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천 만취당(晩翠堂)
조선 선조시(宣祖時)의 성리학자(性理學者)인 지산(芝山) 조호익(曺好益)의 7세손(七世孫)으로 정조(正祖)5년(1781) 전라도 병마절도사(兵馬節度使)를 지낸 조학신(曺學臣)(1732∼1800)이 젊은 시절에 오종동(五宗洞)(현 오계1동(五溪))에 자리를 잡아 살림집을 건축하고 마을 주위에 송림(松林)을 조성하였다고 한다 .만취당은 사랑채의 이름이다.
전면의 길쪽으로 나앉은 광명헌(光明軒)과 후방에 배치된 별묘(別廟), 보본재(報本齋)는 후대에 추건(追建)된 것으로 전해진다. 광명헌(光明軒)은 1909년 소유자의 증조부가 중수하였고, 사랑채는 독립군(獨立軍)의 군자금(軍資金) 헌납사건(獻納事件)으로 일제관헌(日帝官憲)에 의하여 재해를 당한 것을 소유자의 조부가 1915년에 중수하였다.
치재 선적(善迪)의 아들로 태어남에 도량과 사람됨이 뛰어나다. 1759년에 영조의부름에 나아가 칼 쓰는 시합을 보였더니 임금님이 장하다고 크게 칭찬하여 사복(司僕) 내승(內乘) 으로 임명하였다. 내직으로는 국가의 중요직책을 맡았고, 밖으로는 여러 골의 목사(牧使)로 지냈다. 선생이 백성을 다스림에 정성을 다하니 정조께서도 높이 칭찬하여 규장각지 (奎章閣誌)와 대전통편(大典通偏)등을 각각 1부와 말 한필을 하사하였다. 세상을 하직함에 임금으로부터 부조와 제문이 내려졌다.
▲만취당(晩翠堂)
▲사랑채
▲사랑채
▲사랑채 대청
▲만취당 편액
▲사당
▲사당
▲안채
▲중문채
▲안채
▲안채
▲안채
▲헛간채
▲광명헌
▲광명헌
▲광명헌 편액
<2008. 11.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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