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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서안 장안성유지(长安城遗址)

蔥叟 2009. 9. 14. 08:49

중국 서안 장안성유지(安城)

 

   장안은 고대로부터 중국의 중심지적 성격을 충분히 가지고 있는 곳이었다.  웨이허 강[渭河]의 황투[黃土] 고원에 있다. 비록 그 정확한 위치는 차이가 있지만 예로부터 여러 왕조의 수도였고 매매와 교역의 중심지이며 역사적으로도 중요한 곳이다. BC 11세기부터 이 지역에 도시가 형성되었다. 대대로 중원의 핵심이라 일컬어졌던 관중분지(關中盆地)의 중앙에 위치하며 위 웨이허 강의 물줄기가 적셔주는 이 도시는 주 무왕이 세운 호경(鎬京)에서 비롯된다고 한다. 전한에서 당에 이르는 기간동안 10여 개의 왕조가 도읍지로 선택할 정도였으니 그 가치는 남다르다 하겠다.

 

▲장안성유지(安城)

 

▲장안성유지(安城址)

 

   전한(前漢)의 수도였던 장안성(長安城)은 당시 전세계에서 가장 큰 도시 가운데 하나로 BC 202년 지금의 시안 바로 북서쪽에 세워졌다. 왕망(王莽)의 난(9~23)에 뒤이은 혼란의 와중에 장안성이 크게 파괴되었으므로 23년에 세워진 후한(後漢)은 뤄양[洛陽]을 수도로 정했다. 서북 변방의 이민족들을 방어하기에 유리한 전략적 요충지이며, 6세기에 서위(西魏)와 북주(北周)가 단기간이나마 수도로 삼았음에도 불구하고 장안은 수세기에 걸쳐 쇠퇴했다. 그러다가 수(隋 : 581~618)가 장안을 수도로 정하자 이곳은 다시 번성했다.

 

▲장안성유지(安城址)

 

▲장안성유지(安城址)

 

   장안이 최전성기를 이루었던 시기는 바로 당 왕조였다. 수에 이어 당(唐 : 618~907)의 수도가 된 장안은 크게 팽창하여  인구가 100만을 헤아렸고 실크로드를 통해 들어온 서역의 산물이 넘쳤으며 각종 외래종교와 이민족들의 모습을 볼 수 있는, 로마와 더불어 가히 세계 최고의 도시였다고 한다. 이때 장안은 세 구역으로 나뉘었다. 즉 궁성(宮城), 관리들이 거처하면서 집무했던 황성(皇城), 장인(匠人)과 상인들의 활동무대였던 외곽성이 바로 그것으로, 장안은 세계에서 가장 화려하고 사치스러운 도시 가운데 하나가 되었다. 

 

▲장안성유지(安城址)

 

▲장안성유지(安城址)

 

   하지만 당의 최후가 도래하고, 장안은 주전충(朱全忠, 852-912, 후량의 태조. 재위 907-912)에 의해 완전히 파괴되었다. 그는 궁전, 관청등 거대구조물은 해체하여 그 재목을 위수에 띄워 낙양로 옮겼고 불을 질러 장안 시가지를 잿더미로 만들어버렸다. 이렇게 세계도시 장안은 그 전성기를 마감했고 다시는 그 영화를 찾지 못한 채, 지금은 명나라 때 1/5 규모로 다시 지어진 성이 남아있을 뿐이고 지명도 서안(西安)으로 개명되었다. 13세기에 중국에 왔던 마르코 폴로는 이 도시를 번창하는 교역 중심지라고 묘사했다. 현재 널리 통용되는 이름인 시안은 명대(明代 : 1368~1644) 이후에 정해졌다. 얼마 후 서경(西京)으로 이름이 바뀌었으나, 1943년에 다시 시안으로 복귀되었다. 지금은 당 시대의 장안성은 모두 없어졌고 그 자리에 일부 성벽과 해자를 복원해놓았다.

 

▲장안성유지(安城址)

 

 

 

<2009. 8.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