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주 법수사터 당간지주
당간지주는 요즘말로 하면 깃발 게양대다. 옛날 절에서는 깃발을 세웠는데 기를 높이 세우기 위해서는 장대가 필요하고, 그 장대를 고정시키는 것이 필요한데 그게 바로 당간지주(幢竿支柱)다. 당(幢)이란 불·보살의 위신과 공덕을 표시하는 장엄용 불구의 하나인 깃발로 비단이나 천에 불·보살을 수놓거나 그림을 그리고 가장자리에 여러 개의 가닥을 늘어뜨리고, 그 당을 받치는 것이 당간(幢竿)이다. 당간지주의 크기는 그 절의 크기와 위용을 나타내는 것으로 지금의 법수사터 당간지주를 통해 우리는 옛날 법수사를 그려볼 수 있다.
▲법수사터 당간지주
법수사지 당간지주는 높이 3.7m, 폭 7.4m, 두께 51cm다. 장방형의 석주 2개가 서로 마주보고 있다. 양 지주는 거의 손상없이 보존됐는데 지주가 기울어 간격이 다소 벌어져 있다.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87호인 이 당간지주는 우아하고 단아한 모습을 지녀 당간지주 계보 연구에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다. 옆에서 보면 꽤 빠르게 폭이 좁아지는데, 허리에서 한 번, 목에서 또 한 번, 안쪽을 제외한 3면에 낮게 턱을 지워 단조로움을 피하면서 상승하다가 끝을 부드럽게 공글려 마무리했다. 안쪽에는 꼭대기에 당간을 고정시키는 간구를 두었을 뿐 아무 장식 없이 표면을 거칠거칠하게 마감했다.
당간지주의 두 지주 사이에는 당간을 올려세웠던 간대가 가운데 둥근 구멍을 처음 모습대로 지닌 채 밑동에서 자른 원추형으로 박혀 있다. 당간지주와 당산나무 사이에는 원래 어느 곳에 있었던 것인지는 짐작할 수 없는 배례석 하나가 놓여 있는데, 당산나무 밑둥지에 꽉 낀 걸로 보아선 이곳에 비교적 오랜 세월 함께 있었던 것으로 짐작된다.
▲간대
폐사되기 전의 법수사가 얼마나 아름다웠는지는 이곳을 찾은 사람들이 남긴 시에서도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다. 고려 말과 조선 초에 살았던 독곡(獨谷) 성석린이 이곳 법수사를 찾아와 절 마당에서 바라보는 정경에 넋을 잃은 듯 비록 글의 마지막 두 구절은 잃어버렸지만 당시 지었던 시가 지금까지 전해온다.
푸른 물은 문 앞을 흐르고
절 뒤로는 높은 봉우리가 둘렀구나
봄이면 붉은 꽃 안개처럼 가득하고
여름이면 초록빛 나무들이 빼곡하네
눈앞은 삼천리나 열렸고
하늘 끝에는 수많은 봉우리가 첩첩하네
▲법수사터 당간지주
성석린과 동갑내기인 척약재 김구용 또한 ‘제가야산법수사’라는 시에서 법수사가 높고 험한 곳에 있음을 암시하고 있다.
종일 말을 타고 덤불을 헤치며 왔더니
온 산 가득한 누각의 문은 구름에 맞닿아 열렸네
들은 지는 오래나 처음 이곳을 찾으니
한발 내디디기가 어려워 말머리를 아홉 번이나 돌렸네
<2009. 11.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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