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양 선림원터 삼층석탑
선림원터는 1985년 7월부터 1986년 8월에 걸쳐 동국대학교 발굴조사단이 조사한 결과 이 곳에서 출토된 신라범종을 통해, 당시 해인사를 창건했던 순응법사(順應法師)에 의해 창건되었음이 밝혀졌다. 지금은 이 터가 경작지로 변하였으나, 여러 유물들이 남아있고 각종 기와와 토기조각들이 아직까지도 발견되고 있어 그 규모를 짐작하게 한다. 순응법사(順應法師) 등이 창건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그리고 현존하는 유물들이 모두 9세기 후반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므로 9세기 후반에 대대적인 중창이 있었던 것으로 짐작된다. 현재 절터에는 3층석탑(보물 제444호)·석등(보물 제445호)·홍각선사탑비(弘覺禪師塔碑 : 보물 제446호)·부도(보물 제447호) 등이 남아 있다. 이외에 1948년에 출토된 신라범종, 발굴조사에서 대량으로 출토된 탑과 은제불입상, 각종 기와 등으로 미루어보아 큰 절이었던 것으로 짐작된다.
선림원터에 있는 통일신라시대 3층석탑으로 높이는 410㎝이다. 2층 기단 위에 3층 탑신이 세워진 전형적인 신라 석탑으로 오래전부터 도괴되어 있던 것을 금당터(金堂址) 남쪽 원위치로 옮겨 복원한 것이다. 탑을 옮겨 복원하는 과정에서 많은 납석제 소탑과 동탁(銅鐸)이 나왔다. 지대석 위에 여러 장의 판석으로 만든 높은 굄대를 두고 그 위에 하층기단 면석(面石)을 놓았으며, 각 면석에는 우주(隅柱)와 탱주(撑柱)를 모각했다. 하층기단의 갑석(甲石)에는 2단의 굄을 새겨 상층기단을 받치도록 했으며, 상층기단 면석에도 우주와 탱주를 새겼다. 탱주로 이분된 상층기단의 각 면석에는 팔부중상(八部衆像)을 양각했는데, 그 조각솜씨는 뛰어나지만 마멸로 인하여 세부를 알아보기 어렵다. 조각 자체는 진전사터(陳田寺址) 3층석탑 기단부의 조각보다 저부조이지만 존상(尊像)들의 자세와 지물(持物), 표현방식 등은 매우 유사하다.
이외에도 보원사터(普願寺址) 5층석탑 기단부의 팔부중상에서 거의 동일한 조각수법을 볼 수 있다. 상층기단 갑석의 아랫면에는 부연(附椽)이 있고 윗면 중앙에는 2단의 각형 굄을 두어 탑신부를 받치도록 했다. 탑신부의 옥신과 옥개석은 각각 하나의 돌로 만들어졌고, 각 층 옥신에는 우주를 모각했으며 1층 옥신에 4각형 사리공이 있다. 옥개석의 층급받침은 모두 5단이며 추녀 모서리의 전각부(轉角部)에는 풍경을 달았던 작은 구멍이 있다. 옥개석의 각 층마다 각형의 2단 굄을 두어 옥신을 받도록 했는데 이것은 전형적인 신라 석탑의 양식이다. 상륜부에는 노반(露盤)·보륜(寶輪)·보주(寶珠)만 남아 있고 나머지는 결실되었다. 전체적인 탑의 결구방법과 팔부중상의 양식으로 미루어보아 9세기 후반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선림원터 전경
▲선림원터 전경
▲선림원터 전경
▲선림원터 금당터
▲선림원터 삼층석탑
▲선림원터 삼층석탑
▲선림원터 삼층석탑
▲탑신부
▲팔부신중상
▲팔부신중상
▲팔부신중상
▲팔부신중상
<2008. 8.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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