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주 운천동 사적비(寺跡碑)
<국립청주박물관>
▲사적비(寺跡碑)
이 비는 통일신라시대 청주의 어떤 사찰에 관한 내용을 담은 사적비로 685년 서원경의 설치와 관련하여 청주가 지방의 중심도시였음을 알려준다. 비문의 작성 연대는 686년(신문왕神文王 6)이고, 글자의 마멸이 심하여 비문의 전체 내용은 파악하기 곤란하다. 판독 가능한 부분에 불법과 임금의 덕을 찬양하고 삼국통일에 따라 신라의 영역이 확대되었다고 언급한 내용 등이 보이고 있다. 이밖에도 686년에 사문 보혜(普慧)가 초라한 건물을 새로이 수리한 사실, 그의 제자인 해심법사(海心法師)가 근래에 보기 드물게 명민한 승려라고 언급한 내용 등이 확인된다. 비문의 내용을 통하여 삼국통일의 위업을 달성한 신라인이 스스로 대단한 자긍심을 가지고 있음을 살필 수 있고, 아울러 통일직후 불교사상과 그에 대한 신라정부의 대책 등을 단편적으로 엿볼 수 있다.
沙門 寸
無 趣皎皎而生
河洛靈圖
天德長流於四海義心宣揚於萬邦
路蘭香風而長流貸寶繹而無絶
善根具足門 而行廻
竪鼓之場精靈所起交兵深林之地
伐耶 民合三韓而廣地居滄海而振威
仁寺倉府充溢民免飢寒之憂水土
丹穴委羽之君太平大蒙之長奉玉帛
者沙門普慧之所造也文海生知行之
壽拱二年歲次丙戌茅茨不剪僅庇經傳
化主弟子海心法師世近明敏淸凉
(제二면)
三寶 六代之徽經
國主大王
降
六
亦
壽
善天壽山長
陰陽 上下
(제三면)
阿干」
主聖大王炤亦爲十方檀越及道場法界
亦
▲사적비 부분
비문이 완전한 것이 아닌데다가 남아 있는 비문도 판독하기 어려운 곳이 많아 상세한 내용은 알 수 없다. 비면별로 그 대체적인 줄거리를 파악해 보고 단편적인 내용이나마 해석을 붙여보면 다음과 같다.
<제1면>
… 사문 …
… ▲취(▲趣)가 교교히 일어난다 …
… 하락영도(河洛靈圖) …
… 하늘같은 덕은 사해에 널리 퍼지고, 의로운 마음은 만방에 선양된다 …
… 난향(蘭香)은 바람따라 널리 퍼지고, 대보(貸(?)寶)는 잇닿아 끊임이 없도다 …
… 좋은 근본이 두루 갖추어지고, …
… 북을 세운 땅은 정령이 일어나 맞서 싸운 곳이고, 깊은 숲속의 땅은 …
… 사악함을 벌하고 백성을 (사랑하였고), 삼한을 통합하여 땅을 넓혔으며, 창해에 살면서 위세를 떨치시니 …
… ▲인사(▲仁寺)는 창고가 가득차 넘치니 백성이 추위와 굶주림을 걱정하지 않아도 되었고, 수토(水土)는 …
… 단혈에 깃을 맡긴 군자이시고, 태평대몽(太平大蒙)의 어른이시니, 옥백을 받들고 …
… ▲는 사문 보혜(普慧)가 만든 것이라. 문해(文海)가 지행의 ▲을 일으키니 …
… 수공(壽拱) 이년(二年)(686) 병술년, 초가도 손질하지 못하여 겨우 경전(經傳)을 비에 젖지 않게 할 따름이니 …
… 불제자 해심법사는 근래 보기 드물게 명민한 분으로 청량하고 …
이병도(李丙燾)는 제3면으로 보았다. 행간이 제대로 맞지 않고 글자의 크기도 똑같지 않다. 내용을 살펴보면, 먼저 일반적인 사적비(寺蹟碑)와 마찬가지로 불법(佛法)을 찬양하고, 이어 임금의 덕(德)과 삼국통일 위업을 칭송하였다. 다음에 사찰 창건자의 이름과 창건 연대를 전한다. 재래의 건물이 초라했음을 알리고, 다시 창건자 제자의 이름과 함께 그를 칭찬하는 어구(語句)를 적고 있다. 이병도는 문장의 흐름을 보아 ‘者沙門普慧之所造也’ 구절의 ‘者’ 바로 위에는 절의 이름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하고, 이 부분이 사원의 유래를 서술한 부분이라고 보았다. 또 ‘壽拱二年’의 구(句)가 들어 있는 곳에서 사원 건축 사실이 끝나는 것으로 생각하여, 이곳이 비문의 마무리 부분에 해당한다고 보았다.
그러나 임창순은 윗부분의 글자를 읽을 수 없기 때문에 ‘壽拱二年歲次丙戌’이라는 년대가 앞뒤 어느 쪽에 속하는 것인지 분명치 않으나, 문맥상 사원은 지었지만 초라한 초가집으로, 겨우 불전(佛傳)을 저장할 정도여서 제대로 교화를 선양할 수 없다는 뜻을 담고 있다고 보았다. 그래서 다음에 해심법사(海心法師)가 새로 나오는 것이고 해심(海心)이란 사람이 이 사원을 중건하여 「근비경전(僅庇經傳)」의 초라함을 면하고 제대로 건물을 세웠다는 내용이 앞으로 서술되어야 함이 문맥상 당연하다고 보아 이곳을 시작면으로 읽고 있다.
▲사적비 부분
<제2면>
… 삼보(三寶) … 육대(六代)의 미경(徽經) …
… 국주대왕(國主大王) … (이하 생략)
이병도(李丙燾)는 제1면으로 보았다. 글자가 거의 마멸되어 읽을 수 있는 글자는 몇자 안된다. 따라서 전체적인 내용 파악은 불가능하다.
먼저 제14행 중간에 ‘삼보(三寶)’가 보이는데, 이병도(李丙燾)는 자형(字形)이 ‘삼존(三尊)’에 더 가깝다고 보고, 본래 三尊은 유가(儒家)에서 군(君), 부(父), 사(師)를, 불가(佛家)에서 불(佛), 법(法), 승(僧)이나 또는 아미타삼존(阿彌陀三尊), 약사삼존(藥師三尊), 석가삼존(釋迦三尊) 등을 말하는데, 여기서의 ‘三尊’은 ‘국주대왕(國主大王)’의 문구가 있음을 보아 유교의 ‘三尊’일 것이라고 해석하였다. 그 아래에는 ‘육대지휘경(六代之徽經)’이라는 문구가 보이는데, 李丙燾는 6대란 신문왕대(神文王代)에 오묘(五廟)의 봉사(奉祀) 대상이던 태조대왕(太祖大王), 진지대왕(眞智大王), 문흥대왕(文興大王, 진지왕(眞智王)의 아들로 태종무열왕(太宗武烈王)의 생부(生父)인 용춘(龍春)), 태종대왕(太宗大王), 문무대왕(文武大王)의 5대와 생존한 神文王을 합하여 부른 것이라고 하고, 이 부분은 이들 6대의 영특한 미덕을 찬미한 부분이라고 추측하였다.
제15행에서는 ‘국주대왕(國主大王)’이 보인다. 國主大王이라는 표현은 성덕왕(聖德王)代의 금석문인 「감산사아미타여래조상기(甘山寺阿彌陀如來造像記)」와 「감산사미륵보살조상기(甘山寺彌勒菩薩造像記)」에도 나오는데, 모두 당시의 왕인 성덕왕을 일컫는 것이었다. 따라서 본 비의 國主大王도 이 비가 세워질 당시의 신라왕을 의미하는 것으로 파악되는데, 당시의 신라왕은 곧 神文王이 된다. 한편, 國主의 ‘主’라는 표현은 촌주(村主), 성주(城主) 등과 마찬가지 용법이었다고 여겨진다. 제20행에서는 ‘천수산(天壽山)’이 보인다. 이 비가 세워진 사원의 소재지를 말해주는 것이 아닐까 추측하는 견해도 있다.
<제3면>
… 아간(阿干) …
… 주성대왕(主聖大王) 소(炤)께서 역시 시방의 단월(檀越)과 도량 법계를 위하여 …
이병도(李丙燾)는 제2면으로 보았다. 글자의 크기가 작고, 글씨 모양도 달라 추기(追記)로 보인다. 이 절을 지을 때 혹은 이 비를 세울 때에 기부(寄附)를 했거나, 공역(工役)에 참가한 사람들의 관직과 이름을 새긴 것으로 추측해 볼 수 있다. 제22행에는 ‘아간(阿干)’이 보이는데, 그 위의 글자를 천인(天仁)이라고 읽어 ‘천인아간(天仁阿干)’이라고 추측하는 견해도 있다.
제23행에는 ‘주성대왕(主聖大王)’과 ‘시방단월(十方檀越)’ 등의 문구가 보이는데, 확실하지는 않으나 주성대왕(主聖大王) 소(炤)가 시방단월(十方檀越)과 도량법계(道場法界)를 위하여 무엇을 했다는 내용이 실린 것으로 보인다. 주성대왕(主聖大王)이 누구를 가리키는지 알 수 없으나, 제2면의 국주대왕(國主大王)보다 격이 더 높은 말로 여겨진다. 한편 국주대왕과 동일한 당대(當代) 신라왕을 가리키는 것으로 생각하기도 한다.
<2009. 12. 25>
'◈한국문화순례◈ > 중원서원문화권' 카테고리의 다른 글
청주 상당산성 '沙梁部屬長池馹'銘 기와편 (0) | 2010.01.21 |
---|---|
청주 상당산성(上黨山城) (0) | 2010.01.21 |
청주 사뇌사터 쇠단지(鐵壺) (0) | 2010.01.19 |
청주 사뇌사터 자물쇠(鐵鎖) (0) | 2010.01.19 |
청주 사뇌사터 맷돌(石磑) (0) | 2010.01.1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