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보종찰 순례 - 양산 통도사 자장암
불보(佛寶) 사찰 통도사가 있는 영취산 계곡에는 많은 암자들이 있다. 통도사에서 시작되는 영취산 계곡엔 20여 개의 산내 암자들이 골짜기를 매우고 있다. 자장암은 자장율사가 통도사를 창건(신라 선덕여왕 15년(서기 646년))하기에 앞서 수도하던 곳이라니, 절골의 발원지며 통도사의 모태인 셈이다. 고개를 넘고 개울을 건너 찾은 자장암은 조용하고 아름답다. 전설이 아름답고 주변 산세가 그림처럼 아름답다. 담장 너머로 보이는 기와지붕과 기암, 그리고 가지를 늘어뜨린 낙락장송이 어우러져 한 폭의 수묵화를 연상케 한다. 그 속에 고승들이 살았음직한 아담한 전각들이 자리하고 있다.
▲자장암 일주문
▲자장암 일주문
계단으로 올라서니 제일먼저 갈증을 달래 줄 감로전이 눈에 들어온다. 감로전 우측으로 있는 전각은 스님들의 수행공간이며 요사이다. 법당은 왼쪽에 세워진 출입문으로 들어선다. 문짝이 달린 이 출입문엔 '자장암'이란 편액이 걸려있다. 법당 쪽으로 여닫는 두 짝의 문짝은 파란색 바탕에 수호신인 듯 금강역사가 그려져 있다. 지금은 사역을 확장해 울타리 밖에 널찍한 요사를 지었지만, 예전엔 출입문 안쪽에 요사가 있었던, 좀 더 적은 규모의 사역이 아니었을까 생각됩니다. 문으로 들어서는 왼쪽은 절벽에 돌담을 높게 쌓아올렸다. 허리띠 두른 듯 담쟁이넝쿨을 곱게 두르고 가지런히 곱게만 보였던 바로 그 담장 위에 법당이 있다.
▲자장암 일주문
▲자장암
문안으로 들어서면서 오른쪽, 담장과 나란히 세워진 전각이 관음전이다. 관음전 뒤쪽은 바로 기암괴석에 낙락장송이 어우러져 있다. 정면 4간의 관음전의 왼쪽 지붕은 팔작지붕이고 오른쪽은 맞배지붕 형식입니다. 우측에 있는 커다란 바위, 즉 마애불에 맞추어 전각을 짓다보니 양단의 건축방식을 달리 한 것이라고 한다. 법당의 바닥도 여느 법당 바닥과는 다르다. 대개의 법당들은 나무를 켜서 깐 목재 바닥이지만 지장암의 바닥은 짚과 돗자리로 만든 다다미 바닥이다.
▲자장암
▲자장암
그 중에서도 관음전 중간쯤에 걸쳐있는 칼바위이다. 웬만하면 터 다듬으며 깨버렸을 법도 한데 그렇지 않고 바닥 돌을 그대로 살려 법당을 지었다. 법당 밖에 있는 바위가 문지방을 지나 법당 바닥에도 예리하게 솟아있다. 그렇다보니 법당바닥에 깔린 돗자리도 솟아오른 바위모양으로 잘라 갈무리를 하였다. 아마 있는 그대로에 필요한 부분만을 덧댄 조화를 추구한 듯하다. 마애불 바위를 손상시키지 않으며 어색하지 않는 전각을 구상하다 보니 지붕도 조금은 생뚱한 두 가지 양식을 혼용하였듯 있는 그대로를 살리며 전각을 세우느라 이렇게 바위를 남긴 것이 아니겠는가?
▲자장암
▲칼바위
▲마애삼존불
있는 그대로에 조화를 맞추려는 마음, 순리에 순응하려는 그런 마음이 이런 독특함을 만든 것 같다. 이러한 조화는 단순히 주변경관이나 건물양식에 그치지 않고 부처님의 세계라 할 법당 안과 밖을 이렇듯 단절하지 않아, 밖이 곳 법계이며 속세가 곳 법계임을 나타내고자 했는지도 모른다. 경계를 나타내는 문지방을 그대로 관통해 있으니 법당 안과 밖을 일치시키는, 불이(不二)의 의미일수도 있을 것이다. 또 하나 날카로운 돌을 보며 수행정진의 채찍쯤으로 삼았을지도 모른다. 자칫 무뎌지거나 담담해 질 수 있는 구도자의 마음을 이 칼바위처럼 갈고 닦으라는 표상으로 남긴 건 아닐까?
▲본존불
▲본존불
관음전 자리는 전체적으로 거북이 형상을 하고 있다고 한다. 거북의 머리는 관음전 뒤쪽 바위에 있으며, 그 거북의 몸통에 해당하는 자리에 관음전이 세워졌다. 등자리에 관음전이 들어서니 그 꼬리가 출입문에 걸치게 된 것이라고 한다. 치켜 올라간 꼬리가 다 묻히도록 땅을 돋고 전각을 지으면 그 높이가 너무 높아지고, 파괴하거나 자를 수도 없으니 이렇듯 꼬리를 살려 전각을 지었다고 한다. 그 바위가 분명 거북의 꼬리기에 지금도 불단에 올렸던 다기의 청수는 반드시 그 꼬리바위에 부어준다고 합니다. 그러고 보니 칼바위처럼 보였던 바위 형상이 거북이 꼬리형상으로 보인다. 생물뿐 아니라 자연의 산세에서도 그 존귀성을 부여하는 불심을 엿볼 수 있다. 자장암에는 이렇듯 거북바위만 있는 게 아니고 마애불 뒤쪽으로 호랑이 형상을 한 바위, 코끼리 형상을 한 바위, 쥐 형상을 하고 있는 바위도 있다고 한다.
▲본존불
▲대세지보살상
관음전 우측으로 바위부처님인 마애불이 있다. 자연바위를 '冂'자로 다듬고, 앞쪽을 조금 더 벌려 세운 병풍 같은 바위삼면에 마애불이 암각되어 있다. 정면이 되는 중앙부에는 아미타불좌상이 있고, 좌우 각각 대세지보살과 관세음보살이 협시하고 있다. 중앙의 아미타부처님은 가슴까지 오른손을 추켜올려 엄지손가락과 검지를 맞댄 중품상생의 수인을 하였고, 하단전 부위에 얹은 왼손은 엄지손가락과 약지를 맞대 중품하생의 수인을 하였다. 별다른 문양이 없는 두광에는 군데군데 진언 중의 진언이라는 '옴'자가 범어로 음각되어 있다. 어깨부터 흘러내린 가사의 곡선미와 장삼자락의 펄럭임이 아주 사실적으로 조각 되어 있다.
▲대세지보살상
▲관음보살상
▲관음보살상
접어진 병풍처럼 면을 달리해 암각된 왼쪽의 대세지보살이나 오른쪽 관세음보살은 입상으로 매우 섬세하고 부드럽게 암각되어 있습니다. 주불로 모신 아미타좌불의 가슴높이 크기인 두 협시불 역시 화려한 문양은 없으나 부드러운 곡선만으로도 원만함과 대원력 그리고 자비로움이 다 표현되어 있다. 왼쪽 면의 대세지보살 아래쪽에 "聖上卽位三十三年 丙申七月日 化主 吉山 定一 金翼來 金弘祚 丁泰燮 李善同 朴漢淳 張雲遠"라는 기록이 또렷하게 남아있어 마애불의 조성일과 화주 명단을 분명하게 알 수 있다. 고종 즉위 33년, 즉 1896년에 조성되었다. 마애불의 역사가 유구하지는 않으나 부드러우면서도 사실적인 곡선미가 아름답다.
▲금와전
이 마애불 앞에는 그리 높진 않은 3층 석탑이 있으며, 오른쪽으로 수세전(壽世殿)이 있다. 다른 절에서는 인간의 수명과 길흉화복을 관장한다는 칠성신을 봉안하고 칠성각이라고 하는데 이곳에서는 수세전이란 편액을 달았다. 법당이 있는 곳으로 들어서는 문 바로 우측에 마애불이 있고, 문에서 오른쪽으로 돌아 정면으로 보이는, 수세전과 직각을 이루고 있는 곳에 자장율사를 기리는 자장전이 있다. 관음전과 마애불 그리고 수세전과 자장전은 일렬로 길게 자리하고 있으며, 관음전 뒤쪽 바위 위로 3층 석탑이 보인다.
▲금와보살
▲자장전
통도사가 창건되기 전, 영취산에 들어와 이곳 석벽 아래 움집을 짓고 수도하던 자장율사는 그날도 공양미를 씻으러 석간수가 흘러나오는 암벽아래 옹달샘엘 갔다. 바가지로 물을 뜨려던 스님은 샘 안에 있는 개구리를 발견하고 개구리 한 쌍을 건져 근처 숲 속으로 옮겨 놓았다. 다음날 샘엘 가니 그 두 마리 개구리가 다시 그곳에 와 있기에 이번에는 좀 더 멀리 가져다 놓았다. 그런데 이게 어찌된 일인지 다음날에도 우물에는 그 개구리들은 또 와 있었다. 율사는 범상치 않은 개구리라 생각되어 자세히 들여다보니 여느 개구리와는 달리 입과 눈가에 금줄이 선명했고 등에는 거북 모양의 무늬가 있었다.
▲자장전
▲삼층석탑
이에 자장율사는 불연(佛緣)이 있는 개구리임을 알고 더 이상 어쩌지 않고 그대로 두었다. 시간이 지나 어느덧 엄동설한이 다가왔음에도 개구리들은 겨울잠을 자지 않고 늘 샘물 속에서만 놀고 있었다. 이러다가는 자칫 얼어 죽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한 율사는 이들이 살 곳을 마련해 주기로 하였다. 율사는 절 뒤에 있는 암벽에 구멍을 뚫고 그 안에 개구리를 넣어 주며 "언제까지나 죽지 말고 영원토록 이곳에 살면서 자장암을 지켜다오"하며 수기를 하였다. 그리고 이 개구리를 '금와(金蛙)'라고 불렀다.
▲삼층석탑
▲요사
그 후로 통도사가 창건되니 통도사 스님들은 이 개구리를 금와보살이라 불렀고 바위를 뚫어 만들어 준 개구리 집을 금와석굴이라 불렀다다. 그 이후에도 경봉스님이나 태응스님 등이 이 금개구리를 보거나 현몽함으로 서원하던 일들이 원만히 성취되었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그런가하면 의심 많은 어떤 관리도 금개구리의 신통력을 시험하고 크게 깨우쳤다는 이야기도 있다. 의심 많은 한 관리가 금개구리에 대한 소문을 듣고는 자장암을 찾아와 스님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그 신통력을 시험하겠다고 다짜고짜 금개구리를 함 속에 넣었다. 함을 들고 산문으로 나온 관리는 개구리가 어떻게 되었는지 궁금해 밀폐하였던 뚜껑을 여니, 분명히 잡아넣었던 개구리가 보이지 않았다. 두 눈으로 금개구리의 신통력이 사실임을 확인 한 그 관리는 혼비백산해 자장암을 향해 큰절을 올리고 개과천선하였다고 한다.
▲요사
<2010. 9.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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