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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곡 송림사 대웅전

蔥叟 2009. 3. 2. 09:21

칠곡 송림사 대웅전

  

   송림사는 신라 눌지왕(재위417∼458) 당시 아도화상이 창건하였다고 하며, 신라 진흥왕 5년(544)에 진나라에서 귀국한 명관대사가 중국에서 불사리를 가져와 호국안민을 위한 기원보탑을 세우고 이곳에 불지사리를 봉안했다고 한다. 1092년(선종9) 대각국사 의천스님이 중창,1235년 몽골의 침입전탑만 남고 폐허가 되고, 정유재란 때 소실된 것을 1686년(숙종12)에 대웅전과 명부전을 중창하였다.

▲송림사 전경

 

▲송림사 전경

 

   대웅전은 부분적인 수리의 흔적이 있으나 고색창연한 단청은 그 세월의 깊이를 느끼게 해준다. 대웅전 편액은 조선 숙종의 글씨며 크기는 가로 366cm,세로 160cm로서 국내에서 가장 큰 편액이다. 대웅전에 모셔진 불상은 보기 드물게 향나무로 조성되었다고 한다. 석가모니불을 본존불로 좌협시보살은 문수보살, 우협시 보살로 보현보살을 모셨다. 이 삼존상에서  불상 조성기가 발견되었다. 효종 8년인1657년에 조성되었다고 한다. 대웅전은 특이한 복합구조로 되어있다. 불단배면에 별도의 공간을 두고 법당 양쪽에 분합문을 달아 출입이 가능하도록 해 놓았다. 대웅전 옆으로는 산령각과 응진전이 있는데 산령각 뒤에 두 팔을 벌린 듯 우뚝 서있는 갈라진 소나무가 산령각의 위엄을 더 해주는 멋진 모습이다.

 

   송림사에는 ‘베풀면 복을 받는다’는 적선에 관한 연기설화도 전승되고 있다. 연기설화는 죽은 조상이 나타나 자손을 위해 부귀해지는 방편을 말해 주지만 금기를 어겨 다른 사람들이 복을 받게 되었다는 것이 이 설화의 중심 내용이다.


   눈발이 희끗희끗 날리며 바람마저 세차게 부는 추운 겨울 점심 무렵. 아름드리 소나무가 무성하고 낮은 산에 화려한 상여 하나가 다다랐다. 관이 내려지자 상주들의 곡성이 더욱 구슬퍼졌다. 땅을 치고 우는 사람, 관을 잡고 우는 사람 등 각양 각색으로 슬픔을 못 이겨 하는데 오직 맏상주만은 전혀 슬픈 기색조차 보이질 않았다. 40세쯤 되어 보이는 그는 울기는커녕 뭘 감시하는 듯 연신 사방을 둘러보며 두 눈을 번득였다. 마을 사람들과 일꾼들은 그를 이상한 눈으로 쳐다보며 수군대기 시작했다. 그때였다.

 

▲송림사 대웅전

 

▲송림사 대웅전

 

   “죄송합니다. 오늘 장례식에서는 떡 한 쪽, 술 한 잔도 드릴 수가 없습니다. 또 새끼 한 뼘, 거적 한 장도 가져서는 안 됩니다. 그 대신 일꾼 여러분에게는 장례식이 끝난 뒤 마을에 내려가 품삯을 곱으로 드리겠습니다.”

   곡도 하지 않고 두리번거리기만 하던 맏상주가 당연히 나눠 먹어야 할 음식을 줄 수 없다는 까닭 모를 말을 하자 사람들은 술렁대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에게는 그만한 사연이 있었다. 간밤이었다. 돌아가신 부친 옆에서 꼬박 이틀 밤을 새운 그는 몹시 고단해 잠시 졸았다. 그때 그에게 선조인 듯한 백발의 노인 한 분이 다가와 산을 가리키며 말했다.

   “맏상주는 명심해서 듣거라. 그대 부친의 묘자리는 길흉이 함께 앉았으니 잘하면 복을 누리고 잘못하면 패가망신할 것이니라.”
   깜짝 놀란 그는 노인에게 매달렸다. 
   “어떻게 하면 길함을 얻을 수 있을까요?”
   “내 말을 잘 듣고 명심해서 실천하면 되느니라. 좀 어렵겠지만 무슨 일이 있어도 장례를 지낼 때 술 한 잔은 물론 물 한 모금도 남에게 줘서는 안 되느니라. 만약 새끼줄 한 토막이라도 적선하게 되면 가세가 기울고 대가 끊길 것이며 이르는 대로 잘 지키면 가세가 번창할 것이다.”

▲송림사 대웅전 편액

 

▲대웅전 꽃살문

 

▲대웅전 꽃살문

 

   단단히 일러주고 노인은 사라졌다. 맏상주는 아무에게도 이 사연을 공개할 수가 없었다. 행여 누가 음식을 먹을까 아니면 새끼 한 토막이라도 집어갈까 열심히 주위를 살피기만 할 뿐이었다. 주린 배를 움켜쥐고 부지런히 삽질을 하는 일꾼들은 아무래도 무슨 곡절이 있나 보다며 수군거렸다. 이때 걸인들 한 패가 몰려왔다. 그러나 떡 한 쪽 얻지 못한 패거리들은 욕설을 퍼붓기 시작했다. 
   “세상에 막걸리 한 잔 안주는 초상집은 생전 처음이구만. 어디 요놈의 집구석 잘사나 봐라. 에이 툇.”

   그러나 맏상주는 못들은 척했다. 혹시 걸인들이 행패라도 놓으며 음식을 먹을까 염려된 그는 불안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 그는 음식을 모두 집으로 가져가게 하고는 머슴에게 다시 단단히 일렀다. 아무도 음식에 손을 대서는 안 된다고. 그 광경을 본 걸인들은 상소리를 퍼부으며 돌아갔다. 맏상주는 한결 마음이 놓였다. 허나 그는 다시 걱정이 시작됐다. ‘집으로 보낸 음식을 누가 남은 음식인 줄 알고 퍼가거나 먹으면 어쩌나.’


   그는 더이상 참을 수가 없었다. 
   “내 품삯을 세곱 네곱, 아니 그 이상이라도 줄 테니 묘를 다 쓰거든 거적과 새끼줄, 지푸라기 하나 남지 않게 모조리 태워 주시오.”
   “아무래도 말 못할 깊은 사연이 있으신가 본데, 염려 마십시오. 이왕 물 한 모금 안 먹고 시작한 일 부탁대로 잘해 드리리다.”

▲대웅전 신방목 태극무늬

 

▲대웅전 신방목 태극무늬

 

   두번 세번 다짐을 받은 맏상주는 황급히 집으로 달려갔다. 막 대문 안으로 들어서는데 아낙들과 걸인들이 시비를 하고 있었다. 맏상주는 미친 듯 두 팔을 내저으며 사람들을 내몰았다. 한편 산에서는 묘가 다 되자 썩은 새끼 하나 남기지 않고 흩어진 새끼줄을 긁어모아 태우기 시작했다. 바로 그때였다. 어디서 나타났는지 깡마른 거지 소년 하나가 달달 떨며 모닥불 곁으로 다가왔다.

   “이 녀석아, 저리 비켜라.”
   “에이 아저씨, 거지는 모닥불에 살이 찌는 걸 모르시는군요.”
   “잔소리 말고 어서 저리 비켜!”
   일꾼 한 사람이 맏상주 부탁이 생각나 거지아이를 떠밀었다. 아이는 맥없이 땅바닥에 나가 뒹굴었다. 소년은 앙앙 울어댔다. 
   “불쌍한 아이를 말로 쫓을 것이지 밀기는 왜 미나?”
   “글쎄, 가엾군.”

   거지 소년은 일꾼들이 달래주자 더 소리 높여 울더니 막 불이 붙으려는 거적 하나만 달라고 애원했다. 
   “추워 죽겠어요. 그 거적 태우지 말고 나 주세요, 아저씨.”
   “안된다.”
   “태우는 것보다 내가 덮으면 좋잖아요. 네? 아저씨”
   마치 사시나무 떨 듯 몸을 움츠리며 사정하는 거지아이를 보다 못해 일꾼들은 맏상주와 약속을 저버린 채 인정을 베풀고 말았다. 
   “얘야, 이걸 갖고 사람들이 보지 않게 저 소나무 숲으로 빠져나가거라. 누가 보면 우린 큰일 난다. 알았지?”
   “네, 이 은혜 죽어도 잊지 않겠습니다.”

 

▲대웅전 신방목 연꽃무늬

  

▲대웅전 앞 석물

 

   거적을 뒤집어 쓴 거지 소년은 쏜살같이 소나무 숲으로 달아났다. 일군들은 적선을 했다는 기분에서 흐뭇한 얼굴로 연장을 챙기기 시작했다. 그때였다. 「꽝」하고 천지가 진동하는 폭음이 들려왔다. 바로 거지 소년이 사라진 소나무 숲에서 난 소리였다. 놀란 일꾼들이 소나무 숲으로 달려가 보니 참으로 묘한 정경이 생겼다. 거지아이는 간 곳이 없고 숲속에는 보지 못한 절 한 채가 솟아나 있는 것이 아닌가. 일꾼들은 겁을 먹고 마을로 내려왔다. 그 후 묘를 쓴 집안은 날로 가세가 기울기 시작했다. 그러나 어찌된 일인지 거지에게 거적을 준 일꾼들은 차차 형편이 피면서 큰 부자가 됐다. 마을 사람들은 소나무 숲에서 솟아난 절을 송림사라 불렀고 가난한 이웃에게 적선을 베풀 때 복을 받는다는 교훈을 되새겨 서로 도우면서 화목하게 살았다.

 

   <묘를 쓰다 생긴 이변>은 경상북도 칠곡 지역에 위치한 송림사에 관한 연기설화이다. 죽은 조상이 나타나 자손을 위해 부귀해지는 방편을 말해주지만 금기를 어겨 다른 사람들이 복을 받게 되었다는 것이 이 설화의 중심내용이다. 이 이야기는 절의 창건에 관한 것이기에 불교연기설화로 분류될 수 있으며, 자손을 돕는 조상신의 혼령이 등장한다는 점에서 혼령담으로도 분류할 수 있을 것이다. 혼령담(魂靈譚)이란 죽은 사람이 저승으로 가지 못하고 혼령인 채로 이승에 머물면서 인간에게 이로움을 주거나 해악을 깨친다는 내용의 이야기이다. 혼령의 형상은 살아있을 때와 똑같이 등장하기도 하고, 목소리만 들리는 경우도 있으며, 원한을 품고 죽은 사람의 경우는 흉측한 모습으로 나타나기도 하는데, 이 이야기에서의 혼령은 살아생전과 동일한 모습으로 등장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우리나라에서는 예부터 조상제사를 잘 받들고 모시고 자식들이 복을 받는다고 여겨져 왔다. 이는 곧 죽은 조상이 후손의 삶에 긍정적으로도 부정적으로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의식이기도 하다. 그래서 제사를 지낼 때 경건한 마음으로 예를 다하고 제사음식 장만에도 정갈함과 정성을 기울인다. 죽은 조상들은 저승에 머물다 일년에 한번 자신의 제삿날에 그리웠던 자손을 만나고 맛있는 음식도 대접받게 된다고 믿어졌기 때문에 제사는 죽은 조상과 살아있는 자손을 이어주는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따라서 돌아가신 조상을 섬기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겠으나 제사와 정성스러운 음식차리기가 가장 중시되었던 것이다. 구전설화에서는 제삿밥을 먹으러 왔던 조상신이 음식에 머리카락이 있는 것을 보고 음식을 먹지 않고 가버리거나 자손들에게 몹쓸 병을 내리기도 한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응진전

 

▲산령각

 

   반대로 이러한 이야기들의 이면에는 조상에게 정성껏 제사를 드리는 자손들은 그에 합당한 복을 받는다는 생각이 깔려있는 것이기도 하다. 따라서 정성을 다한 자손은 죽은 조상의 보호를 입고 복을 얻게 된다고 믿어져 왔고, 이러한 의식이 반영된 조상신에 관한 많은 설화들이 전승되고 있다. 그 설화들에 등장하는 조상의 혼령들은 후손의 집에 나타나 그 주변사람들의 길흉화복을 예언해주고, 위험에 빠진 자손의 목숨을 구해주거나, 집안 하인들의 비행과 악행을 밝혀주며, 과거급제와 나라에 공을 세우는 일을 도와준다.

 

   이처럼 조상신은 설화마다 긍정적으로도 부정적으로도 그려질 수 있는데, <묘를 쓰다 생긴 이변> 설화에서의 조상신은 자손을 적극적으로 도와주려는 존재로 등장한다. 그러나 이 이야기에 등장하는 조상신을 긍정적으로만 해석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맏상주는 부친이 돌아가시자 그 곁에서 이틀 밤을 꼬박 새다가 피곤하여 잠시 졸면서 선조인 듯한 한 노인을 만나게 된다. 그 노인은 장례가 진행되는 동안 조문객들이나, 장례 치루는 일을 도와주러 온 상두꾼들이나 일꾼들에게 떡 한 쪽, 술 한 잔, 지푸라기 한 뼘이라도 절대로 나눠주어서는 안 된다는 금기를 내린다. 이 금기가 지켜지면 장차 가세가 번창할 것이라고 했다.

 

   우리나라에서는 예부터 슬픈 일이나 기쁜 일에 상부상조하는 전통이 있어서 초상이 나면 누구나 할 것 없이 발 벗고 나서서 일을 거들고 슬픔을 함께 나누어왔다. 이에 대한 상응한 답례로 초상이 난 집에서는 음식을 대접하는 것이 상례이다. 그러나 이 설화에서 등장한 조상신은 이러한 미풍양속과는 거리가 먼 금기사항을 제시하고 이를 지켜야만 자손의 가세가 번창할 것이라고 했다. 그리하여 상두꾼은 물론 구걸하러 온 거지들에게 조차 먹을 음식은 물론, 낡은 거적조각조차 주지 않게 된다. 조상신의 이러한 금기사항은 자신의 자손을 위한 것일 수는 있지만 서로가 함께 도와주며 어울려 사는 조화로운 삶의 방식과는 거리가 멀다.

 

   결국 묘를 다지던 일꾼들은 맏상주의 거듭된 부탁이 있었지만 인정상 배고프고 추위에 떠는 거지 소년을 외면할 수 없어서 거지아이에게 거적 조각을 하나 주게 된다. 그 결과 맏상주의 집안은 점차 기울어졌고, 거지소년이 거적을 쓰고 사라진 곳에는 송림사라는 절이 생겨 번창했으며, 소년에게 거적을 준 일꾼들은 부자가 되었다고 한다. 이처럼 자신만 부자가 되겠다고 이기적으로 처신했던 맏상주가 벌을 받고 사람이면 당연히 갖게 되는 인정을 베푼 일꾼들은 부자가 되었다는 결말은 불교의 인과응보, 권선징악의 사상이 반영된 것으로 볼 수 있다.

 

 

 

                                                                               <2009. 2.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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