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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도 호거산 사리암(邪離庵)

蔥叟 2007. 12. 16. 06:47

청도 호거산 사리암(邪離庵)

 

   사리암은 운문사의 산내암자인데 간사할 사(邪)와 떠날 리(離)가 합쳐져 '삿(邪淫)된 것을 여의는 암자'라고 한다. 가파른 경사의 계단길을 한참 올라야 사리암에 닿는다. 소위 '기도발' 이 잘 먹기로 유명한 곳이 전국에 3곳이 있다. 이 소문난 기도처가 경남 남해 보리암과 강화 석모도의 보문사, 그리고 이곳 청도의 사리암이다. 그래서 이곳에는 정성을 다해 기도드리는 사람들이 정말 많다. 보통 나무아미타불이나 관세음보살을 외우며 기도하는 사람이 많으나, 여기서는 나반존자님을 부르며 기도하는 사람이 훨씬 많다. 또한 고종황제가 심열로 고생하던 둥에 청우스님이 사리암에서 백일기도를 주관하였는데, 꿈에 선인이 나타나 임금님의 머리에 침을 꽂아주니 깨끗이 나았다는 효험담도 전해오고 있어 영험을 더한다. 사리암이 기도의 효험이 있다고 하는 또 다른 근거중의 하나는 전방에 위치한 산의 모양이 학이 날개를 �짝 펼치고 우리의 소원을 다 안고 하늘로 날아가는 듯한 풍수를 가져서 라고도 한다.  

 

*사리암 가는 길

 

*사리암 가는 길

 

*사리암

  

   운문사 사적에는 사리암은 고려초 보양국사(寶壤國師)930년에 초창하였고 조선 헌종 11년(1845)에 정암당(靜庵堂) 효원대사가 중창하였으며 1924년 증축, 1935년에 중수하였다고 기록되어 있다 . 사리암의 천태각(天台閣)은 일명 독성각(獨聖閣)이라고도 하며 조선 헌종 11년(1845)에 신파대사(新派大師)가 초창하여 나반존자상을 봉안하였다. 이 나반존자상의 후면에는 조선 철종 2년(1851)에 봉안한 독성탱화(獨聖撑畵)와 1965년에 경봉(鏡峰)화상이 점안한 산신탱화가 함께 봉안되어 있다. 천태각 밑에 있는 비석은 금호당화상(金虎堂和尙)이 세운 중수비이다. 1977년 비구니 혜은(慧隱)스님이 원주로 부임하여 1978년 전기불사를 시작으로 1980년에 전 부산 거림회 회장 이인희 거사의 후원으로 3층의 요사를 신축하였고 1983년 현재의 관음전, 자인실, 정랑 등을 개축하였다 라고 기록하고 있다. 현존하는 건물은 위에서부터 천태각 그 뒤에 산신각이 아주 조그만하게 각각 한칸으로 지어져 있으며 천태각 왼쪽에 굴이 하나 있는데, 굴의 모양을 하고 있으나 사람이 그 굴에서 기도를 하게끔 돌로 바닥을 깔았다. 그 안쪽에 샘이 있어 물이 나오는 곳이 있는데 그곳이 그 옛날 쌀이 나오던 곳이라 한다. 그 한 계단 아래 관음전이 있고 관음전 좌측으로 한 계단 아래 자인실이 있으며 자인실 앞으로 계단을 따라 내려오면 왼편에 3층의 요사가 있다.

 

*사리암

 

*사리암

 

*사리굴 

 

   사리굴(邪離窟) 운문산에 있는 네 곳의 굴 중 하나이다. 즉 동쪽은 사리굴(邪離窟), 남쪽은 호암굴(虎巖窟), 서쪽은 화방굴(火防窟), 북쪽은 묵방굴(墨房窟)로서 옛날에는 이 굴에서 쌀이 나왔는데 한 사람이 살면 한 사람 먹을 만큼의 쌀이, 두 사람이 살면 두 사람 몫의 쌀이 나왔다고 한다. 하루는 공양주 스님이 더 많은 쌀을 얻으려고 욕심을 내어 구멍을 넓히고 부터 쌀이 나오지 아니하고 물이 나오게 되었다는 전설이 전해진다. 그 장소는 나반존자(那般尊者)상이 모셔진 바로 아래다. 아래에서 보면 왼쪽굴이 그곳이고 지나쳐보면 어딘지 분간이 가지 않을 곳으로 특별히 굴 같지는 않다.

 

   특이한 것은 이 요사의 지붕이 관음전 앞마당이다. 좁은 터의 활용을 최대화 했다고 봐야할 것이다. 또 그 왼편에 3층의 집이 하나 있으며 공양간 등 이곳도 요사로 쓰이고 있다. 이 건물이 부산 거사림 이인희 회장 등이 후원하여 건립된 요사인 것이다. 사리암은 입구 삭도가 있는 곳의 다리에서부터 약 1천보(계단포함) 정도 올라와서 층암절벽 위에 세워진 암자이다. 이곳 사리암은 국내에서도 이름있는 나반존자의 기도처로 신도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곳이다. 나반존자는 석가여래께서 돌아가신 후 미륵불이 출현하기까지 부처님이 계시지 아니한 동안 중생을 제도하려는 원력을 세운 분으로 부처님의 부촉을 받고 항상 천태산상에서 선정을 닦으며 열반에 들지 않고 말세 중생의 복밭이 되어 미륵불을 기다리는 존자이다. 근래엔 사리암에 가려고 하면 운문사 뒤편에서 출입을 통재하고 있어 사리암 신도 외 일반인은 쉽게 들어갈 수 없다. 그런 이유로 운문사 계곡안 만은 심한 오염의 현 세태속에서도 아주 맑은 산천과 산골의 물고기 등을 볼 수가 있다. 이는 군에서 산의 휴식년제 실시로 인하여 사람의 출입을 통제하는 공이 크다고 할 것이다. 

 

*사리암 천태각   

 

*관음전과 천태각

 

*사리암 조망

 

   사리암에 처음 가면 신기한 것을 볼 수가 있다. 사리암 맨 아래층에 다달으면 먼저 온 사람들이 아래를 내려다 보면서 손바닥에 땅콩을 올려놓고 깐돌아 깐돌아를 부른다. 깐돌이가 뭘까 조금 있으면 답이 나오는데 신기하게도 산새가 와서 손바닥 위에 있는 땅콩을 의심없이 물고 간다. 언제부터인지 이곳에 살고 있는 비구니 스님들이 길을 들여놓아서 이렇게 된 것이라는 것이다. 사람과 새와의 신뢰가 이루어 진 것이다. 그래서 그런지 이곳을 찾는 사람들은 신도이건 등산객이건 식사때가 아니라도 배가 고프면 밥을 먹고 간다. 그래도 스님들은 그것을 탓하지 않고 배고픈 사람은 요기를 해야 한다고 말한다. 바로 이것이 무상보시며 중생을 사랑하는 마음인 것인가 보다. 공양을 마치고 아래를 내려다보면 언덕 아래에 비자나무가 바위 위에서 여러 그루 살고 있다. 오래되지 않은 날에 스님들이 심은 것이라 한다. 또한 조선 고종황제가 심열로 고생하던 중에 청우스님이 사리암에서 백일기도를 주관하였는데, 꿈에 선인이 나타나 임금님의 머리에 침을 꽂아주니 깨끗이 나았다는 효험담도 전해져 온다. 중생들에게 괴로움이 많아서인지 소원이 많아서인지 기도를 하기 위하여 곳곳에서 찾아오는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사리암은 나반존자 기도도량이다.  

 

*사리암 조망

 

 

 

<2007. 11.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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