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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서안 대흥선사(大兴善寺, Dàxīngshànsì)

蔥叟 2009. 9. 15. 08:32

중국 서안 대흥선사(大兴善寺, Dàxīngshànsì)

 

   대흥선사는 중국 장안에 있던 절로 수ㆍ당 시대를 통하여 장안에서 제일 컸던 절이다. 수(隋)나라의 문제(文帝)가 582년에 건립하였고, 관정 도양이 설치되어 밀교(密敎)의 중심사원(中心寺院)이었으나, 회창(會昌)의 법난(法難)(841~846) 이후 황폐하였다가 한때 다시 흥했으나 청(淸)나라 때 회교도에 의하여 파괴되었다. 당나라 시절에는 신라에서 많은 승려들이 부처님의 법을 공부하러 장안으로 몰려들었고 천축국인 인도까지 다녀오기도 하였다. 그중 대표적인 스님이 혜초스님이다. 혜초 스님이 인도와 서역으로의 구법순유를 마친 후 당에서 돌아와 돌아가시기까지 50여년을 장안에 머물면서 이 대흥선사에서 밀교 연구와 전승에 전념하면서 불경 번역작업을 하였고, 금강지-불공-혜초로 이어지는 밀교의 전통을 수립했다. 혜초는 황제의 칙령을 받아 기우제를 지내는데 주관을 할 정도로 이름있는 고승이였다.

 

   혜초(慧超)는 신라 출신으로 당나라에서 활약한 밀교 승려이다. 인도여행기인 왕오천축국전(往五天竺國傳)을 지었다. 700년을 전후하여 출생한 것으로 추정된다. 일찍이 중국 광저우[廣州]에서 인도 승려 금강지(金剛智)에게 밀교를 배웠다. 그후 금강지의 권유로 구법여행에 나서 인도의 불교 유적을 순례하고 카슈미르, 아프가니스탄, 중앙 아시아 일대까지 답사했다. 그가 다시 장안(長安)으로 돌아온 것은 30세 전후로 추정된다. 733년 장안의 천복사(薦福寺)에서 금강지와 함께 대승유가금강성해만수실리천비천발대교왕경(大乘瑜伽金剛性海曼殊室利千臂千鉢大敎王經)을 연구했다. 740년 1월 금강지가 이 경을 번역할 때 필수(筆受)를 맡았다. 그러나 이듬해 가을 금강지가 죽어 이 사업은 중단되었으며, 금강지의 유언에 따라 이 경의 산스크리트 원문은 742년 다시 인도로 보내졌다.

 
   그후 773년경 대흥선사(大兴善寺)에서 금강지의 제자 불공(不空)으로부터 이 경의 강의를 들었다. 불공은 유서에서 자신의 법을 이은 6대 제자 가운데 2번째로 혜초를 꼽았다. 불공이 죽은 후 동료들과 함께 황제에게 글을 올려, 스승의 장례 때 보여준 은혜에 감사하며 아울러 스승이 세웠던 사찰을 존속시켜달라고 청원했다. 그뒤 수년 동안 장안에 머물다가, 780년 불공이 활동했던 오대산으로 갔다. 그뒤 건원보리사(乾元菩提寺)에 머물면서 〈대승유가금강성해만수실리천비천발대교왕경〉의 한역과 한자음사(漢字音寫)를 시도하여 약 20일 동안 이 한역본을 다시 채록했다. 이후의 기록은 전하지 않으며 신라로 귀국하지도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왕오천축국전〉 3권 가운데 일부와 〈대승유가금강성해만수실리천비천발대교왕경서 大乘瑜伽金剛性海曼殊室利千臂千鉢大敎王經序〉 및 〈하옥녀담기우표 賀玉女潭祈雨表〉가 전한다.

 

 

▲대흥선사(大興善寺)

 

▲대흥선사(大興善寺)

 

▲대흥선사(大興善寺)

 

▲사천왕상

  

▲종루

 

▲고루

 

▲대흥선사 전각

 

▲대흥선사 전각

 

▲대흥선사 전각

 

▲대흥선사 전각

 

▲대흥선사 전각

 

 

 

<2009. 8.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