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산 보원사터 법인국사 보승탑비
법인국사의 탑비이며 고려 경조 3년(978)에 경종의 지시로 세워졌다. 비몸 높이 230cm, 폭 115cm, 글자 수 5,000여자나 되는 거비이며 국공(國工)을 파견하여 이들이 세우게 했다. 법인국사는 신라말~고려초의 고승으로 법호는 탄문(坦文)이다. 비문의 내용은 탄문의 일대기이며, 신라 효공왕 4년(975) 에8월14일에 경기도 광주에서 출생하였으며 속성은 고씨로 5세에 불가에 출가하여 15세에 계를 받고 광종 19년(968)에 왕사, 광종 25년(974)에 국사로 지내다가 이곳 보원사에 와서 광종 26년(975)에 입적하였다. 역대 왕들과 가까웠으며 국가 시행 불사를 도맡아 시행하였고, 특히 광종은 왕권 강화 작업 기간 이후 정신적 지주로서 왕사, 국사로 가까이 있게 했으며 입적하자 매우 슬퍼하였다. 이분은 학승으로 제자가 많아 말년에 보원사에 올 때, 선, 교승(禪, 敎僧) 천여명이 영접했으며 이곳을 고산(故山)이라 하고 여기에 와서 묻혔다. 이것으로 보아 어렸을 때 이곳에서 수도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귀부의 귀갑은 납짝하게 조성하여 땅에 찰싹 엎드린 자세로 조성한 다음 귀두는 여의주를 입에 문 용머리로 조각하였고 귀갑면에 6각의 격자무늬를 조각한 후 그 중심부에 장방형의 비좌대를 만들고 그 위에 비신을 올려 놓게 하였다. 오석으로 된 비신의 앞뒤에 해서로 비문을 음각하였는데 글씨의 크기는 직경 1.5cm이며 앞면의 제액은 직경 4cm에 전서로 각자하였다. 이수부는 문양화된 구름을 가운데 두고 두마리의 용이 머리를 들어 서로 마주보게한 모습으로 조각하였다. 이수의 앞면에 "가야산 보원사 고국사 제증시법인 삼중대사지비"라 각자 되었고 비신의 비문초에 광록대부태승한림학사전내봉령신 김정언이 비문을 짓고 유림낭사천대박사신 한윤이 비문과 전액을 섰다는 기록이 있고 비문끝에 김승겸이 각자했다는 기록이 있다.
▲법인국사 보승탑비
▲법인국사 보승탑비
▲법인국사 보승탑비
▲귀부
▲이수
▲비문
<2010. 7.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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