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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주 중원 고구려비

蔥叟 2008. 7. 3. 08:18

충주 중원 고구려비

 

   중원 고구려비는 충청북도 충주시 가금면(可金面) 용전리(龍田里) 입석(立石)마을에 있으며, 국보 제205호로 지정되었다. 1979년 4월에 충주의 문화재 애호가들이 입석(立石)에 글자가 새겨져있다고 제보하여 세상에 알려졌다. 현재 전면과 좌·우측면에 글자를 새겼음을 확인할 수 있고, 뒷면에서는 판독되는 글자를 발견할 수 없다. 뒷면에도 글자를 새겼는지에 대하여 학자들 사이에 의견이 갈려있다.

 

▲중원 고구려비 

 

   건립 연대를 확인할 수 있는 부분이 마멸되어서 정확한 시기를 알 수 없다. 현재 5세기 전반 광개토왕대부터 6세기 중·후반 평원왕대(559~590)까지 다양한 의견이 제시되었다. 최근에 앞면 첫째 줄의 몇 글자(高麗太王祖王令)를 새롭게 판독하여 495년(문자명왕4)으로 보는 견해와 비문에 보이는 ‘십이월삼일갑인(十二月三日甲寅)’이란 간지와 날짜를 고려하여 449년(장수왕37)으로 보는 견해가 폭넓게 지지를 받고 있다.

 

▲중원 고구려비

 

   글자의 마멸이 심하여 비의 성격에 대해서도 의견이 엇갈린다. 고구려의 중원 진출을 기념하기 위하여 비를 건립하였다고 보는 견해, 문자명왕의 중원지역 순행을 기념하기 위하여 비를 건립하였다고 보는 견해, 고구려 태자공(共)이 신라와 싸워 다시 우벌성(于伐城:충주지방)을 되찾은 사실을 기념하기 위하여 비를 세운 것으로 보는 견해, 고구려와 신라 사이에서 어떤 문제를 둘러싸고 회맹(會盟)한 사실을 기념하여 비를 세웠다고 보는 견해 등이 있다.

 

▲중원 고구려비

 

   중원 고구려비는 한반도에 남아있는 유일한 고구려의 비이며, 고구려의 중원 진출을 입증하는 구체적인 자료이다. 특히 ‘신라토내당주(新羅土內幢主)’란 표현은 중원 고구려비 건립 단계에 고구려 군대가 신라 영토내에 주둔하고 있는 실정을 알려주어 당시 양국간의 관계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자료로서 주목을 받았다. 이밖에 여기에 나오는 고구려의 인명과 관등은 고구려 정치제도사 연구의 사료로, 신라를 동이(東夷)라고 부른 표현은 당시 고구려의  천하관을 엿볼 수 있는 자료로 활용되었다.

 

▲중원 고구려비

 

<前面>
五月中高麗太王祖王令▨新羅寐錦世世爲願如兄如弟」
上下相和守天東來之寐錦[忌]太子共前部大使者多?桓
奴主簿貴道[德][][類][王][安][]▨[去]▨▨到至?營天(大?, 夭?)太子共[]
尙望上共看節賜太?鄒敎(授?)食[在]東夷寐錦之衣服建立處
用者賜之隨▨節▨▨奴客人▨敎諸位賜上下[衣]服敎東
[夷]寐錦遝還來節敎賜寐錦土內諸衆人▨▨▨▨[王]國土
大位諸位上下衣服[束(來)]受敎?營之十二月卄三[日]甲寅東
夷寐錦上下至于伐城敎來前部太使者多?桓奴主簿貴
▨▨▨[境]▨募人三百新羅土內幢主下部[拔]位使者補奴
▨疏奴[]▨[凶]鬼盖盧共[]募人新羅土內衆人?[動]▨▨

 

▲중원 고구려비

 

<左側面>
▨▨▨[忠]▨▨[于]伐城不▨[]▨村舍▨▨▨[][?]▨[沙]▨▨
▨▨▨▨▨▨▨▨刺功▨▨射▨▨▨▨▨節人刺▨▨」
▨▨▨▨▨▨[辛][酉]▨▨▨▨▨▨▨▨▨▨太王國土▨」
▨▨▨▨▨▨▨▨▨▨▨▨▨黃▨▨▨▨▨▨▨[安]▨▨」
▨▨▨▨▨▨▨▨▨▨上[右]▨▨辛酉▨▨▨▨東夷寐錦土
▨▨▨▨▨▨方(万?, 右?)袒[故]▨桓)▨沙▨斯色▨太古鄒加共軍至于」
▨▨[去]于▨古牟婁城守事下部大兄耶

 

▲중원 고구려비

 

<右側面>
▨▨▨▨▨▨▨▨▨前部[大]兄▨▨▨▨▨▨▨▨▨▨
▨▨▨▨▨▨▨▨▨▨[]▨▨部[小▨+▨▨泊▨▨▨▨▨
▨▨▨▨▨▨▨▨▨▨容▨▨▨▨▨▨▨▨▨▨▨ ▨▨▨▨▨▨▨▨▨
▨▨▨▨▨▨▨▨▨▨▨▨▨▨▨▨▨▨▨▨▨▨
▨守[自]▨▨▨▨▨▨▨▨▨▨▨▨▨▨▨」

 

▲비문

 

(전면)
5월 중 고려대왕(高麗大王)의 조왕(祖王)께서 영
...신라 매금(寐錦)은  세세(世世)토록 형제같이 지내기를 원하여 서로 수천(守天)하려고 동으로 (왔다). 매금(寐錦) 기(忌) 태자(太子) 공(共) 전부(前部) 대사자(大使者) 다우환노(多?桓奴) 주부(主簿) 귀도(貴道) 등이 ... 로 가서 궤영(?營)에 이르렀다. 태자(太子) 공(共) ... 尙 ... 上共看 명령하여 태적추(太翟鄒)를 내리고 ... 매금(寐錦)의 의복(衣服)을 내리고 建立處 用者賜之 隨者 ... . 奴客人 ... 제위(諸位)에게 교(敎)를 내리고 여러 사람에게 의복을 주는 교(敎)를 내렸다. 동이(東夷) 매금(寐錦)이 늦게 돌아와 매금(寐錦) 토내(土內)의 제중인(諸衆人)에게 절교사(節敎賜)를 내렸다. (태자 공이) 고구려 국토 내의 대위(大位) 제위(諸位) 상하에게 의복과 수교(受敎)를 궤영에게 내렸다. 12월 31일 갑인에 동이(東夷)  매금(寐錦)의 상하가 우벌성(于伐城)에 와서 교(敎)를 내렸다. 전부 대사자 다우환노와 주부 귀도(貴道)가 국경 근처에서 300명을 모았다. 신라토내당주 하부(下部) 발위사자(拔位使者) 보노(補奴) ... 와 개로(盖盧)가 공히 신라 영토 내의 주민을 모아서 ... 로 움직였다.

 

▲비문

 

(좌측면)
... 中 ... 城不 ... 村舍 ... 沙 ... 班功 ... 節人 ... 신유년(辛酉年)  ... 十 ... 太王國土 ... 上有 ... 酉 ... 東夷 寐錦의 영토 ... 方 ... 桓▨沙▨斯色 ... 고추가(古鄒加) 홍(共)의 군대가 우벌성에 이르렀다. ... 고모루성수사(古牟婁城守事) 하부(下部) 대형(大兄) 야▨(耶▨) 

 

 

 

<2008. 5. 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