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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낙양 용문석굴 봉선사동(奉先寺洞, Fèngxiānsìdòng)

蔥叟 2010. 10. 7. 05:53

중국 낙양 용문석굴 봉선사동(奉先寺洞, Fèngxiānsìdòng)

   

原名卢舍那像龛, 唐高宗初, 咸亨三年(公元672年)皇后武则天助脂钱兩万贯, 上元二年(公元675年) 功毕. 卢舍那像高17.14米, 头高4米, 丰颐秀目, 仪表堂堂. 叶持重, 阿难溫顺, 二菩萨盛装艳服, 天王雄伟, 力士勇猛, 是中国唐代佛敎雕刻艺朮的杰作.

   

봉선사동(奉先寺洞, 第1280窟)

 

봉선사동(奉先寺洞)

  

   봉선사는 용문 서산 석굴지 중간쯤에 위치하고 있다. 남북으로 36m, 동서로 40여m의 절벽에 봉선사가 자리잡고 있다. 이하 강변 도로에서 숨을 헐떡이며 백여개 계단을 올라가면,  눈앞에 갑자기 펼쳐지는 웅장하고 아름다운 장관에 저절로 탄성이 쏟아진다. 용문석굴이 지금처럼 유명해진데는 바로 이 조각상 때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웅장한 규모도 규모지만, 잘 생기고 호감가는, 아무리 쳐다봐도 질리지 않는, 보일듯 말듯한 미소가 여행객들의 발걸음을 붙잡는다. 그 유명한 용문석굴 봉선사 노사나 대불이다. 봉선사의 불상조각은 당나라대 작품을 대표하는 일대걸작으로, 조각 예술의 분야의 최고봉으로 꼽힌다.

 

봉선사동(奉先寺洞)

   

▲본존 노사나불

 

   봉선사동의 조영에 대해서는 정벽 중앙 노사나불좌상 대좌에 새겨진 개원 10년(722)의 '하락상도용문산지양대노사나상감기(河洛上都龍門山之陽大盧舍那像龕記)'에 의해서 대강 알 수 있다. 이에 의하면 고종이 칙령을 내려서 함형 3년(672)에 고종의 황후였던 무씨(武氏, 후의 측천무후)의 화장 값 2만 관을 기증하여 준공을 재촉하여 3년 후인 상원 2년에 완성되었다고 한다. 또 봉선사는 당 고종이 태종을 추모하고 기리기 위해 조성됐다고 한다. 조상을 추모하기 위해 조성했다고 해서 봉선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672년 4월1일 터를 파기 시작해서, 675년 12월30일 완공되었다. 착공부터 완공까지 3년 9개월, 다른 석굴에 비해 매우 짧은 기간에 완공됐지만 그 규모와 예술면에서 용문석굴 중에 단연 으뜸이다.

 

▲본존 노사나불

 

▲본존 노사나불

 

   봉선사에는 9존의 거대한 불상이 일렬로 조각돼 있다. 1불, 2제자, 2보살, 2천왕, 2역사가 있고, 이외에 두 명의 공양인, 불함들이 엄숙하고 균형감있게 배치돼 있다. 정중앙에 모신 지고지존의 주불은 노사나불이다. 노사나불은 부처 3신 - 법신, 보신, 응신 - 가운데 보신불이다. 부처의 첫번째 몸은 법신으로 형태를 초원한 진여의 깨달음 자체로 비로자나불, 두번째 몸은 보신으로 불경에 의해 원과 행으로 보답받아 얻은 불과의 몸으로 '노사나불', 세번째 몸은 응신으로 중생들을 제도하기 위해 현실에 몸을 나타낸 것으로 석가모니불이라 한다. 법신불은 영원불멸이지만 인간성이 결여되고, 응신불은 인격성이 풍부하지만 일시적인 무상한 것으로 여겨져, 법신불과 응신불을 통합한 부처님 몸을 생각하게 된 것이 보신불이라고 한다. 원만구족한 인간성과 영원불멸한 진리를 현실에서 동시에 드러낸 것이 노사나대불인 셈이다.

 

▲본존 노사나불

  

▲본존 노사나불

  

   봉선사동은 폭 30~33m, 깊이 38`40m의 광대한 규모이다. 연화대위에 결가부좌 형태로 조각된 노사나불의 높이는 17.14m, 아파트 한 층을 2.5m로 계산하면 7층 높이에 해당한다. 얼굴 높이만 4m, 귀의 길이가 2m에 달한다. 용문석굴 불상 조각 가운데 가장 높고 크다. 몸에 걸친 부드러운 옷 문양을 제외하면, 불상 표현의 중심은 부처의 얼굴 부분에 집중되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얼굴은 둥글고 온화하며, 자태는 엄숙하면서도 후덕해 보인다. 좀 더 자세히 관찰하면 불처님의 두상이 상반신에 비해 다소 크다는 느낌을 받는다. 이 부분이 부처님의 온화한 상호에 눈길이 더 오래 머물게하는 이유가 아닐까? 부드럽게 내려보는 눈길, 초승달 모양 양쪽으로 가지런히 휘어진 눈썹, 오뚝한 콧날, 그리고 보일듯 말듯한 입가의 미소..., 아무리 봐도 실증나지 않는 그런 얼굴이다. 특히 측면에서 볼 때 늠름하고 단정한 옆얼굴과 어깨에서부터 가슴, 배에 걸쳐 나타나는 완벽한 양감은 보는 사람을 압도한다.

 

▲본존 노사나불

 

▲본존 노사나불 상호

 

   부처님 왼쪽에 가섭존자, 오른쪽에 아난존자가 시립했다. 두 제자의 키는 10m에 이른다. 가섭 존자는 연장자의 모습으로, 아난은 젊은 비구로 표현되었다. 가섭존자는 석가모니 입멸 후 의발을 전주 받고 불교 제1차 결집을 소집한 인물이다. 아난존자는 석가모니 당시 열두서너 살 때 출가해, 25년간 석가모니 선교활동을 보필하면서 다문제일이란 칭호를 받았다. 아난존자 모습은 완벽한 형태로 남아 있지만 가섭존자 모습은 얼굴과 팔 부분이 훼손되었다. 가섭존자 옆에는 문수보살이, 아난존자 옆에는 보현보살이 각각 자리잡았다. 머리에는 보관을 쓰고 목에는 구슬 목거리를 걸었고, 몸에는 화려한 느낌이 드는 긴 치마를 입었다. 문수, 보현보살의 키는 모두 13.25m로 대형 조각임에도 불구하고 허리가 좌우로 휘어진 듯한 움직임을 보인다. 또 가슴은 풍만하게, 허리는 잘룩하게 표현하였고 얇은 느낌을 주는 치마를 통해 다리 부분의 윤곽을 확실히 감지할 수 있게 했다. 이것은 이 시기까지의 용문석굴 초당 조각에서는 볼 수 없었던 현상이다. 일종의 육감적이라고도 할 수 있는 표현방법은 장안에서는 이미 초당조각에서 보이던 것이다.

 

▲가섭과 문수보살

 

▲아난과 보현보살

 

   보살 옆으로 천왕과 역사가 나란히 조각돼 있다. 천왕과 역사의 키는 10m 정도이다. 북쪽 벽의 천왕은 다문천왕, 남쪽 벽면의 천왕은 증장천왕이다. 다문천왕은 몸에 갑옷을 입고, 오른쪽 손에는 탑을 들고, 발 아래는 지옥 아귀를 밟고 있다. 그 옆의 역사는 우람한 근육질의 몸매가 다 드러나는 옷차림에 발 아래는 야차를 밟고 있다. 천왕, 역사의 발 아래 깔린 아귀, 야차는 양눈이 튀어 나오고, 이빨을 깨문체, 코를 벌렁거리며 고통스러워하고 있다. 역사의 중압감에서 벗어 나고자  발버둥 치는 아귀, 야차의 모습이 재미있기도 하고 통쾌하기도 하다.

  

▲증장천왕과 역사

  

▲다문천왕과 역사

 

▲다문천왕과 역사

  

   봉선사  조각은  당 황실의 조직을 묘사한 것이라는 설명도 있다. 노사나 대불은 제왕,  두 보살은 비빈,  두 제자는 문신,  천왕과 역사는 무장을 의미한다는 것이다. 또 한편으로는 노사나 대불이 무측천을 형상화 한 조각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봉선사를 조성하기 위해서 당시 최고 실력자였던 무측천은 천문가를 보내고 밀가루, 돈 2만관을 기부해 석굴 조성을 지원했다고 기록되어있다. 송나라 대에는 야외에 노출된 불상을 보호하기 위해 9간의 목조 처마 지붕을 올려 구간방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부처님이나 제자, 보살들 얼굴 옆으로 벽면에 난 사각형 모양의 구멍은 나무로 지붕을 올렸던 흔적이다.

 

 

 

<2010. 7. 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