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문화순례◈/달구벌문화권

영천 만취당

蔥叟 2009. 5. 7. 08:29

영천 만취당(晩翠堂)

 

   만취당은 조선 선조때 성리학자인 지산(芝山) 조호익(曺好益 : 1545~1609)선생의 6대손으로 정조 5년(1785) 전라도 병마절도사를 지낸 학신(學臣)의 고택이다. 만취당(晩翠堂)은 이 집의 당호이다. 동리의 중심부를 차지하고 있는 이 집은 口자형의 안채와 중사랑채 및 큰사랑채가 튼口자형으로 구성되어 있고, 솟을대문과 새사랑채(光明軒), 마구간, 가묘(家廟), 후면에는 채천위(遞遷位)를 봉사하는 별묘(別廟) 및 보본재(報本齋)로 일곽을 이루고 있어 사대부 저택의 면모를 갖추고 있다.

 

    동리를 감싸고 있는 울창한 송림은 공의 수식이다. 광명헌은 공의 현손인 병문(秉文, 장릉 참봉)이 자기의 서재로 사용하기 위하여 건립하였으며, 큰사랑채는 한말 독립군의 군자금 헌납사건으로 일제관헌에 의하여 소실괸 것을 1915년 공의 5대손인 석환(奭煥, 성균관 진사)이 중건하였다. 그후 1984년 1월 10일 중요민속자료 제175호로 지정되어 보수 정화되었다.

 

   이 집의 구조는 큰대문을 들어서면 큰사랑채가 있고, 그 좌측으로 안대문간을 사이에 둔 중사랑채가, 우측 뒤쪽으로는 가묘, 보본재, 별묘로 일곽이 배치되어 있다. 중사랑채의 앞쪽에는 마구간채와 담장으로 일곽을 이룬 새사랑채가 자리잡고 있으며, 안대문에는 口자형의 정침이 一자형의 큰사랑채와 튼口자형을 이루고 있다. 큰사랑채는 전면에 퇴칸을 두고, 대청을 중심으로 좌측에 사랑방 2칸, 우측에 제방(祭房)을 배치하였는데 그 구성이 특이하다. 대청에서 볼 때 좌우에 동일한 형태의 사분합문이 설치되어 있어 제방과 사랑방이 같은 크기의 방인 것처럼 보이나 제방의 배면부는 뒷벽을 문짝 한 개 폭만큼 들여 마루로 꾸며 안재관들이 사용하기에 편리하게 하였다.

 

   사랑채에 이러한 공간을 마련한 예는 상당히 드물다. 5량가로 소로 수장 집이다. 전면과 우측면, 배면의 쪽마루 주위에만 원주이고 나머지는 방주를 사용하였다. 중사랑채는 대청과 온돌방 2칸을 연접 배치하였는데 대청의 전면과 좌측면을 개방하고, 대청과 사랑방 사이에는 2짝 불기문을 시설하였다. 3량가로 대량은 완곡된 자연재를 사용하였다. 새사랑채는 전면에 마루칸을 두었으며, 우측의 마루는 통칸으로 우물마루를 깔고 전면과 촤우측에 헌참을 둘러 누마루처럼 꾸몄다. 5량가의 소로수장집이다.

 

   정침은 안대청을 중심으로 좌측에는 2칸의 큰 온돌방이 우측에는 1칸의 작은 온돌방이 자리잡고 있으며, 전면에는 퇴칸을 두었다. 작은방 앞의 퇴칸 우측 끝에는 판장문을 설치하여 외부로 드나들수 있는 통래 퇴칸을 구성하였다. 대량 위에 파련대공을 세워 마룻대와 장혀를 받게한 3량가이다. 가묘는 정면 3칸 규모의 맞배집으로 큰사랑채 뒤에 자리잡고 있다. 보본재는 체천위(遞遷位)를 제사지내는 제청으로 2칸마루를 중심으로 좌우에 온돌방을 둔 중당협실형으로 구성되어 있다.

 

▲대문채

 

▲사랑채(만취당)

  

▲새사랑채(퇴암, 광명헌)

 

▲퇴암 편액

 

▲광명헌 편액

 

▲새사랑채 마루

 

▲새사랑채 마루

 

▲새사랑채와 마구간

 

▲새사랑채

 

▲중사랑채

 

▲안채

 

▲안채

 

▲안채

 

▲사당

 

▲사당 담장

 

▲보민재

 

▲사당

 

▲사당

 

 

 

                                                                              <2009. 4.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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