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황남동 출토 지진구(地鎭具)

2007. 6. 14. 08:19◈한국문화순례◈/서라벌문화권

경주 황남동 출토 지진구(地鎭具)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

 

   월성의 북쪽, 계림과 첨성대 사이의 건물터는 1988, 1989, 2006년에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에서 발굴 조사하였다. 그 결과 정면 3칸, 측면 2칸의 건물을 중심으로 정면 10칸, 측면 2칸의 대형 건물이 좌우로 각각 3동씩 배치되어 있음이 확인되었다. 특히 유적지의 남쪽 끝에서는 정면 2칸, 측면 2칸의 건물터 2동과 담장형의 석렬 및 일렬로 묻혀 있는 지진구(地鎭具) 관련 유물이 출토되었다. 이 유적에는 짧은 목단지 5점과 황칠안료를 담은 합(盒) 1점이 지진구로 매납되어 있다. 경주지역에서 지진구가 확인된 유적으로는 황룡사지, 안압지, 인용사지가 대표적이다.

 

   지진구(地鎭具)란 국가의 중요한 건물이나 사원건물을 지을 때, 땅 속의 악한 기운을 누르도록 지신(地神)에게 빌기 위해 매납하는 각종 물건과 제기를 말한다. 지진을 위한 공양물은 수정, 유리 등의 옥류(玉類), 장신구, 바늘, 가위 등의 금속제품류, 그리고 이들을 담기 위한 토제 혹은 금속제의 용기류(容器類) 등으로 구성된다.

 

   '전설의 안료'로 알려졌다가 처음 실물로 출현한 황칠은 합(盒)에 속하는 토기 내부에서 고체화한 상태로 확인됐다. 황칠(黃漆)이란 여러 종류의 공예품 표면에 황금빛 광택을 입히는 데 사용된 도료의 한 종류이다. 황칠은 금속에 황칠나무에서 채취한 수액을 정제하여 사용하는데, 기록만 남아 있을 뿐 실제로 사용된 예가 발견되지 않아 '전설의 금빛 도료'로 알려져 있었다. 그런데, 황남동에서 출토된 합 내의 유기물을 분석한 결과 황칠안료로 밝혀졌다.

 

   황칠나무는 완도와 보길도, 거문도 등 우리나라의 서남해안 지역과 제주도 등지에서 자생하는 난대성 활엽수이다. 삼국사기 고구려본기 제9권 보장왕 4년(645)의 기록에는 "백제가 금칠(황칠)을 한 갑옷을 바쳐왔는데, 갑옷의 광채가 하늘에 빛났다"라고 되어 있으며, 조선 후기 역사가인 한치윤이 저술한 해동역사에는 "황칠나무는 백제 서남해에서 나며, 가물에 칠하면 황금색이 되는데, 그 휘황한 광채가 눈을 부시게 한다."라고 기록되어 있어 황칠이 삼국시대부터 조선시대에 이르기 가지 공예품의 도장(塗裝)에 광범위하게 이용된 소재였음을 알 수 있다.

 

*인화문합

 

*인화문합(인화문합) 

 

*인화문합 뚜껑

 

*인화문합 속의 황칠

   

*짧은목단지(단경호)

 

*짧은목단지(단경호) 뚜껑

 

*짧은목단지(단경호)

 

*짧은목단지(단경호) 뚜껑

  

*지진구 발굴모습

  

*계림 북편 건물지 

 

 

 

<2007. 4.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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