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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릉 임영관터(臨瀛館址)

蔥叟 2008. 10. 4. 05:06

강릉 임영관터(臨瀛館址)

 

   강릉 임영관터는 강릉부 객사 건물인 임영관(臨瀛館)의 터이다. 객사는 지방으로 출장 온 관리의 숙소로 사용하였던 곳이다. 강릉의 객사는 강릉부 읍지(江陵府邑誌) 건치연혁에 따르면 고려 태조 19년인 936년에 강릉을 동원경(東原京)이라 칭하고 임영관을 창건하였다고 기록되어 있으며 창건 당시 건물의 규모 등은 확인할 수 없고 여러 차례에 걸쳐 중창되어 왔다. 이 객사에는 전대청 9칸중 대청 12칸, 동대청 13칸, 랑청방 6칸, 서헌 6칸, 월랑 31칸. 삼문 6칸으로 되어 있던 것을 1859년에 헐리어 경포 방해정으로 일부 옮겨 가고 일부는 남산에 있는 오성정으로 옮겼다. 나머지는 헐어 치웠으며 이 문루는 1908년에 중수하고 강릉 보통학교가 여기서 개교하여 사용하다가 1958년 12월 20일에 강릉 경찰서 청사가 들어서게 되었고 객사문만 남게 되었다. 

 

▲임영관

 

▲임영관

 

   강릉시청사 신축을 위해 수목의 채굴과 구 강릉경찰서 지하구조물의 철저과정에서 임영관 건물지 및 조선시대, 고려시대의 건물 하부구조와 다량의 유물이 출토되어 1994년 7월 11일 사적 제388호로 지정되었다. 2000년부터 전통문화도시 도심관아유적 복원사업의 일환으로 임영관터내에 전대청, 중대청, 동대청, 서헌의 4개동의 건물을 비롯한 석축, 담장 등 복원을 추진하여 2006년 완공하였다. 임영관터는 객사문 및 부사가 업무를 살폈던 칠사당(七事堂)과 함께 강릉의 관청건물 연구에 귀중한 자료를 제공하고 있다. 

 

▲전대청

 

▲전대청

 

   전대청(殿大廳)은 객사의 정청(政廳)이자 중심공간이다. 전대청에는 왕의 전패(殿牌)를 모셔두고 초하루와 보름에 수령이 대궐을 향해 절을 하는 망궐례(望闕禮)를 행하엿던 곳이며, 사신 및 외관이 왕에게 글을 올리거나 왕이 내리는 향을 맞이하는 의식, 관찰사 순행시 지방관이 연명(延命) 등을 행하였던 곳으로서 우측의 동대청과 서헌에 비해 지붕이 한 단 높게 지어졌다. 이 문루 현판에 임영관이라 써 있으니 이것이 고려 공민왕 (31대)이 양양 낙산사에 기도차 행행시 10일간 이 객사에 유할 때에 친필한 것이라 한다. 

 

▲임영관 편액

 

▲임영관 편액

  

   동대청(東大廳)은 좌측의 서헌과 더불어 사신 및 중앙관료들의 숙식 및 연회, 재판, 국가 경사 및 애사(哀事)시 망곡(望哭) 등을 하던 곳이다. 구조는 온돌방과 마루로 구성되어 있으며, 서헌보다 규모가 더 크다. 이용규정에 대한 명확한 기록은 없지만 수교집록(受敎輯錄)에 의하면 문무관 구별없이 사신 일행 중 품계가 2품이상은 동대청을 이용해다는 것으로 미루어 서헌보다 위계가 높았음을 알 수 있다.

 

▲동대청

 

▲서헌

 

   서헌(西軒)은 우측의 동대청과 더불어 사신 등이 숙식을 하던 곳으로 구조는 온돌방과 마루로 구성되어 있으며, 동대청보다 규모가 작다. 이용규정에 대한 명확한 기록은 없지만 수교집록에 의하면 사신 일행 중 정3품 관료들이 서헌을 사용했다고 한다. 중대청(中大廳)은 고려 건축양식으로 전면 3칸, 측면 4칸의 맞배지붕 주심포 양식이다. 건물의 용도에 대하여는 관찰사의 순력 등을 위한 장소로 추정되나 자세한 것은 알 수 없다. 

 

▲중대청

 

 

 

<2008. 8.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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