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 진파리 출토 해뚫음무늬금동장식(金銅透刻日像文裝飾)
<국립중앙박물관북한문화유산특별전>
북한의 국보 문화재인 '해뚫음무늬 금동장식'은 남한 용어로 하면 '일상투조 금동장식(日像透彫金銅裝飾)' 으로 평양 역포구역 용산리(일명 진파리) 7호분에서 출토됐다. 관모형 장식의 중앙에는 원에 둘러싸인 삼족오(三足烏)를 배치하고 원둘레에는 봉황새 한마리와 두마리의 용과 화염문을 배치한 독특한 형상과 빼어난 예술성으로 고구려 금속 공예를 대표하는 작품이다. 복숭아를 절반으로 눕힌 모양과 그 중앙에 구슬을 박은 두겹의 동그라미 속에 삼족오(三足烏)가 보인다. 삼족오는 고분벽화에서도 자주 볼 수 있는데, 해 속의 까마귀는 달 속의 개구리(金蛙, 혹은 두꺼비)와 한쌍을 이루고 있다. 까마귀는 해의 상징으로 양(陽)을 뜻하고 개구리로 상징되는 달은 음(陰)을 뜻한다.
*해뚫음무늬 금동장식
일반인들은 테두리에 연주(聯珠·작은 구슬의 연속) 무늬들이 있는 둥근 원 안에서 태양을 상징하는 삼족오(三足烏·발이 셋인 까마귀) 무늬만을 발견한다. 그러나 무늬 폭이 1∼3mm에 불과한 이 섬세한 장식판에는 봉황 한 마리와 용 두 마리도 숨어 있다. 따라서 ‘삼족오 용봉 무늬 금동투조 장식판’이란 이름이 더 정확한 이 장식품의 무늬 구성은 봉황과 용의 형태를 이용하며 절묘한 구성을 이루어 유려하면서도 역동적인 영기(靈氣) 무늬를 표현했음이 뚜렷이 드러난다.
가운데 삼족오의 무늬를 살펴보면, 우선 전체의 흐름을 U자를 변형시킨 모양으로 만들었는데, 입에서는 영기 무늬가 뻗쳐 나오고 가슴·등·꼬리 등에서 모양의 영기 무늬가 나오며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힘차게 회전하는 형상이다. 그 위쪽에는 봉황이 날고 있다. 봉황의 머리엔 반(半)팔메트(중동에서 유래한 좌우대칭 구조의 상징적 식물) 무늬가 뻗어 있으며 봉황 전체 모습은 역시 커다란 u자 모양이다. 봉황의 입에서는 영기 무늬가 한 가닥 위로 뻗치고 아래로 한 가닥 길게 뻗쳐 왼쪽 용의 긴 꼬리와 연결돼 마치 봉황의 입에서 용이 뻗어 나오는 듯하다. 역시 가슴과 등과 꼬리에서 영기 무늬가 나온다. 봉황이 차지하는 공간은 좁다. 그것은 봉황의 모습을 길게 변형시킬 수 없는 형태의 한계 때문이다.
이에 비하여 삼족오 좌우의 넓은 공간은 두 마리의 용이 차지한다. 그것은 용의 형태적 특징 때문이다. 용은 긴 꼬리와 네 다리를 지니고 있기 때문에 꼬리와 네 다리를 얼마든지 늘이거나 다양하게 구성할 수 있다. 좌우의 용의 형태가 같으므로 전체 모습이 잘 남아 있는 오른쪽 용을 자세히 살펴보자. 숨은 그림 찾기처럼 흥미롭다. 역시 용 전체의 형상은 모양을 띠고 있다. 입은 크게 벌렸는데 위 아래로 영기 무늬 같은 곡선적인 이빨이 두 개씩 있다. 뿔은 하나인데 거기에서 긴 영기 무늬가 길게 뻗치며 한 번 휘돌아 오른쪽 앞 다리의 발톱과 연결돼 있다. 각각 다른 방향으로 뻗어 나간 네 다리를 자세히 보면 발가락을 두 개로 간단히 표현했다. 양쪽으로 뻗친 두 발가락에 영기 무늬 모양의 발톱이 할퀼 듯 날카롭다. 꼬리와 네 다리의 구성은 절묘하기 짝이 없으며 길고 짧은 영기 무늬를 곳곳에 두어 아름답고 힘차다.
우리는 여기서 용이란 동물이 영기의 응축임을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다. 긴 몸과 다리는 굵어서 쉽게 용의 모습을 알 수 있으며, 그 몸과 다리에서 뻗쳐 나오는 영기무늬는 가늘다. 봉황과 용의 사이에 공간이 생기는데, 그 곳에는 하나의 추상적 영기무늬가 채워져 있다. 왼쪽, 그러니까 앞 쪽의 용이 있는 부분은 일부 파손됐으나 오른쪽 용과 거의 같은 포즈다. 오른쪽 용과 달리 이 용의 입에서는 긴 혀가 나오고 있는데 그 끝이 파손되어서 어떤 형상인지 알 수 없다. 내 생각에는 혀가 아니고 영기무늬가 뻗쳐 나왔으리라 생각하나 현재로선 단정하기 어렵다.
삼족오(三足烏) 또는 세 발 까마귀는 고대 동아시아 지역에서 태양의 신으로 널리 숭배를 받은 전설의 새이다. 삼족오는 빛의 원리에 의해 태양을 배경으로 서 있으면 모든 물체가 검게 보이는데서 기인한다. 일부에서는 삼족오의 '오'가 까마귀가 아닌 단순히 '검은 새'를 의미한다고도 한다. 삼족오는 3개의 다리가 달려있는 까마귀를 의미한다. 그 이유를 들자면 여러 가지가 있는데, 태양이 양(陽)이고, 3이 양수(陽數)이므로 자연스레 태양에 사는 까마귀의 발도 3개라고 여겼기 때문이라고도 하고, 삼신일체사상(三神一體思想), 즉 천(天)·지(地)·인(人)을 의미하는 것으로 해석하는 경우도 있다. 또 고조선 시대의 제기로 사용된 삼족정(三足鼎)과 연관시켜 ‘세 발’이 천계의 사자(使者), 군주, 천제(天帝)를 상징하는 것으로 분석하기도 한다.
삼족오의 발은 조류의 발톱이 아니라 낙타나 말 같은 포유류의 발굽 형태를 보이고 있다. 중국에서 삼족오라는 말이 처음 등장한 것은 전한 시대 때의 것으로 추정되는 《춘추원명포(春秋元命苞)》라는 책이며, 《산해경(山海經)》에도 ‘태양 가운데 까마귀가 있으니 세 발 달린 까마귀이다(日中有烏謂三足烏也)’라는 삼족오에 대한 기록이 있다. 기원전 4,000년경의 앙샤오 문화 유적지의 토기에서 처음으로 삼족오가 발견되었으며, 랴오닝성 차오양 지구 원태자 벽화묘에도 삼족오 문양이 있다.
한국에서는 씨름무덤, 쌍영총, 천왕지신총 등 고구려의 고분 벽화에 삼족오가 많이 그려져 있다. 《삼국유사》의 기이편(紀異扁)에는 소지왕 10년 때에 까마귀가 나타나 사람에게 해야할 일이나 일어날 일을 미리 알려주는 영험한 존재로 등장한다. 일본의 기원과 관련이 깊은 신라의 연오랑과 세오녀 전설에서도 삼족오가 등장하는데, 연오랑(燕烏郞)과 세오녀(細烏女)의 이름을 자세히 살펴보면 둘 다 이름에 까마귀 오(烏)자가 붙는 것을 알 수 있다. 이것은 당시 사람들이 까마귀를 빛의 상징으로 보았다는 점을 알려주는 것이다. 고려 시대에는 의천의 가사에서 보이며, 조선 시대에는 일부 묘석에 삼족오가 새겨져 있다.
일본에서는 개국 신화에서 천황의 군대의 길 안내를 한 태양신의 사자인 일본의 삼족오 ‘야타가라스(八咫烏)’가 고대 고분과 각종 유물에서 등장하고 있다. 천황이 즉위식 때에 입는 곤룡포의 왼쪽 어깨에는 삼족오가 자수로 놓여져 있다. 또한 일본축구협회에서는 삼족오를 엠블렘으로 사용하고 있다. 이 중 특별히 한국의 삼족오는 중국과 일본의 삼족오와는 달리 머리에 공작처럼 둥글게 말린 벼슬이 달려 있다는 점에서 그 외형에서 확실한 차이점이 있다. 벼슬은 국가통치조직에서 나랏일을 담당하는 직위나 직무를 상징한다.
<2006. 7. 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