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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천 화남리 석불좌상

蔥叟 2008. 12. 14. 07:02

영천 화남리 석불좌상

 

   1980년 9월 16일 보물 제676호로 지정되었다. 높이 75cm, 대좌높이 80cm, 총높이 155cm이다. 현재 광배는 없어지고 대좌만을 갖추고 있다. 지권인(智拳印)이므로 비로자나불상임을 알 수 있으며, 형상은 나발(螺髮)에 나지막한 육계(肉髻)를 갖추었고, 상호는 원만하나 양쪽 볼이 약간 야위어 보인다. 양쪽 귀는 짧으며 목에는 삼도(三道)가 흔적만 남아 있다.

 

▲석불좌상

 

▲석불좌상

 

   법의는 통견(通肩)으로서 양쪽 팔에 걸쳐 무릎 밖까지 덮었다. 좌상의 전체적인 윤곽은 뚜렷하나 부분적으로 조각이 선명치 못하며, 대좌는 상·중·하대석으로 구성되었다. 하대석은 평면이 8각이며 기대석과 연화대석으로 이루어졌고, 기대석의 각 면에는 안상(眼象)을 조각하였다. 연화대는 각 모서리에 복엽복련(複葉覆蓮)무늬를 널찍하게 1판씩 배치하여 도합 8판을 돌렸으며, 연판 끝단 모서리에 귀꽃무늬를 장식하였다.

   상면에는 각형의 3단 굄과 낮은 1단의 굄으로 중대석을 받쳐 특이하다. 중대석도 8각으로 각면에는 양모서리 기둥을 나타내고, 그 속에 각종 조각상을 갖추었다. 상대석의 평면은 원형이고 하면의 받침만이 중대석 상면에 맞게 놓이도록 8각이며, 이 원형의 상대측면에는 상단에 이르기까지 3중의 단엽앙련(單葉仰蓮)을 장식하였고, 각 연판 안에도 꽃무늬를 장식하여 화려하게 처리하였다.

 

   보물로 지정될 당시에 삼층석탑을 해체·복원하는중 발견되었으며, 석탑의 기단석 한 면을 열자 그 안에 불상이 모셔져 있던 것을 원래 있던 대좌(臺座)에 모시고 있다. 작은 소라 모양의 촘촘한 머리칼, 작고 둥근 얼굴, 좁은 어깨, 빈약한 체구 등에서 단정하게 참선하고 있는 스님의 모습을 느낄 수 있다. 양 어깨에 걸쳐 입은 옷은 양 팔에 이르러 길게 늘어져 평행한 옷주름을 형성하고 있다. 배 부분에서 부드러운 곡선을 그리며 흘러내린 옷주름이 무릎과 다리까지 덮고 있는 모습이다. 손모양은 오른손으로 왼손 검지를 감싸고 있는 모습으로 이 불상이 비로자나불을 표현한 것임을 알 수 있게 해 준다.  

 

▲석불좌상

  

▲한광사

 

   불상이 앉아 있는 대좌(臺座)는 8각의 중대와 연꽃이 새겨진 상대·하대로 이루어져 있다. 이전의 불상들보다 한층 규격화되고 섬약해진 표현으로 볼 때 고려시대인 10세기에 만들어진 작품으로 보인다. 한광사(閑光寺) 뜰에 삼층석탑과 함께 놓여 있는 이 석불좌상은 완전히 맞추어보면 신라말 고려초의 전형적인 비로자나석불상(毘盧舍那石佛像)이다. 육계(肉)가 분명치 않은 나발(螺髮)의 머리칼, 작고 둥근 현실적 얼굴, 좁은 어깨, 빈약한 체구 등 단정하게 참선하고 있는 선사(禪師)의 모습을 본떠 조성한 듯한 분위기를 표현하고 있다.

 

   이러한 특징과 함께 두 손을 가슴에 모아 아래위로 포개어놓은 지권인(智拳印)의 비로자나수인, 얇게 빗은 듯 규칙적인 평행밀집옷주름 등은 바로 9세기나 10세기의 전형적인 비로자나석불 양식을 따르고 있다. 대좌(臺座) 역시 중엽복판연화문(重葉覆瓣蓮華紋)이 새겨진 상대(上臺), 8각의 중대(中臺), 귀꽃과 복련이 새겨진 하대(下臺) 등도 당시의 대좌 형식을 반영하고 있다. 그러나 이 불상은 한층 규격화되고 섬약해진 것으로 보아 10세기경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2008. 11.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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