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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엽경의 산실 - 마탈레 알루비하라

蔥叟 2018. 10. 20. 03:36

폐엽경의 산실 - 마탈레 알루비하라

 

Alu Vihara

 

마탈레는 캔디 시에서 북쪽으로 23㎞ 떨어진 지점에 자리잡고 있다. 시 근교에 불교승원과 석굴사원인 알루비하라가 있다. 알맞은 해발고도와 강우량으로 향료를 재배하며 목축 중심지이기도 하다. 차·고무·카카오를 재배하는 대규모 농장들이 가까운 곳에 있다. 이 마을 일대는 스파이스의 산지로서 스리랑카 사람들의 식생활에서 빼놓을 수 없는 다양한 스파이스가 마탈레의 풍부한 물과 혜택 받은 기후 아래서 자란다. 그리고 마을 북쪽에 있는 석굴 사원 알루비하라는 기원전 88년, 그때까지 구전되어 왔던 석가의 가르침이 이곳에서 처음으로 문자화 되었다고 전해지는 유서 깊은 절이다. 또 하나, 연녹색 산 계곡에서 흰 비단을 펼친 듯 떨어져 내리는 폭포 휴나스 폴. 그 하나하나가 여행객의 마음을 끄는 매력인지도 모른다.

 

알루비하라는 기원전 1세기에 세워진 불교 사원으로 아누라다푸라, 담불라, 미힌탈레에 이어 스리랑카에서 네 번째로 오래된 사원답게 많은 불전을 보전하고 있다. 큰 바위를 파내서 만든 사원 안에는 와불, 묵상하는 불상, 설교하는 형태의 입상 등이 보존되어 있다. 바위에 그려진 프레스코화는 자타카 이야기를 표현하고 있다. 2,000년 전부터 불교도들이 집회장으로 이용한 곳이라고 하는데, 그 중에서도 가장 볼 만한 것은 제2동굴의 지옥도로서 여러 가지 지옥의 풍경이 그려져 있어 무시무시하다.

 

알루 비하라 사원은 캔디에서 담불라로 가는 교통의 중심지 마탈레Matale 인근에 있다. 이 사원은 스리랑카에서 초기에 조성된 사원 중의 하나인데, 불교를 받아들인 기원전 3세기 데바 남피아 팃사왕Deva Nampya Tissa BC307~267 때 최초로 건립되었다는 기록이 있다. 원래의 이름은 알루레나Alu-Lena 혹은 알로카 레나Aloka Lena였다는데 그 의미는 ‘찬란히 빛나는 석굴’이란 뜻으로 초기엔 동굴 사원만으로 존재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전설에 의하면 당시 석굴사원에서 한 승려가 설법을 하고 있었는데 그의 설법에 감탄한 신왕King of Devas(샤크라Sakra)이 감사의 뜻으로 동굴에 빛을 내려 보낸 이후 빛나는 석굴 즉 알레루나로 불렸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신화적인 이야기가 아니더라도 아침이면 이곳 석굴사원에는 찬란한 빛이 들어온다. 그 이유는 석굴사원의 입구가 동쪽으로 나있기 때문이다. 찬란히 빛나는 사원은 단순히 이런 빛 때문만은 아니다. 인류역사상 가장 위대한 문헌이 이곳에서 문자화하였기 때문에 찬란히 빛나는 사원이 되었다. 그 문헌은 부처님의 초기 말씀을 가장 근접하게 기술해 놓은 ‘팔리어 삼장’Tripitaka으로 무명을 걷어내는 찬란한 빛과 같은 소중한 문헌이다.

 

팔리어 삼장이 섬나라 스리랑카에서 불교 역사상 최초로 문헌화하였다는 사실은 불교도들에게 있어서는 커다란 축복이자 불교를 연구하는 학자들에게는 소중한 입증자료이기도 하다. 또한 이경전이 현재까지 남아있다는 사실은 스리랑카의 축복이자 전 세계인들의 소중한 자산이기도 하다. 이런 축복이 만들어진 장소가 바로 찬란히 빛나는 알루 비하라 사원이다. 현재 알루 비하라에는 부다고사 스님이 머물렀던 석굴과 몇 개의 다고바 그리고 편히 쉬고 계시는 와불이 모셔진 두 곳의 석굴 사원이 남아있다. 그 두 개의 석굴 사원 중 한 곳에는 부시무시한 지옥도가 있어 보는 이를 숙연하게 만든다.

 

알루비하라의 계단을 올라가면 있는 도서관에서는 옛날 승려가 기록을 남기기 위해 이용했다는 야자잎으로 된 종이에 글자를 쓰는 방법을 직접 볼 수 있다. 천연의 야자 잎을 찐 후 햇볕에 말려 건조 시켜서 무두질을 하면 파피라가 완성된다. 이 종이는 현재 이용되는 종이 보다 훨씬 튼튼해서 2,000년이 지난 지금도 문서로 보존되고 있다. 이 파피라에 철필로 글자를 쓰고 재와 식물성 유지를 섞은 액체를 바른 후에 쌀가루로 문지르면 훌륭한 문서가 완성된다. 이 밖에도 도서관에는 불상이나 경전 등이 보존되어 있다. 캄보디아, 태국, 인도, 중국, 한국에서 기증했다는 불상들을 보고 있으면 그 나라에 따라 특징이 미묘하게 달라, 불교가 전파되고 변화한 모습을 쉽게 알 수 있다.

 

패엽경은 고대 인도에서 종이 대신 나뭇잎에 쓴 불경의 한 형태이다. 범어 패다라(貝多羅), 즉 나뭇잎이라는 뜻에서 온 말로 패다(貝多), 또는 패다라엽(貝多羅葉)이라고도 한다. 패다라는 범어 ‘Pattra’의 음사로서 특정한 식물을 가리키기도 하나, 흔히 일반 식물의 잎 또는 필사용 나뭇잎이란 뜻으로 쓰인다. 종이가 생산되지 않던 옛날 인도 등지에서 종이의 대신으로 사용되었으며 지금도 사용하고 있다. 가장 좋은 재료는 다라(多羅, tala)나무의 잎이다. 불교의 삼장(三藏)의 경전은 흔히 이 다라나무의 잎에 썼다. 그러므로 일설에는 패는 잎이라는 뜻이므로 다라나무의 잎을 패다라라고 한다고도 한다.

 

다라나무의 잎은 바탕이 곱고 길며, 이를 글 쓰는 데 사용하려면 먼저 나뭇잎을 말려서 너비 약 2인치, 길이 약 1자 내지 2자의 장방형으로 끊어서 죽필(竹筆), 또는 송곳이나 칼 등으로 글자의 획을 만들고, 먹을 새겨 넣거나 먹과 붓으로 쓰기도 한다. 완성된 패엽은 보통 가운데에 작은 구멍을 두 개 뚫어 실로 몇 십장씩 꿰어 묶어서 중축(中軸)을 만들어 사용한다. 이를 통칭 범협(梵夾)이라고 하며, 보살상의 조각에 지물(持物)로 등장하기도 한다. 또한 옛날에는 협판(夾板)의 표면에 여러 가지 부조(浮彫) 장식을 넣고, 내면에는 불보살·호법선신 등의 그림을 그리기도 하였다.

 

우리나라에도 패엽경은 신라시대부터 전래되었다. 이름을 알 수 없는 신라 승려가 서역으로 유학 갔다가 패엽경을 가지고 귀국하여 황해도 신천의 구업사(具業寺)에 봉안한 뒤, 절 이름을 패엽사로 고쳤다고 한다. 현재 대구 동화사(桐華寺)와 영월 법흥사(法興寺)에 패엽경이 보관되어 있다. 이 가운데 법흥사의 패엽경은 단 한 장으로, 앞뒤 가득 범어로 쓰여 있다. 이 패엽경은 본래 금강산마하연사(摩訶衍寺)에 봉안되어 있었으나, 광복 이후 공산치하를 피하여 남쪽으로 내려와 행방이 묘연하였다가 부산의 한 승려가 신도한테서 얻어 법흥사에 봉안하였다.

 

▲알루비하라

 

▲알루비하라

 

▲알루비하라

 

▲알루비하라

 

▲알루비하라

 

▲알루비하라

 

▲알루비하라

 

▲알루비하라

 

▲알루비하라

 

▲알루비하라

 

▲알루비하라

 

▲알루비하라

 

▲알루비하라

 

▲알루비하라

 

▲알루비하라

 

▲알루비하라

 

▲알루비하라

 

▲알루비하라

 

▲알루비하라

 

 

 

<2018. 1. 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