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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안 백화산성

蔥叟 2010. 7. 30. 08:31

태안 백화산성

 

   백화산성은 태안초등학교 뒤에 우뚝 솟아 있는 태안의 진산(鎭山)인 백화산 정상에 축조된 석성(石域)인데, 그 둘레는 2,042尺(619미터)에 높이 10尺(3.03미터) 이다. 이 산성은 고려(高麗)의 충렬왕(忠烈王)13년 정해(丁亥)에(1287) 축성되었다. 4면이 절벽으로 되어있는 험준한 곳에 성을 쌓아, 외적의 침입이 어려운 요새지로써 태안 읍성으로 사용되기도 하였다. 성내에는 2개의 우물이 있었으며, 또한 봉수대(烽燧臺)가 설치되어 있어 동쪽으로는 서산의 북주산(北主山), 남쭉으로는 부석면의 도비산(島飛山)과 연락을 취했다.  

 

백화산성

  

백화산성

  

백화산성

  

   백화산성이 언제 폐성되었는지 기록이 남아 있지 않아 알 수 없으나 현재 태을암의 동쪽 약 100미터 지점에 성벽의 일부가 남아 있어, 산성 연구에 도움이 될 것 같다. 태안읍지(泰安邑誌)에 따르면, 축성한지 이미 오래되어 현재는 퇴락(頹落)되어 있으나, 지세(地勢)가 사면이 절벽으로 되어 있어 사람이 발붙이기 어려운 곳이라 했다. 이와 같이 백화산성을 험난한 지세를 잘 이용하여 축성하였으므로 외적(外敵)이 접근하기 어려운 요새지(要塞地)였다. 그리고 이 백화산성은 소성현(蘇城縣) 때의 태안읍성(泰安邑城)으로 사용되기도 했으며, 또한 태안군내 성곽중에서 제일 먼저 축성된 것이다.

 

   백화산(白華山)은 백색 화강암이 처처에 널려 있어 마치 하얀 꽃이 피어난 것 처럼 보인다. 그래서 백화산이다. 백화산은 본래 보타락가(補陀洛迦山)으로 관음보살이 거주하는 산이다. 산스크리트어로는 포탈라카(potalaka)인데 이를 음역하여 보타락가(補陀洛迦山)하고 한다. 인도에서 관세음보살 신앙이 형성된 시기는 1세기말 무렵이다. 현세 이익을 주는 보살로서 영향력이 대단하여 인도는 물론 중국과 한국·일본·티베트에서 널리 신봉하였으며 그런 까닭에 관세음보살의 거주지는 곳곳에 등장한다.

 

▲봉수대

 

▲봉수대

 

▲백화산 정상

  

   인도에서는 남쪽 끝의 마라야산 동쪽 구릉지대에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화엄경》〈입법계품〉에 선재동자(善財童子)가 구도를 위해 세상을 돌아다니던 중 보타락가산에 도착하는 구절이 나오는데, 바다에 접한 아름다운 곳이라 하였다. 중국의 승려인 현장도 인도에 다녀와서 스리랑카로 가는 바닷길 가까이에 이 산이 있다고 기록한 바 있다. 《화엄경》〈보문품〉에는 '큰 물에 떠내려가도 관세음보살을 염하면 곧 얕은 곳에 이르고, 폭풍에 밀려 나찰귀국(羅刹鬼國)에 닿더라도 그 중 한 사람만 관세음보살의 이름을 부르면 모두가 나찰의 손아귀에서 벗어난다'고 적혀 있다. 여기서 나찰귀국은 사자섬 스리랑카를 가리킨다.

   중국에는 저장성[浙江省] 영파에 보타산(普陀山)이 있고, 티베트의 수도 라사에도 포탈라궁전이 있다. 스리랑카의 포타란, 만주의 보타락사, 일본 기이반도[紀伊半島]의 보타락, 닛코[日光]가 보타락가와 관련이 깊은 곳이다. 이 일곱 곳과 강원도 양양군에 있는 낙산(洛山)이 관음 팔대성지로 불린다. 중국에서 화엄학을 배우고 귀국한 의상(義湘)이 낙산에서 관세음보살을 보았다고 전하며, 강화 석모도에도 관음보살상이 멀리 바다를 향해 있는 낙가산 보문사가 있다. 이곳 태안 백화산도 바다 가가운 곳에 있어 관음신앙이 일직부터 성행했을 것으로 보인다.

 

▲백화산 정상

   

▲백화산 정상에서 본 태안반도

 

 

 

<2010. 7. 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