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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천 한천사 삼층석탑

蔥叟 2017. 9. 19. 09:12

예천 한천사 삼층석탑

 

678(문무왕 18)의상(義湘)이 창건하였다. 의상이 영주 부석사(浮石寺)를 창건할 때 기둥이 넘어졌다. 그 이유가 지리적 여건 때문이라고 본 의상은 소백산 남쪽 기슭에 있는 주마산의 말머리를 진압하기 위해 이 절을 창건하였다고 한다. 그 뒤 조선 중기까지의 역사는 전래되지 않고 있으며, 1803(순조 3)근천(謹天)이 법당을 중건하였고, 1808년 불량계(佛糧契)의 도움을 받아 선당(禪堂)을 중건하였다. 1932년 주지 취운(翠雲)이 요사채를 중건하였고, 1934년 주지 덕기(德奇)가 법당을 중수하였다.

 

이 절은 원래 한대사(寒大寺)라고 불렸던 사찰로 불량계·등촉계(燈燭契위선계(爲先契) 등을 통하여 사찰의 발전과 수행을 도모했던 대표적인 곳이며, 지금도 그에 관련된 서문(序文) 등이 남아 있다. 그러나 6·25전쟁 때 전소되고 근년에 세운 요사 2동과 법당인 유리광전(瑠璃光殿:藥師殿산신각 등의 당우들만이 있으며, 옛날의 석축도 다 헐리고 터만 남아 있다.

 

한천사 유리광전(瑠璃光殿) 정면에 위치한 석탑으로 하층기단(下層基壇) 각 면석(面石) 중앙에 탱주[撑柱 : 받침기둥]가 하나씩 있고, 면석 모서리에 우주[隅柱 : 모서리기둥]가 있다. 탑신부는 옥신(屋身옥개(屋蓋)가 각각 한 돌로 되었으며, 옥개받침은 각 층이 4단으로 되어 있다. 추녀는 직선인데 전각(轉角)이 날카로워 경쾌한 멋을 풍기고 있다. 이중기단 위에 세워진 일반형의 석탑으로 기단 너비가 1.74m이며 유리광전 내에 안치된 한천사철조여래좌상(보물 제667)과 같은 시대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데, 통일신라시대 후기의 1탑식 가람(伽藍)의 전형적인 석탑의 한 예로서 시대적 양식의 비교연구에 중요한 자료가 된다.

 

▲한천사

 

▲삼층석탑

 

▲삼층석탑

 

▲삼층석탑

 

▲삼층석탑

 

▲삼층석탑

 

▲삼층석탑

 

▲삼층석탑 탑산부

 

▲삼층석탑 탑신부

 

▲삼층석탑 탑신부

 

▲삼층석탑 기단부

 

 

 

<2017. 8. 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