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안 흥주사
흥주사 창건에 대한 정확한 기록은 전하지 않으나 전설에 따르면 222년(구수왕 9)에 흥인조사(興仁祖師)가 창건하였다 하나 역시 신뢰성은 떨어진다. 한편으로는 조선시대 백화산성(白華山城) 내 군영사찰로 1417년 산성과 함께 창건된 것으로 보는 이야기도 있다. 그러나 두 설 모두 정확한 근거가 없어 신빙성이 떨어지며, 현존하는 유물 등을 볼 때 흥주사는 고려시대에 창건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대웅전 앞에 있는 삼층석탑(유형문화재 제28호)은 구조나 양식으로 미루어 고려 때 조성되었기 때문이다. 창건 이후의 역사 또한 자세하게 알려진 것이 없다. 다만 1993년 만세루를 해체하였을 때 1527년(중종 22)년에 건립한 뒤 1691년(숙종 17), 1751년(영조 27), 1798년(정종 22)에 중수하였다는 사실을 확인하였으며, 이후에도 1944년에 해체 복원하였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흥주사
▲흥주사
▲대웅전
▲대웅전
만세루는 흥주사의 중문이다. 건물의 창건연대는 분명하지 않지만 중수기에 전 군수와 형 군수 이일(李鎰, 1538~1601)이 고쳐지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정면 3칸, 측면 3칸의 평면에 세웠는데, 경사진 지형을 이용해서 만들었으므로 밖에서 보면 2층이지만 안에서 보면 단층건물처럼 보인다. 건물의 앞쪽에만 공포가 있는데, 1출목 2익공 형식으로 주심포 양식에서 익공계 양식으로 변천해가는 과도기 현상을 잘 말해준다. 만세루는 흥주사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로 임진왜란 때에는 승병들이 무기저장고로 사용했다고 전해진다.
이외에 1722년(영조 48)에는 원통전을 중수하였다는 내용을 적은 기록이 있어 원래 흥주사의 주불전은 원통전이였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18세기 후반에도 불사가 있었던 것 같다. 원래 대웅전에 있던 후불탱화는 1861년(철종 12)에 조성한 아미타후불탱화였는데 지금은 수덕사 성보박물관으로 옮겨 보관하고 있다.
▲만세루
▲산신각
▲삼층석탑
▲삼층석탑
흥주사 대웅전 앞에 서 있는 탑으로, 일부분이 없어지거나 매몰되는 등 훼손이 심한 상태이다. 탑을 받쳐주는 기단(基壇)은 2층을 이루고 있는데, 아래층 기단의 일부가 땅에 묻혀 온전한 형태를 알 수 없다. 각 기단의 맨 윗돌은 아래위 모서리를 깎아내어 무딘 감을 주고 있으며, 위층 기단의 네 모서리와 각 면의 가운데부분에는 기둥모양을 본떠 조각해 놓았다. 탑신부(塔身部)는 2층까지만 남아 있으나, 비례로 보아 3층 석탑이었을 것으로 보인다. 1층 몸돌에는 각 면에 네모난 윤곽이 조각되어 있는데, 그 안에 또 다른 무늬를 두었을 것으로 보이나 뚜렷하지는 않다. 심하게 닳아 있는 지붕돌은 1, 2층 모두 밑면에 3단의 받침을 두었으며, 네 귀퉁이에서 살짝 위로 들려있다. 3층에는 후대에 올려진 듯한 독특한 모습의 몸돌과 지붕돌이 보충되어 있다. 탑을 세운 시기는 절의 창건시기와 비슷한 고려시대로 보인다. 일부 파손된 부분을 복원해 놓았으나 조화를 이루지 못해 어색한 모습이다.
흥주사를 세상에 알린 것은 절 앞에 꼿꼿이 서 있는 은행나무일 것이다. 흥주사 만세루 앞에 있는 은행나무는 높이 22m, 둘레 8.5m에 달하는 나무로 수령 900살이라고 한다. 나무의 상태는 양호하며 충청남도 기념물 제 156호로 지정되었다. 태안군내에서 가장 오래된 노거수(老巨樹)로서 많은 전설을 지니고 있다. 최근에는 곁가지에 남근모양의 가지가 발견되면서 이를 보려는 관광객들이 모이고 있다. 특히 불임부부가 이 나무에 기도를 하면 영험을 얻을 수 있다고 하여 널리 알려졌는데, 실제로 이곳에서 백일기도를 드린 후 임신하였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은행나무
▲은행나무
▲은행나무
오랜된 사찰엔 그 절과 역사를 같이 하는 나무가 있다. 태안 흥주사에도 주변의 멋드러진 소나무와 함께 이 절을 상징하는 큰 은행나무가 있다. 어느 노승이 지팡이를 꽂아 싹을 틔웠다는 사연을 담은 이 은행나무도 충청남도 기념물로 지정 보호되고 있다. 9백년 전, 고려 때의 이야기이다.
한 노스님이 절터를 구하기 위해 태안 백화산 기슭을 올랐다. 천하를 주유하던 노스님은 지금의 태안 흥주사 골짜기에 이르러 잠시 바랑을 풀고 몸을 쉬었다. 그 때 비몽사몽 간에 노스님 앞에 흰옷을 입은 산신이 나타나 “지금 네가 누워있는 그곳이야말로 부처님이 머무르시기에 알맞은 곳이니, 잊지 말고 표시해 두거라”라고 말하고는 사라졌다.
▲느티나무
▲느티나무
스님은 깜짝 놀라 눈을 들어보니, 산신령은 간데없고, 주변에 밝은 빛과 상서로운 기운이 감돌았다. 스님은 절 지을 자리를 행여나 잊어버릴 것 같아서 그 동안 짚고 다니던 지팡이를 산신이 가리킨 자리에 꽂아두고는 그 자리에 초막을 마련하고 여러 날 기도를 했다. 얼마 뒤, 스님이 꽂아둔 지팡이에서 놀랍게도 은행나무 잎이 나기 시작했다. 그 후 산신이 기도를 올리고 있는 스님 꿈속에 다시 나타나
“자식이 없는 이들이 이 나무에 기도를 드리면 자식을 줄 터이니 그리 알려라” 하고는 홀연히 사라졌다.
그 후 그 소문이 태안 고을에 소문이 나서 많은 사람들이 찾아와 기도를 하였다. 스님은 은행나무 덕을 입어 절을 창건하고 흥주사라 이름 지었다. 그 은행나무가 지금도 살아 있어서 나이가 900살이나 되었다. 현재 흥주사 스님들과 태안 사람들이 해마다 음력 9월9일(중양절)이면 은행나무의 무병장수를 위해 막걸리 3말(60ℓ)을 나무 주위에 부어주고 백일기도를 올리고 있다.
<2010. 7.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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