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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천 황매산 영암사터

蔥叟 2017. 4. 4. 08:49

합천 황매산 영암사터

 

영암사터는 절터의 규모나 남아있는 우수한 조각의 석조물 등으로 볼 때 유서깊은 고찰이었음이 분명하지만 절의 자세한 내력은 알 길이 없다. 영암사라는 절이름은 주민들 사이에 구전되어 오던 것이고, 문헌에는 제대로 전하는 것이 없다. 다만 탁본으로만 남아 전하는 '적연국사자광지탑비명'에 '고려국가수현영암사'라고 하는 절 이름이 나타나고 있는데 가수현은 삼가현의 옛이름이므로 이 절이 고려시대부터 영암사라고 불리던 것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조선조의기록인 '삼가현읍지'에는 이절이 위치하고 있는 황매산에 몽계사, 묵방사, 보암사, 사나사(일명 부도암)가 있었던 것으로 나타나며, 지도를 보면 지금 영양사터의 위치에 보암사구지라는 표시가 있어 영암사는 조선조에 와서는 보암사라고도 불리던 것으로 보인다.

 

   영암사터에 들어서면서 처음 만나는 것은 세 군데의 석축이다. 중문터에서 회랑터로 이어지는 곳에 남아있는 석축, 금당터 앞의 석축, 그리고 금당터를 둘러싸고 있는 석축이 그것이다. 그 중에서 중문터의 석축과 금당터 앞의 석축은 장대하면서도 정교하여 신라시대 석축의 모범이 되며 불국사의 석축에 비교할 만한다.

 

   중문터에 남아 있는 석축은 대부분 복원된 것이지만 절터 동남쪽 모퉁이에는 원형대로 남아 있다. 가장 높은 곳이 11단으로 다듬은 돌로 가지런하 쌓아 올렸다. 다섯째 단과 아홉째 단에는 일정한 간격으로 쐐기돌을 박아 넣어 무너지는 것을 방지하도록 하였는데 이같은 기법은 불국사 석축에서도 볼 수 있으며, 석굴암의 천정에서도 만날 수 있다.

 

   금당터 앞의 석축은 남북으로 길게 석축을 쌓고 가운데 부분을 성벽에서 볼 수 있는 치성처럼 튀어나오도록 쌓았다. 그리고 양쪽에 가파르게 통돌로 된 돌계단을 만들었다. 튀어나온 석축 위에는 영암사터의 핵이라 불려지는 쌍사자 석등을 올려놓았다. 

 

▲영암사터

 

▲영암사터

 

▲영암사터

 

▲영암사터 석축

 

▲영암사터 석축

 

▲영암사터 석축

 

▲영암사터 석축

 

▲영암사터 석축

 

▲영암사터 석축

 

▲영암사터 석축

 

▲영암사터 석축

 

▲영암사터 석축

 

▲영암사터 석축

 

▲영암사터 석축

 

▲영암사터 석축

 

▲영암사터 석축

 

 

 

  <2017. 2. 18>