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문화순례◈/영동태백문화권

양양 낙산사 원통보전

蔥叟 2008. 10. 7. 08:16

양양 낙산사 원통보전

 

   『양주지밀기낙산사사적(襄州地密記洛山寺事跡)』에서 보듯이 신라시대 의상스님이 관음굴에서 관음대성을 친견하고 수정(水精)을 건네 받은 뒤 관음의 계시로 흙으로 빚은 관음상을 관음전에 봉안하면서 낙산사를 창건했는데, 관음전은 곧 원통보전의 다른 이름이므로 낙산사 창건부터 원통보전이 주된 금당이었음을 알 수 있다. 창건이후 858년(헌안왕 2)에는 사굴산파(淞堀山派)의 개산조(開山祖)인 범일(梵日, 810∼889)스님이 이곳에서 정취보살(正趣菩薩)을 친견한 뒤 그 모습을 상(像)으로 만들어 불전에 봉안했는데, 아마도 관음보살상과 함께 봉안되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원통보전 주위에는 그 둘레를 네모 낳게 사각형으로 둘러싸고 있는 조선시대 초기의 담장인 원장(垣墻)이 있다. 축조된 시기는 세조가 절을 중건할 때 처음 쌓았다고 전한다. 이 원장은 법당을 둘러싼 성역(聖域) 공간임을 구분하면서 공간 조형물로서의 효과도 아울러 겸비하고 있다. 사찰 건축에서는 보기 드문 우리 나라의 대표적 담장이며, 담장 안쪽의 담벽은 기와로 쌓고 담장 바깥쪽은 막돌로 쌓았다. 법당을 향한 담장 안쪽에는 밑부분에 2단의 장대석 기단을 조성하고, 그 위에 다시 1단의 장대석 받침돌을 놓았다. 담벽은 강회진흙과 평와(平瓦)를 차례로 다져 쌓아 담벽 앞면에 기와로 가로 세로의 줄을 맞추고, 일정한 간격에 맞추어 둥근 화강암을 배치함으로써 단조로운 벽면을 장식했다. 담장 바깥쪽 벽면은 막돌로 벽면을 고르게 쌓고 돌과 돌 사이는 강화진흙으로 메웠다. 담장 위는 기와로 지붕을 이어 담벽을 보호하고 있다.

 

   원통보전 앞에 세워진 조선시대 석탑으로서,낙산사는 조선 세조 대(재위, 1455∼1468)에 중창되었는데 이 탑도 그 때 세워진 것으로 추정된다. 이 탑은 비록 부분적으로 파손된 곳이 있으나 대체적으로는 탑의 상륜(相輪) 부분까지 비교적 완전한 형태를 갖추고 있어 조선시대 불탑 연구에 훌륭한 자료가 된다. 탑의 양식을 살펴보면, 평면은 방형(方形)으로서 기단석 위에 탑신이 놓이고 그 위에 상륜부가 마련된 구조를 하고 있다. 기단석(基壇石)은 지면에 2단의 층을 이룬 지복석(地覆石)과 그 위의 복련(伏蓮)이 조각된 지대석(地臺石)으로 구성되었다. 기단은 단층기단으로서 우주(隅柱)가 새겨지지 않았고, 그 위에 얹은 뚜껑돌인 갑석(甲石)은 아래 위가 수평인 하나의 돌로 된 판석(板石)인데, 그 밑에 부연(副椽)과 2단의 각형(角形) 고임이 있다. 기단 상면에는 겹잎[複蓮]의 복련(覆蓮) 24잎이 조각되었다.

 

▲원통보전

  

▲원통보전

 

▲원통보전 편액

 

▲원통보전 담장

 

▲원통보전 담장

 

▲원통보전 담장

 

▲원통보전 담장

 

▲낙산사 칠층석탑

 

▲낙산사 칠층석탑

 

▲낙산사 칠층석탑

 

▲낙산사 칠층석탑

 

▲낙산사 칠층석탑

 

▲해수관음상

 

▲해수관음상

 

▲범종각

 

▲천왕문

 

 

 

<2008. 8.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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