主信和

幕沙大施主仅敏比丘施主勝梅

施主從祥 上坦爲主韓乭屎

富勝哲

化主海祖

供養主學稔比丘

 

▲진여문

 

   위의 내용은 3점의 기와에서 공통적으로 나온 것이다. 여기에서 흥미 있는 사실이 발견되었다. 우선 첫 번째에 나오는 경오년(庚午年)은 1630년을 말한다. 그리고 감로사(甘露寺)는 구례 천은사(泉隱寺)의 옛 이름이다. 1673년에 조성한 천은사 괘불(掛佛) 화기(畵記)에 감로사로 기록되어 있다. 천은사는 828년 인도의 덕운(德雲)스님이 감로사로 창건한 것을, 1679년 단유선사(袒裕禪師)께서 중수 후 '천은사'로 절 이름을 바꾼 것이다. 또한 시주자 최영호(崔永浩)는 1633년 7월 송광사 천자암(天子庵) 중건 시에도 시주한 인물로 송광사지에 기록되어 있다.

 

  위의 명문이 양각되어 있는 기와들은 지금의 천은사 기와들로 추정된다. 즉 1630년 4월에 천은사에서 어떤 전각의 번와(飜瓦) 작업이 있었을 시에 제작한 것이다. 이러한 기와를 송광사의 설법전에 사용하였던 것이다. 또한 최영호가 1630년 감로사와 1633년 천자암의 시주자로 등장한 것도 묘한 인연이 있었을 것으로 여겨진다. 또 다른 명문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불일문

 

正德三

年戊辰

五月日

大施主

李■■

□■■

□■■

說■■

兩■■

今立■■

供養主

隱峯

化主□雄

 

▲하사당

 

   위의 기와는 양각 된 명문 부분이 결락되어 보이지 않는 부분이 많다. 그러나 정덕삼년무진오월일(正德三年戊辰五月日)이라고 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1508년 5월임을 알 수 있다. 또한 ‘說■■’은 ‘說法殿’으로 보인다. 즉 1508년 당시에도 설법전이 중수를 하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불이문

 

 

 

<2011. 1. 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