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성의 향기 - 평요고성 일승창
日升昌, rìshēngchāng
중국 은행의 시초이다. 1823년 이대전(李大全)이란 거부가 은화 30만량을 투자해 뇌리태(雷履泰)와 동업하여 표호(票号)를 세웠다. 이대전은 천연 염색업으로 부를 이룬 상인이다. 사업이 융성하여 전국에 지점망을 보유한다. 새로운 사업방식을 고민하던 중, 전국에서 오가는 돈을 효율적으로 관리하기 위해 현대의 수표인 어음을 발행하고, 예금과 같은 예치 제도를 신설한다. 당시는 상품 경제의 발달로 유통 물량이 대폭 증가했다. 상업의 결재 수단은 여전히 은화여서, 무거운 은화를 들고 다니기가 여간 불편한 게 아니었다. 여기서 착안하여 어음을 발행하고 예치하는 제도를 도입한 것이 시작이다. 고성이 있는 진중 일대에는 당시 거상들이 많았는데 물건을 사고파는 대금을 현금으로 거래하다 보니 불편하기도 하고 도적떼의 표적이 되었다. 이대전의 일승창은 이러한 애로사항을 일거에 해소하는 효과도 함께 가져온다. 일승창이 가장 번영했을 때는 예치 금액이 은화 3,800만 량에 달했다고 한다. 1840년대에는 일본과 싱가포르, 러시아에까지 사업을 확장했다.
일승창의 구조를 들여다보면, 건축의 품격이나 규모가 전형적이면서도 특수하다. 삼진식천당(三进式穿堂) 마당으로 진중 주민의 전통적인 특색을 구현하고 있다. 이에 진중 상점의 품격도 받아들여 건축예술과 사용 편리성까지 모두 구비하고 있다. 총면적은 1,386㎡이고, 건축면적은 약 1,200㎡로 21개의 건물이 들어서 있다. 입구를 들어서면 일승창의 알파와 오메가를 이해할 수 있도록 체계적으로 볼거리들이 전시되어 있다. 신방, 후청, 일승창을 거쳐간 역대 사장(掌相)을 소개한 곳 등, 건물과 건물 안의 전시물들을 돌아보며 당시의 흔적을 느끼고 배울 수 있다. 최초로 어음을 만들고 은행을 설립한 창조성과 세계 각국으로 사세가 번창했을 당시의 역동성, 도산의 길을 걸어가야 했던 과정들을 지켜보며 반면교사로 삼을 수 있는 좋은 교육현장이다.
일승창의 어음은 천하에 통한다던 사세는 20세기 초 서구 은행이 들어오며 기울어간다. 중국 전역과 일본 조선, 미국에까지 지점을 운영했던 아시아 최초의 은행 일승창은 1930년 폐업을 선언하고 역사의 무대에서 사라진다. 그러나 일승창표호가 진상 문화의 걸출한 작품이었던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오늘날에도 이대전은 중국 기업인들의 마음속에 존경받는 기업인으로 남아 있다. 자생적 자본주의의 빛나는 전통 일승창, 존경받는 기업인 이대전으로… 일승창을 나오면 표호국 박물관이 있다. 돈을 운반하는 업무를 관리했던 곳으로 규정과 무기, 암호 그리고 무술 수련 등에 대한 것을 종합적으로 모아 전시한 곳이다. 오늘날에도 은행에서 현금을 수송할 때 무장 차량을 동원하듯, 시대를 통틀어 돈에 대한 욕망과 그 욕망을 통제하기 이한 수단이 다르지 않음을 잘 보여준다.
▲일승창
▲일승창
▲일승창
▲일승창
▲일승창
▲일승창
▲일승창
▲일승창
▲일승창
▲일승창
▲일승창
▲일승창
▲일승창
▲일승창
<2018. 8.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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