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문화순례◈/영가문화권

안동 병산서원

蔥叟 2006. 6. 20. 10:58

안동 병산서원(屛山書院)

 

   병산서원은 서애(西厓) 류성룡(柳成龍 1542~1607)을 기념하기 위해 세운 서원이다. 류성룡은 하회마을의 충효당의 주인이자 풍산 류씨의 중흥조이기도 하다. 학봉 김성일과 함께 퇴계의 수제자였고, 24세에 벼슬길에 올라 학예분야의 요직을 역임하였다. 40세에 도승지를 거쳐 49세에 우의정에 올랐고 이조판서를 겸임하였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병조판서까지 겸하게 되었고, 이어 영의정에 올라 군사와 정치를 총지휘하였다.

 

   임진란 말미에 정적들의 집요한 탄핵에 의해 모든 관직을 삭탈당하고 고향 하회로 낙향 은거한다. 이때 하회 건너편 부용대 아래에 옥연정사를 짓고 휴양과 저술활동에 들어서 쓴 글이 바로 유명한 '징비록'이다.

 

   병산서원은 서애의 수제자인 우복 정경세등의 제자들과 후손들 그리고 풍산 일대의 가문들이 연합으로 설립하였다. 병산서원의 전신은 풍악서당인데, 고려 공민왕이 안동 일대로 몽진왔을 때, 왕의 후원으로 성장하여 류씨 가문의 서당으로 유지되다가 1572년 서애가 인근의 지방관으로 있을 때에 현재의 자리로 이건하였다. 풍악서당이 병산서원으로 탈바꿈한 것은 1614년 사당인 존덕사를 건립하여 서애의 위폐를 모신 이후다. 

 

*병산서원 모형(국립대구박물관)

  

 *병산서원

 

 *병산서원

 

 *병산서원

 

 *복례문

 

   병산서원으로 들어가는 문이 복례문이다. 솟을대문으로 꾸며진 복례문의 이름은 '극기복례(克己福禮)'에서 따온 것으로, 세속된 몸을 극복하고 예를 다시 갖추라는 뜻을 지니고 있다.

 

 *복례문 편액

 

 *삼문 안쪽의 가마. 향사때 제수를 운반하는 의례용 가마다.

 

 *만대루

 

 *만대루 마루

 

   정면 7칸 측면 2칸의 매우 좁고 기다란 만대루는 두보의 오언율시 '백제성루'의 "푸른 절벽은 오후에 늦게 대할만하니(翠屛宜晩對)"에서 따온 것이다.

 

   만대루는 인공적인 서원건축과 자연사이의 매개체다. 현재는 만대루 앞에 복례문이 있지만 원래는 만대루 동쪽ㅇ에 조그맣게 있던 것을 이건한 것이다. 당시에는만대루가 서원의 물리적인 경계도 되엇던 것이다. 만대루는 서원의 경역 안에 있지만 그 시각적 소속은 외부에 속하기도 한다.

 

   만대루는 외부경관에 대한 시각적 틀이다. 만대루에 올라 자연을 음미하는 것도 좋지만, 강당대청 가운데에서 만대루를 바라보아야 만대루의 진경을 볼 수 있다. 외부의 자연경관을 수평적으로 나누고 수직적으로 쪼개고 있다. 만대루의 마루면과 지붕 사이로는 낙동강의 흐름이 바라보이고 지붕 위로는 병산이 배경으로 나타나고 마루 아래로는 대문간이 들어온다. 만대루 위에서의 경관은 7칸의 프레임으로 나누어지는 문자 그대로 7폭의 병풍이 되는 것이다.

 

 *만대루 편액

 

 *만대루 누하주

 

 *만대루의 대들보

 

 *만대루에서 바라본 병산

 

 *만대루에서 바라본 너들대벽

 

 *만대루에서 바라본 입교당

 

   입교당은 사원의 중심건물인 강당이다. 양쪽에 온돌방을 들이고 가운데 3칸은 대청으로 개방하였다. 동쪽방인 명성재는 서원의 원장실이고, 서쪽방 경의재는 부원장실이자 교무실이다. 명성재 앞에는 툇마루를 두어 방을 줄였다. 원장 혼자서 사용하기에 충분한 공간이면서 원장실의 권위를 높이는 역할을 한다.

 

   강당의 대청은 강회공간이다. 원장이 대청의 가운데 앉고, 동재생들은 대청 동쪽에, 서재생들은 서쪽에 앉는다. 원장석에 앉아 바라보는 병산의 경관은 병산서원 최고의 장면이다. 만대루의 높이와 위치도, 동새재의 규모도 이 지점에서의 경관에 맞추어져 있다.  

 

   입교당은 높고 커다란 기단 위에 놓여있다. 기단 양끝에는 과장될 정도로 커다란 아궁이가 뚫려있다. 바로 위의 온돌방의 난방을 위한 시설이다. 이같은 기단의 구성은 허(아궁이)-실(기단)-허(아궁이)의 순서로 구성되었다. 반대로 건물 부분은 실(방)-허(대청마루)-실(방)의 순서이다. 입교당은 이와 같은 수평적인  조합과 아래 위로 허-실의 주직적 조합도 일어난다.

 

 *입교당의 편액들

 

 *병산서원 편액

 

 *입교당 편액

 

 *명성재

 

 *명성재 편액

 

 *경의재

 

*경의재 편액

 

 *입교당 대청마루

 

 *입교당 서명의 창

 

 *입교당 정면 실(방)-허(대청)-실(방)의 구성

 

 *입교당의 기단 허(아궁이)-실(계단)-허(아궁이)의 구성

 

*입교당의 기단 허(아궁이)-실(계단)-허(아궁이)의 구성 

 

 *입교당에서 바라본 만대루

  

 *입교당에서 바라본 병산

 

 *동재

 

*동재

 

 *입교당과 동재의 관계

 

  동재와 서재의 구성은 대칭적이다. 마당을 사이에 두고 서향과 동향으로 배치되었다. 두 건물은 크로 작은 2개의 방과 1칸 마루로 구성된다. 강당쪽의 작은 방은 학생회장격인 유사의 독방이고, 서적을 보관하는 장서실이다. 2칸 큰 방은 학생들이 단체로 기거하는 방이다. 동재에는 상급생들이 서재에는 하급생들이 기거한다.

 

   대칭적으로 놓인 동재와 서재는 기하학적으로는 대칭이 아니다. 강당과 서재는 직각의 관계를 유지하지만, 동재는 안으로 벌어진 채 놓여졌다. 또 서재와 강당은 모서리가 서로 맞물려 있지만, 동재는 강당과 모서리가 덜어져 있다. 결국 강당과 서재는 닫힌 관계이지만 강당과 동재는 열려있는 관계가 된다. 이것은 서원 마당에 들어온 사람들의 동선을 강당 동쪽의 사당 앞마당으로 유도하기 위한 장치인 것이다. 

 

 *서재

 

 *서재

 

*입교당과 서재의 관계

 

 *존덕사의 삼문 앞마당

 

   병산서원의 사당은 존덕사이다. 사당은 유교의 종교적 의례기능을 위한 곳이다. 제사의례에서 사당 신문 앞의 마당은 가장 중요한 장소가 된다. 제사 때 집례를 맡은 임원들은 신문 안마당으로 드어가지만 일반 학생들은 이 마당에 서서 참례한다. 앞 마당과 안마당을 연결하는 것은 신문 앞의 계단이다. 장로들은 동쪽을, 연소자들은 서쪽 계단을 이용한다.

 

   전사청은 주소에서 마련한 제수를 가져와 제사상을 준비하는 곳이며 주소는 서원을 관리하는 곳이다.평소에는 관리인들인 묘지기 장무 정지지기 들이 거주하고, 봄 가을 향사 대는 인근의 참례인들을 위한 숙소로도 제공되었다. 주소는 고직사, 교지사, 주사라고도 부른다.

 

 *존덕사 삼문

 

 *존덕사 삼문

  

 *존덕사

 

 *존덕사

 

 *전사청 편문

 

 *전사청

 

 *장판각

 

 *주소

 

 *주소

 

 *주사와 입교당 사이의 출입문

 

 *존덕사 삼문 앞에서 바라본 병산

 

*주소 뒷간

 

*주소 뒷간

 

 

 

<2006. 5. 31>

'◈한국문화순례◈ > 영가문화권' 카테고리의 다른 글

청송 주왕산 대전사  (0) 2006.10.02
안동 길안 묵계서원  (0) 2006.06.21
안동 풍천 겸암정사  (0) 2006.06.20
안동 풍천 옥연정사  (0) 2006.06.19
안동 하회마을  (0) 2006.06.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