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 5. 26. 06:16ㆍ◈한국문화순례◈/서라벌문화권
경주 금척리 고분군(金尺里古墳群)
금척리 고분군은 경주에서 영천으로 통하는 국도변 양쪽으로 30여기의 대소고분이 밀집되어 있는 곳이다. 이 고분군은 일제 때 52기에 달했으나 현재 32∼3기 정도가 남아있다. 모두 적석목곽분이다. 그러나 시내에 위치한 적석목곽분에 비해 규모가 작고 유물이 화려하지 않다. 이것은 시내의 적석목곽분 세력에 비해 한 단계 낮은 집단의 무덤이었음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금척리 고분군(金尺里古墳群)
*금척리 고분군(金尺里古墳群)
이 고분이 금척리라는 지명을 얻게 된 데에는 금척(金尺)을 묻었다는 동경잡기에 전해오는 전설 때문이다.
신라가 건국되고 혁거세거서간이 임금의 자리에 올라 나라를 바르게 다스리기 위해 깊은 생각에 잠겨 있었다. 어느 날 어린 임금이 대궐의 뜰에서 생각에 잠겨 있는데 사람이 나타나 말했다. "저는 하늘의 사자입니다. 하느님께서 지금 동쪽에 신라라는 나라가 있는데 새로운 나라를 축하하기 위해서 이 금척을 선물로 갖다 드려라 하므로 가지고 왔습니다. 이 금자는 앓는 사람을 재면 병이 낫고 죽은 사람을 재면 다시 살아나는 보물입니다. 잘 간직하시기를 바랍니다." 하고 사라졌다.
*금척리 고분군(金尺里古墳群)
*금척리 고분군(金尺里古墳群)
임금은 하늘에 절하고 금자를 받아들이고 신하들에게 설명한 다음 창고에 소중하게 보관하도록 하였다. 혁거세 거서간과 알영왕비는 어질게 백성을 다스렸으므로 나라안이 화목하고 농사도 잘 되어 태평세월이 계속되었다. 임금도 백성들도 하늘이 축복해준 금자의 덕인 줄로 알고 금자를 소중히 여겼다.
넓은 땅을 차지하고 있던 한나라 왕이 신라에 금자가 있다는 소식을 듣고 그것을 잠깐 보고 줄 테니 빌려 달라고 사신을 보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어린 임금은 신하들을 불러 "금자를 빌려주는 것이 좋겠는가 안 빌려주는 것이 좋겠는가" 하고 물었다. 한 신하가 나와서 말했다.
"한나라는 국토가 넓고 인구가 많기 때문에 교만한 나라입니다. 금자를 비려주면 우리 신라를 업신여겨 돌려주지 않을 것입니다." 또 한 신하가 말했다.
*금척리 고분군(金尺里古墳群)
*금척리 고분군(金尺里古墳群)
"한나라는 자기네 나라가 부강한 것을 믿고 이웃 작은 나라들을 괴롭히고 있습니다. 만일에 보물을 한나라가 갖고 있다면 이웃 작은 나라들을 더욱 괴롭힐 것입니다. 금자를 보내서는 아니 됩니다."
"그러나 아무리 귀중한 보물이라도 잠깐만 보고 주겠다는 데 그것도 못한다면 어찌 이웃간의 의리가 되겠소. 못 주겠다는 구실이 분명해야지 않겠소."
"그 금자를 땅 속에 묻어버리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사람의 목숨이란 한도가 있는 것인데 죽어야 할 사람을 그러한 보물로서 자꾸만 살려 놓는다면 마지막에는 나라안에 인구가 차고 넘어 새로 세상에 태어날 자손들이 크게 위협받을 것입니다. 또한 그러한 보물을 가짐으로서 공연히 강한 나라의 욕심을 자극하여 침략을 받을 염려도 없지 않으니 땅 속에 묻어버리는 것이 상책인가 합니다."
*금척리 고분군(金尺里古墳群)
*금척리 고분군(金尺里古墳群)
박혁거세는 그 의견을 옳게 여겨 그 금가를 묻어 무덤을 만들었다. 신하들은 다시 임금에게 말했다.
"한나라는 넓고 큰 나라입니다. 만일 금자를 땅에 묻었다는 기미를 알게 되면 곧 파내어 가지고 갈 것입니다. 금자무덤 주위에 더 많은 무덤을 만들어서 어느 무덤 속에 금자가 들어 있는지 알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 좋습니다."
*금척리 고분군(金尺里古墳群)
*금척리 고분군(金尺里古墳群)
혁거세가 이를 허락했다. 그 후 한나라 사신이 와서 금자를 빌려달라고 했다. 왕은 "이웃 나라에서 금자를 잠깐 빌려 달라 하시니 어찌 못한다 하겠습니까. 그러나 그 금자가 너무 귀중한 보물이라서 땅 속에 묻어두었습니다. 그래도 도적들이 훔쳐갈까 두려워서 그 주위에 더 많은 무덤을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그 금자를 묻은 사람이 죽었기 때문에 지금은 금자가 어느 무덤에 들었는지 아는 사람이 없습니다. 어렵게 먼길 오셨는데 죄송하게 되었습니다" 하고 금자를 보여주지 못하는 이유를 설명했다. 한나라 사신은 있는 무덤을 모두 파보면 될 것이 아니냐고 하며 금자를 묻은 무덤으로 안내를 하라 하였다. 금자를 묻은 무덤이 너무 많은 까닭에 파보는 것을 단념하고 한나라의 사신은 돌아갔다. 그 후 무덤 속에 금자를 묻은 사람이 정말 죽었으므로 신라에서도 금자가 들어있는 무덤을 알지 못하게 되었다. 지금도 금자는 금척리 고분군중 어느 무덤에 묻혀 있을 것이라고 전해오고 있다.
*금척리 고분군(金尺里古墳群)
*금척리 고분군(金尺里古墳群)
*금척리 고분군(金尺里古墳群)
*금척리 고분군(金尺里古墳群)
*금척리 고분군(金尺里古墳群)
<2007. 4.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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