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남산 국사골 삼층석탑
실제사(實際寺)의 중 영여(迎如)의 족속과 성씨는 자세하게 알 수 없다. 그러나 덕과 행실이 모두 높았다. 경덕왕은 그를 맞아 공양을 드리기 위해 사자를 보내서 불렀다. 영여가 대궐에 들어가 제를 마치고는 돌아가려 하자, 왕은 사자를 보내 그를 절에 까지 모셔 드리도록 했다. 그는 절에 들어서자마자 어디 있는지 알 수 없게 숨어버렸다. 사자가 와서 아뢰니 왕은 이를 이상히 여겼고, 그를 국사에 추봉했다. 또한 그 후로 다시는 세상에 나오지 않았다. 지금도 그 절을 국사방이라 부른다.
<삼국유사 영여사(迎如師)조>
국사방이 있던 곳이 동남산 국사골(國師谷)이라 추정하고 있다. 그러나 이 계곡 안에 있는 절터 중에서 어느 것이 국사방인지는 아직 알지 못하고 있다. 국사골 고깔바위 아래에 위치한 제4절터 가장 높은 곳에 2000~2002년까지 복원을 위한 발굴조사에 이어 2002년도에 복원한 삼층석탑이 있다.
4매로 구성된 지대석은 바깥면에 각형(角形)으로 2단을 두어 기단면석받침으로 사용하였으며, 내부는 호형(弧形)으로 거칠게 다듬었다. 지대석 하부 기초부는 풍화암반을 방형(동서 370cm, 남북 340cm, 높이 100cm)으로 굴착한 후 마사토(磨沙土)와 작은 할석편(割石片)을 교대로 사용하여 판축하였는데, 판축층이 모두 10층 정도 확인되었고, 제일 하부에 1개층만 점토층(粘土層)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탑구는 북쪽 지대석과 접하여 폭 60cm 정도로 2열만 남아있고 동, 남, 서쪽은 모두 결실되었다.
기단(基壇)은 단층기단(單層基壇)이며, 남동, 남서, 북서편에 놓여지는 기단면석은 3매가 각각 하나의 돌로 이루어져 있으나, 북동편은 2매로 분리되어 있다. 이 가운데 남서편의 것은 우주 부분이 인위적으로 파손되어 신부재로 교체하여 복원하였다. 발굴당시 탱주는 확인할 수 없었지만, 이후 마을 민가에서 탱주석 1매가 확인되어 별석으로 기단면석 사이에 삽입하였다. 기단갑석(基壇甲石)은 4매로 부연(副椽)이 있으며, 상면에는 탑신받침을 놓을 수 있는 홈이 마련되어 있지만 탑신받침은 유실되었다. 각층 탑신석에는 우주가 있고, 3층탑신석의 상면에는 너비 14.5cm, 깊이 7.5cm의 방형사리공(方形舍利孔)이 마련되어 있었다. 옥개석은 모두 4단의 옥개받침과 2단의 탑신받침을 갖고있다. 옥개받침은 대체로 직절한 형태이며 낙수면은 완만하다. 특히 합각선(合角線) 끝부분과 전각(轉角) 양모서리 부분에는 풍탁공(風鐸孔)이 있다.
단층 기단이면서 천룡사 삼층석탑에서 보이는 5단 옥개받침보다 줄어든 4단 옥개받침의 옥개석 등으로 보아 9세기 중반 이후에 제작된 것으로 판단된다.
*국사골 절터 전경
*국사골 삼층석탑
*국사골 삼층석탑
*국사골 삼층석탑
*삼층석탑에서의 조망
*국사골 삼층석탑
*국사골 삼층석탑
*국사골 삼층석탑
*국사골 삼층석탑
*삼층석탑 답신부
*삼층석탑 기단부
*삼층석탑 부재
*연화대편
*연화대편
*허물어진 돌축대
*남산부석에서 내려다본 국사골 삼층석탑
<2007. 2.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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