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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산 상왕산 개심사(象王山開心寺)

蔥叟 2008. 8. 31. 09:26

서산 상왕산 개심사(象王山開心寺)

 

   개심사(開心寺)는〈사적기 事蹟記〉에 의하면 654년(무열왕 1) 혜감국사(慧鑑國師)가 창건할 당시에는 개원사(開元寺)라 했는데, 1350년(충정왕 2) 처능대사(處能大師)가 중건하면서 개심사라 했다고 한다. 1484년(성종 15)에 대웅전을 중창했으며 1740년 중수하고 1955년 전면 보수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전체적으로 구릉형을 따르면서도 산지형(山地形)으로 변천한 일탑형(一塔型) 가람배치를 보인다. 주차장을 지나면 근래세 새로 세운 일주문이 아직 단청을 하지 않은 채 답사객을 반긴다. 이윽고 자연 계단이 시작되는데 계단 입구에 '개심사 입구', '세심동'이라고 새겨진 자연석 안내판이 보인다. 여기서 부터  금강송으로 이루어진 숲길 자연계단을 오르면 3단 가량으로 조성된 평탄한 사지(寺址)가 보인다. 개심사에서 가장 먼저 만나는 것은 경지(鏡池)이다. 경지 가운데에는 통나무로 된 외나무 다리가 있어 피안의 세계로 들어가는 다리역할을 한다.

 

   2단에 안양루(安養樓)가 남면(南面)하여 서 있고 중정(中庭)으로의 입구는 안양루와 무량수각(無量壽閣) 사이의 협소한 가설문인 해탈문으로 되어 있다. 해탈문을 지나면 중정이 나타나는데 이곳이 3단이다. 대웅전을 중심으로 좌우에 심검당(尋劍堂)과 무량수각이 있고 정면에 안양루가 있는 표준형이다. 이외에도 명부전(冥府殿)과 팔상전(八相殿) 등의 당우가 남아 있다. 경내의 마당을 중심으로 대웅전과 안양루가 남북으로 배치되었고 동서로는 무량수각과 심검당이 위치해 있다. 또한 이곳에는 명부전을 비롯한 영산회괘불탱, 아미타본존불, 관경변상도, 칠성탱화, 오층석탑, 22종의 경전 목판 등이 전하고 있다.

 

   대웅전은 개심사의 주불전으로 조선 초기의 목조건물이다. 백제시대 창건 당시의 기단 위에 다포식과 주심포식을 절충한 건축양식으로 그 축조기법이 미려하여 건축 예술의 극치를 이루고 있다. 1941년 대웅전 수리 때 발견된 묵서명(墨書銘)에 의해 1484년(성종 15)에 세워져 1644년(인조 22)과 1710년(숙종 36)에 중수되었음을 알 수 있다. 평면은 앞면 3칸, 옆면 3칸으로 지대석(地臺石)과 판석(板石)을 놓고 다시 장대석의 갑석(甲石)으로 마무리한 기단 위에 약간의 흘림이 있는 기둥과 민흘림기둥을 세웠다. 내부는 고주(高柱)가 없이 통간(通間)으로 되어 있고, 종도리를 받고 있는 대공은 화려하게 초각된 파련대공(波蓮臺工)을 사용했다. 종도리와 중도리 사이에는 솟을합장재를 두었다. 연등천장으로 상부에 가구(架構)가 노출되어 있다. 공포는 내삼출목·외이출목으로 초제공과 이제공의 외부살미 형태가 아래로 강직하게 내려뻗은 초기형태인 수서[垂舌]의 모습을 하고 있다. 지붕은 맞배지붕으로서 다포계형식의 건물에서는 흔치 않은 것으로 주심포형식에서 다포계형식으로 옮겨가는 절충적인 양식을 보여주는 건물이다. 

 

   대웅전 내부에는 아미타삼존불과 관경변상도가 후불벽화로 걸려 있다. 이불화는 본래 1767년도에 제작된 중요한 불화였는데 1995년 4월에 도적이 칼로 오려내어 현재도 행방을 알 수 없다. 현재의 불화는 옛것을 본더서 새로 그린 것이다. 관경변상도는〈관무량수경 觀無量壽經〉의 내용을 그림으로 설명한 불화로서 정토삼부경 중 〈관무량수경〉에 의하여 극락세계의 여러 장면을 16가지로 관상하는 방법을 그림으로 쉽게 표현한 것이다. 일반적인 도상은 아미타 정토변상과 마찬가지로 아미타삼존 및 성중(聖衆)을 중심으로 극락정토의 경관을 그리고 그 좌우와 아래에 관경서분변상(觀經序分變相)과 16관변상(十六觀變相)을 그렸다. 관경서분변상은 인도 마가다국의 아자세(阿闍世) 태자가 왕위를 찬탈하고자 부왕인 빈비사라(頻毘沙羅)를 유폐시키고 모후 위데희[韋提希]마저 죽이려고 했을 때 이를 구제하기 위해 영축산의 석가가 왕비 앞에 나타나 정토에 대한 교설을 설하게 되었다는 설화를 그린 것이다. 16관변상은 왕비가 극락정토를 관상하기 위한 단계로서 청한 16관상의 내용을 담고 있다. 즉 일상관(日想觀)·수상관(水想觀)·지상관(地想觀)·수상관(樹想觀)·지상관(池想觀)·총관(總觀)·좌상관(座想觀)·상상관(像想觀)·신관(身觀)·관음색신관(觀音色身觀)·세지신상관(勢至身想觀)·보관상관(普觀想觀)·잡상관(雜想觀)·상배생상관(上輩生想觀)·중배생상관(中輩生想觀)·하배생상관(下輩生想觀) 등을 그림으로 표현한 것이다. 개심사 관경변상도는 16관변상 가운데 제15중품 설법 장면이 크게 묘사되어 독특한 배치를 하고 있다.

  

   심검당의 건립연대는 전해지는 기록이 없어 정확히는 알 수 없지만 1962년에 해체 수리할 때 발견된 상량문에 다르면 1477년에 3중창하였고 영조 때가지 여섯번이나 중창을 거쳤다고 되어 있어 개심사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이다. 상량문에는 3중창부터 6중창까지 연대가 나와 있을 뿐 아니라 시주자의 이름과 '박시동(朴時同)'이라는 목수 이름까지 들어있어 사료적 가치가 높다고 한다. 원래의 크기는 정면 3칸, 측면 3칸의 규모이나 지금은 'ㄱ'자형의 방을 이어지게 늘려 지어 상당히 큰 요사로 남아있다. 구조는 기단석 위에 자연석의 주춧돌을 놓고 배흘림이 가미된 둥근 기둥을 세웠으며, 기둥 윗부분에 공포를 짜올려 지붕의 무게를 모두 기둥에 받도록 한 주심포 양식이다. 지붕의 뒷부분은 홑처마, 앞은 겹처마의 맞배지붕 집이다. 평지의 사원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평탄하고 안정되어 산속의 다른 건물과는 차이를 보이고 있다.

 

   명부전은 지장보살을 중심으로 염라대왕 등 10대왕을 봉안한 전각이다. 원래는 대웅전 다음으로 중요시되던 건물이었다. 자연석을 다듬어 기단을 만들었으며, 위에 다듬지 않은 주춧돌을 놓고 원형기둥을 세워 정면 3칸, 측면 3칸의 평면으로 건립되었다. 맞배지붕이며, 측면에 비바람을 막기위한 널판지가 있는 조선초기의 건물이다. 내부 바닥은 우물마루를 깔고 그 뒷면으로 불단을 조성하여 철로 만든 지장보살과 10대왕을 안치하였는데, 기도의 효과가 크다고 하여 참배객들이 끈이지 않고 있다. 출입문 좌우에는 사람과 같은 크기의 사자상을 세워 두었다.

 

▲일주문

 

▲개심사 입구, 세심동

 

▲계단

 

▲경지(鏡池)

 

▲경지(鏡池) 

 

▲경지(鏡池)의 외나무다리

 

▲범종루

 

▲안양루

 

▲상왕상개심사(象王山開心寺) 편액

 

▲안양루

 

▲안양루

 

▲개심사(開心寺) 편액

 

▲해탈문

 

▲해탈문

 

▲해탈문 편액

 

▲오층석탑

 

▲오층석탑 탑신부

 

▲오층석탑 기단부

 

▲오층석탑 기단부 복련

  

▲대웅전

 

▲대웅전

 

▲대웅전 내부

  

▲대웅전 관경변상도

 

▲대웅전 관경변상도

 

▲16관경도

 

▲아미타 삼존불

 

▲아미타불 

 

▲심검당

  

▲심검당 부엌

  

▲심검당

  

▲심검당 쇠서

 

▲심검당 편액

 

▲설선당 편액

 

▲무량수각

 

▲무량수각 편액

 

▲명부전

 

 

 

<2008. 8.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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