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신라 성덕대왕신종
<국립경주박물관>
일명 에밀레종 또는 봉덕사종(奉德寺鐘)으로 알려져 있는 이 종은 신라 35대 왕인 경덕왕이 돌아가신 아버지 성덕대왕을 위하여 구리 12만근을 들여 만들다가 실패하여 그 아들인 혜공왕 7년(771)에 완성된 것이다. 처음에는 성덕대왕의 원찰인 봉덕사에 걸려 있었는데 그 뒤 영묘사(靈廟寺), 경주읍성의 남문, 동부동의 옛박물관을 거쳐 1975년 지금의 박물관으로 옮겨왔다.
종의 꼭대기에는 우리나라 종만이 갖고 있는 용의 형태로 된 고리인 용뉴(龍紐)와 음통(音筒)이 있다. 몸체에는 위로부터 보상당초무늬를 새긴 윗띠(上帶)와 연꽃으로 장식된 4개의 유곽(乳廓), 무릎을 꿇은 채 날아 내려오는 4구의 비천상(飛千像), 2개의 연꽃 모양의 당좌(撞座), 보상당초무늬와 연꽃으로 이루어진 아래띠(下帶)가 각각 양각되어 있다.
비천상 사이에는 모두 1,037자의 글이 대칭으로 새겨져 있어 이 종의 이름이 '성덕대왕신종'이라는 것과, 이 종소리를 들으면 백성들이 괴로움 속에서 벗어나고 복을 받게 되며 진리를 깨달아 그 공덕으로 아버지인 성덕대왕이 극락에 편히 계시게 된다는 내용, 그리고 이 종을 만든 주종대박사(鑄鐘大博士)는 대나마(大奈麻) 벼슬의 '朴ㅇㅇ'이고, 글은 '김필해(金弼奚)'가 지은 사실 등을 알려주고 있다.
30여년이나 걸려 만든 이 종은 무게가 약25톤이어서 당시의 높은 주조기술을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다. 우아한 형태미, 화려하고도 정교한 장식, 아름답고 여운이 긴 웅장한 종소리 등은 다른 종들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것으로 우리나라 종 가운데에서 가장 뛰어난 걸작이다.
<성덕대왕신종>
<상대와 유곽>
<종유>
<비천 1>
<비천 2>
<비천 3>
<비천 4>
<명동(공명통)>
<용뉴>
<음관>
<당좌>
<하대 보상화문>
<명문>
<2005. 10.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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