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원 안심사(安心寺)
안심사는 법주사에 딸린 작은 절이다. 통일신라 혜공왕 11년(775)에 진표율사가 지었다고 하는데 편안한 마음으로 제자를 길렀다 해서 안심사라는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 고려 충숙왕 12년(1325)에 원명국사가 다시 짓고 인조 4년(1626)에 송암대사가 수리하였다고 하며 한말에 고쳐 세워 오늘에 이르고 있다.
지금 있는 대웅전은 확실하게 지은 시기를 알 수는 없지만, 1979년 해체·수리 때 발견한 기와의 기록으로 미루어 조선 인조 때의 건물로 보인다. 석가모니 불상을 모셔 놓은 이 건물은 앞면 3칸·옆면 2칸 규모이며, 지붕은 옆면이 사람 인(人)자 모양을 한 맞배지붕이다. 원래는 맞배지붕이 아니었을 것으로 추정하는데 여러 차례 수리를 통해 건물이 축소·변형되면서 지붕 형식도 바뀐 것으로 보인다. 지금은 지붕 처마를 받치기 위해 장식하여 짜아 만든 구조가 기둥 위뿐만 아니라 기둥 사이에도 있는 다포 양식이다.
영산전 건물은 조선중기인 광해군 5년(1613)에 건립하고 조선말인 헌종 8년(1842)에 중수한 것으로, 본래 비로자나불을 모시던 건물인데 최근에는 나한(羅漢)을 모시고 있다 하여 영산전(靈山殿)이라 부르고 있다. 정면 3칸 측면 2칸의 맞배지붕 다포집이다. 자연석을 다듬지 않고 그대로 둔 덤벙주초 위에 두리기둥을 세우고, 공포는 내외2출목(內外二出目)으로 어칸에 2구, 협칸에 1구씩 올렸다. 건물 정면 3칸에는 정자(井字)살문을 달았다. 전체적으로 조선후기 건축양식의 특징을 고루 갖추고 있으며, 조선 중기 건축인 경내의 대웅전과 좋은 대비를 이루고 있다.
대웅전 오른쪽으로 삼성각이 있고 그 옆에는 석가세존사리탑과 탑비가 서 있다. 사찰에 전해오는 전설에 의하면 이 사리탑은 신라 혜공왕 11년(775) 진표율사가 안심사를 창건할 때 세존사리를 봉안했다고 한다. 탑 옆의 세존사리비에 의하면, 사리탑의 행방을 오랜동안 모른채 내려오던중 동산내(洞山內)에서 발견하여 조선 고종 18년(1881) 구천동(九川洞)에 봉천(奉遷)했던 것을 다시 광무 4년(1900)에 광우(廣祐)와 등원(等元) 두 스님이 안심사로 이안(移安)했다고 한다.
현재의 사리탑은 석종형 부도로 네모난 지대석 위에 매우 높직한 8각 받침돌을 두어 기단을 마련하고, 그 위로 길쭉하고 둥근 타원형의 탑신을 올렸다. 상륜부는 28개의 구슬무늬로 조각하여 구획하고 큼직한 보주를 얹어 마무리한 모습이다. 전체적으로 아무런 장식이 없는 소박한 모습으로, 조선 후기 양식인 종모양의 형식을 띠고 있다.
▲안심사
▲대웅전
▲대웅전
▲대웅전 공포
▲대웅전 뒷벽
▲대웅전 편액
▲영산전
▲영산전
▲영산전 편액
▲삼성각
▲세존사리탑
▲세존사리탑비
<2009. 12.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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