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령 출토 연가7년명 금동여래입상
<국립중앙박물관>
연가7년명 금동여래입상은 고구려가 평양으로 천도한 뒤 약 100년이 지난 539년에 만들어졌다고 하는, 현재 우리나라에서 제작연대가 확실한 가장 오래된 불상이다.
광배 뒷면의 명문에 보이는 바와 같이 이 불상은 고구려의 수도 평양에 있는 동사(東寺)의 신도 40인이 힘을 합해 만든 현겁천불(賢劫千佛) 가운데 스물아홉 번째 불로서 천불을 널리 유포하겠다는 고구려 불교의 야심을 잘 나타내고 있다. 명문은 다음과 같다.
延嘉七年歲在己未高麗國樂良 / 東寺主敬弟子僧演師徒卌人共 / 造賢劫千佛流布第卄九回現義 / 佛比丘法穎所供養
더욱이 이 불상은 신라 지역 깊숙한 곳인 경남 의령에서 발견되어 고구려의 영향력이 광범위하였음을 알 수 있는 동시에 불상의 제작지를 밝힘에 있어 출토지와 함께 양식적 고찰이 더 중요함을 일깨우는 예이다. 아마 이 불상의 경우도 고구려에서 제작된 후 의령지방으로 이동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광배무늬는 회룡문이 불꽃무늬로 변하는 과정에 있고, 가사는 중국의 포복식을 그대로 이어받아서 오른쪽 어깨에서 내려오는 옷자락이 왼쪽 팔에 걸쳐 흘러내리고 있다. 이는 북위양식을 충실히 반영한 것이다. 그러나 광배의 자유분방한 화염문의 구성, 볼륨은 강하되 과감히 면을 자른 옷자락, 대좌에 새겨진 연화의 양감 등은 한국불상의 신기원을 여는 자신만만한 출발을 나타내고 있다. 전체 높이는 16.2cm이다.
1967년 10월 덕수궁미술관 2층에 전시 중이던 국보 제119호 연가7년명금동여래입상이 사라졌다. 진열장에 전시되어 있어야할 고구려 불상 대신 메모 한 장만 덩그러니 남아 있었다.
"문화재관리국장(문화재청 전신)께 직접 알리시오. 오늘밤 12시까지 돌려준다고. 세계 신기록을 남기기 위해 11시에 다시 전화하겠소."
당시 문화재관리국과 경찰은 국보 문화재 도난사건으로 발칵 뒤집혔다. 그러나 경찰은 범인에 대한 단서도 확보하지 못했다. 범인은 문화재관리국장에게 두 차례나 더 전화를 걸어 "돌려주겠다"는 말만 남기고 전화를 끊었다. 경찰이 갈팡질팡하던 중 문화재관리국장 자택으로 전화벨이 울렸다.
"불상은 한강철교 제3교각 16, 17번 침목 받침대 사이 모래밭에 있으니 찾아가시오."
범인이 지목한 곳에서 불상을 찾을 수 있었다. 그러나 범인은 영영 잡지 못했다.
*금동여래입상
*금동여래입상 광배의 명문
<2006. 7.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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